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상용직’은 역설적으로 ‘일용직’처럼 17만~19만원 일당을 받고 일한다. KT와 계약 맺은 하청업체에 속해서다. 이들은 전신주를 세우고 맨홀 아래 외선을 까는 등 KT 통신선로 설치와 유지보수를 맡는다. KT는 통신선로를 개설하고 연결하는 핵심업무를 외주 주고 있다. 2018년 기준 전국 1800여 노동자가 140여개 하청업체에서 일한다.

38년차 통신외선공인 정치수씨(55세‧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지부 대구경북지회 사무장)는 “10대 때부터 통신외선을 해, 첫 직업이자 마지막 직업이다. 이런 이들이 많다”고 했다. KT 상용직은 대다수가 1980년대 초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창립 때부터 일해왔다. 2018년 공공운수노조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경력은 28년, 연령은 50~60대다.

정씨는 지난달 16일 ‘김용균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뒤 KT 원청이 안전교육에 열을 올리지만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했다. 정씨에 따르면 KT는 하청업체를 상대로 노동자에게 안전교육하고 서명 받도록 지시한다. 지침엔 △2인1조 작업 △60세 이상은 전신주에 오르지 말고 버킷 작업차 이용 △안전모와 장구 착용 등이 체크리스트로 쓰여 있다.

▲KT상용직 외선작업 노동자 정치수씨(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지부 대구경북지회 사무장).
▲KT상용직 외선작업 노동자 정치수씨(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지부 대구경북지회 사무장). 사진=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정씨는 “업체가 ‘2인1조 작업하라’는 지시를 전달하고 서명도 받지만, 막상 현장에서 ‘2인1조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하면 지원은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원청은 ‘60세 이상 노동자는 버킷차를 이용하라’면서도 비용은 지원하지 않는다. 하청업체는 원청에게 받는 공사대금으로는 버킷차 구비도 어렵다. 그는 “중간에 낀 노동자들만 오늘도 전신주에 오른다”고 했다.

책임은 노동자가 떠안는다. 정씨는 원청이 3~4월부터 노동자들에게 ‘삼진아웃제’를 실시한다고 했다. KT가 현장 ‘순시’ 나와 안전지침을 지켰는지 살피고, 3번 걸리면 평생 KT 하청업체에서 일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고용은 더 불안해졌다. 하청 노사는 당초 만 62세 정년이 지나도 고용하도록 단협을 맺었지만 몇몇 업체가 비용 부담에 재고용을 거부했다. 공공운수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한 상태다.

정씨는 근본안전 문제는 원청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원청이 전봇대를 재활용하고, 맨홀 위치를 안 바꾸는데 어떻게 안전하나.” 정씨는 “맨홀은 원래 인도에 있는 게 원칙인데, 도로를 확장해도 위치가 그대로다. 노동자들은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작업하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민원인 재촉과 원청 압력 사이에서 사용수명이 얼마 안 남은 전신주도 사용한다.

▲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지부가 지난 2018년 12월 파업 당시 서울 KT광화문지사를 찾은 모습.
▲공공운수노조 KT상용직지부가 지난 2018년 12월 파업 당시 서울 KT광화문지사를 찾은 모습. 사진=김예리 기자

KT 상용직 노동자들 산재가 심각하지만, 파악이 쉽지 않다. 정씨는 “지난해 대구경북지역만 해도 사고가 3~4건 있었다”고 했다. “강가에서 태풍으로 뿌리가 허약해진 전신주에 올랐다 그대로 쓰러져 숨졌다. 재작년도 그랬다. 2016년엔 경주에서 한 노동자가 해질녘 내일 할 일을 미리 준비하려고 맨홀에 들어갔다가, 머리부터 올라오다 차에 치여 숨졌다. 그도 혼자 일했다.” KT는 하청업체와 계약을 해마다 갱신하지만 리스트는 대외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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