평화의 상징이 된 히로시마 원폭돔

일본 히로시마를 대표하는 상징물 중 하나로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원폭돔’이라는 건물이 있다. 1933년 세워진 이 건물은 원래 히로시마현의 특산물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산업장려관’이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당시 폭심지 주변 대부분의 건물은 파괴되었지만 이 건물은 돔을 포함한 건물의 중심부 일부가 무너지지 않고 남았다. 그 후 이 건물이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는 데는 부침이 있었다.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건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남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고, 핵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말이 있다. 전쟁, 학살 등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나 대형 재난과 재해가 일어난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기 위해 떠나는 여행을 말한다. 그런 대표적인 곳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4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다. 우리나라엔 5·18민주묘역, 서대문형무소가 그런 곳이다.

가까운 사례를 들라면 2014년 304명의 희생자를 낳은 세월호 참사의 선체인양에 대한 논란이 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선체인양은 불필요하다는 주장들이 있었다. 주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런 주장들을 했다. 만약 세월호의 진실을 원하는 운동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바다 속에 배는 침몰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대형 참사들은 사고의 현장이나 유산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고 지워졌다.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등.  

아픈 기억 지우기... 2·18 대구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발생 후 일주일이 지난 2월25일, 당시 대구 시장은 사고 현장인 중앙로역 승강장에 대한 물청소를 지시했다. 이로 인해 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 현장의 일부가 말끔해졌다.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은 사고현장을 훼손하고 말았다’는 비판이 뒤따랐다. 시장은 아픈 기억을 지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진출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시내를 뒤덮고 있다. ⓒ 연합뉴스
▲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진출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시내를 뒤덮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고 5년 뒤인 2008년 6월, 대구지하철공사는 불에 탄 전동차 12량 중 11량을  고철로 매각했다. 희생자 유족들이 강력히 항의해 겨우 두 대는 지켜냈다. 팔지 않은 1량은 놀이동산 이름처럼 들리는 “시민안전테마파크”라는 곳에 가져다 두었고 유족들이 지킨 그 두 대는 지금 안심차량기지에 방치되어 있다. 안타깝지만, 그나마 유족들과 대구지하철노동조합이 힘들어 싸우지 않았다면, 소실된 전동차 1량을 안전교육에 쓰고, 중앙로역 사고 현장 일부를 ‘기억의 공간’이란 이름으로 살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왜곡된 기억

지하철 화재는 수백 명을 죽음과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 책임을 누가 졌을까. 대구시나 정부 그리고 언론은 지하철 노동자들을 재물로 삼았다. 지하철 직원은 ‘살인마’였다. 욕하며 멱살을 붙잡는 시민들 때문에 역 직원들은 제복을 입고 일할 수 없었다. 어떤 노동자들은 감옥에 가야 했다. 하지만 진정한 책임은 구조조정하고 최저가 입찰로 불 나기 쉽고 불 나도 어쩔 수 없는 지하철을 만든 정부와 시, 공사에게 있었다. 관리자, 사장, 대구시장.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결국 진정한 추모를 위한 우리 기억의 왜곡을 낳았다.

이런 왜곡들은 여전하다. 철도 지하철 노동자들이 ‘안전’을 위해 싸운다고 하면 코웃음을 치는 사람들이 많다. “임금이나 올려달라는 소리겠지” 한다. 파업이라도 하면 ‘시민을 볼모로’ 라는 욕을 해대는 것이다. 

그 사이 정부와 운영 기관장은 일하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대신 자동화와 노동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이른바 “휴먼에러(인적오류)” 감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인데, 참사 후 17년이 지난 지금 왜곡된 기억, 잘못된 처방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기술 수준이 높아진 오늘날 사고는 휴먼에러 그 자체가 아닌 구조적인 결과인 경우가 더 많은데도 말이다. 

진정한 추모

2·18 화재참사로 딸아이를 잃은 어느 유족 한 분은 참사 당시 딸아이가 지니고 있던 유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유품만 보면 참혹한 기억이 되살아나 괴롭고 힘들지만, 전시관이라도 생기면 그 곳에 전시하겠다고 한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지만 비슷한 대형 참사를 다른 이는 겪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바람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유족들이 같은 마음이다.

▲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16주기를 맞은 2019년 2월18일 오전 대구 중앙로역사에 있는 화재 참사 추모 공간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 대구 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16주기를 맞은 2019년 2월18일 오전 대구 중앙로역사에 있는 화재 참사 추모 공간을 한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세상 어느 곳이든 완벽하게 안전한 사회란 존재할 수 없다. 사고의 위험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 단지 좀 더 안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가 존재할 뿐이다. 안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란 과거 참사의 기억을 지우려는 사회는 아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한 노력의 시작은 참사의 교훈을 제대로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아있는 사고의 유산들을 모아내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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