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선거가 2달 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향후 4년간의 정치 지형은 물론, 국민들의 일상을 바꿀 중대한 선거이지만 언론은 아직 소위 말하는 ‘총선 체제’로 돌입하지 않았습니다. 주요 일간지들, 연합뉴스, 네이버·다음 포털 사이트 모두 2월11일 현재까지 ‘총선 특별 페이지’도 개설하지 않았습니다. 통상적으로 선거를 한 달여 남겨두고 총선 특별 페이지를 개설해온 점도 감안해야 하나, 최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등 다른 주요 이슈들의 영향도 큽니다. 그렇다고 보도가 적은 것은 아닙니다. 이번 총선은 종전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보수통합’,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후 첫 선거’ 등 이슈가 많습니다. 2월7일부터 8일까지 이틀간, 총선 관련 신문보도 중 가장 독자의 시선을 끈 것은 단연 조선일보의 ‘총선 겨냥 경찰의 정보 수집 강화 의혹’ 보도였습니다. 

“경찰 정보수집 강화”에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까지 덧붙인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2일 간 3건의 보도를 집중하며 ‘총선 겨냥 경찰의 정보 수집 강화’라는 의혹에 불을 지폈습니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경찰의 정치 개입’이 불거진 상황에서 경찰청이 이번 총선을 앞두고 지역별 여론동향 등 정치적 정보 수집을 강화하려 한다는 겁니다.

▲ 조선일보 ‘총선 겨냥 경찰의 정보 수집 강화’ 의혹보도 제목. 위 1면 보도, 아래 10면 보도(2월7일) 갈무리.
▲ 조선일보 ‘총선 겨냥 경찰의 정보 수집 강화’ 의혹보도 제목. 위 1면 보도, 아래 10면 보도(2월7일) 갈무리.

가장 상세한 내용은 조선일보 <경찰청, 총선 앞두고 정보수집 강화 "정보경찰 매일 1인 1건 보고서 내라">(2월7일)에서 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지면상 1면에 게재됐습니다. 경찰청이 총선을 앞두고 정보 수집을 강화했음을 사실로서 단언하면서 크게 쟁점화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이 기사는 온라인 판에서는 1건이지만, 지면에는 1면과 10면에 걸쳐 게재되었습니다. 1면의 제목은 <경찰청, 총선 앞두고 정보수집 강화 "정보경찰 매일 1인 1건 보고서 내라">, 10면에 게재된 이어지는 보도의 제목은 <범죄·안보 정보만 수집한다더니… 본청서 지역정보까지 캔다>입니다. 

조선일보는 제목에서 따옴표도 없이 “캔다”라고 단언했습니다. 이러한 확언은 ‘경찰이 문재인 정부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선거에 개입하려 한다’는 암시로 이어집니다. 조선일보는 “경찰은 2016년 4월 20대 총선 때 정보경찰들을 시켜 친박계 후보들이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선거 관련 정보를 수집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로 전직 경찰청장이 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며 박근혜 정부 당시 경찰의 선거 개입 사례를 끼워 넣고, 보도 말미에 “선거 국면에서는 자연히 선거 관련 정치 정보 보고가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며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은 부임 직후인 2017년 8월부터 울산경찰청 소속 정보경찰들에게 수차례 ‘정보경찰이 밥값을 못 하고 있다’ ‘사회단체와 지도층, 울산시 공무원들의 비리를 수집하라’ ‘선거 사건 첩보를 수집하라’고 지시”했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덧붙였습니다. 

‘소문’과 ‘전언’으로만 구성된 기사, 독자는 그냥 믿어야 하나

하지만 이 기사는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합니다. 지면상 2건을 할애해 상세한 사실을 전한 것으로 보이지만 ‘경찰이 총선 개입을 목적으로 지역 정보 수집을 강화한다’는 핵심 메시지의 주요 근거들이 사실상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일보는 대부분의 근거를 “~라고 알려졌다”는 전언 전달식 문장으로 처리하거나, 익명 경찰관계자들의 발언을 인용했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라고 알려졌다”는 문장이 총 7회, 경찰 관계자 등 익명 발언이 총 8회나 등장합니다. ‘소문’을 확산시키는, ‘카더라’ 기사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입니다. “(경찰청이 정보 경찰들에게)1주일에 2~3건이던 (정보)보고서를 1일 1건씩 쓰도록 하는 서약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타깃을 정해서 목적을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침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등 경찰청이 일선 정보경찰들, 지방경찰청에 지시했다는 ‘정보 수집 강화’의 구체적 사항은 모두 ‘알려진 무엇’, 즉 들은 소문쯤으로 처리됐습니다. 

심지어 “~라고 알려졌다”는 문장이 3회나 연달아 등장하는 아래와 같은 내용도 있습니다. 

“경찰청 정보국은 최근 '지역 담당제'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본청 정보경찰들이 서울-전북, 경기 동부-제주, 경기 남부-대전 등 전국을 지역별로 나눠 맡은 뒤, 해당 지역의 정보까지 챙겨 경찰청장에게 보고하고, 필요에 따라 청와대에 보고하겠다는 취지로 알려졌다. 본청 정보경찰이 18개 지방경찰청 소속 정보경찰을 만나 지역 동향을 수집하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가 전하고자 하는 ‘경찰 정보 수집 강화’의 세부 내용은 죄다 ‘소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죠. 경찰이 ‘지역담당제’를 추진한다는 것도, 그 정보를 ‘청와대에 보고하겠다’는 ‘취지’도, 본청이 ‘지역 동향을 수집’한다는 방식도, 공식 문건이나 발표가 아니라 조선일보 기자가 어디선가 ‘들은 말’쯤 된다는 겁니다. 과연 이런 식의 기사를 독자들이 곧이곧대로 믿어야 하는 걸까요?

일방적인 ‘인용구’와 사라진 ‘반론’

조선일보가 ‘경찰의 총선 목적 정보수집 강화’를 ‘선거 개입’으로 연결한 방식은 익명 경찰이나 공무원의 발언, 즉 출처 불명의 ‘주관적 입장’을 근거로 내세우는 겁니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많은 익명의 경찰관계자들과 공무원들이 조선일보에 “결국 경찰청 본청 차원에서 각 지방 민심과 여론 동향을 파악하려는 것”, “자칫하면 경찰이 정치 개입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 “과거 국정원 정보관들이 떨치는 위세를 지금은 경찰 정보관들이 차지한 것 같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각 지역 정치 정보가 자연스럽게 수집될 가능성이 높다” 등 조선일보가 말하고 싶은 결론을 대신 말해줬습니다. 

이런 주장들은 조선일보가 끼워 넣은 ‘박근혜 정부 경찰의 선거 개입’, ‘문재인 정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과 맞물려 결국 ‘문재인 정부 경찰의 선거 개입’이라는 프레임으로 귀결됩니다. 조선일보가 전한 ‘소문’들이 죄다 사실이라고 해도 이 논리 구조에도 무리가 따릅니다. 지금의 경찰이 지역 정보 수집을 강화한다는 그 ‘계획’이 과연 2016년 총선 당시 ‘친박’을 위한 맞춤형 선거 전략 수립, ‘비박계 정치인 동향’ 보고서 작성 등 문건으로 드러난 경찰의 행태와 얼마나 유사한지 조선일보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지역 정보 수집을 강화하니 비슷할 것이다’라는 인상만 부풀리는 식입니다.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의 선거 개입 의혹 역시 이제 막 수사를 마친 검찰의 입장만 있을 뿐, 사실관계는 재판을 거쳐 확인되어야 합니다. 

놀랍게도 조선일보는 반론도 보장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선거 개입 목적으로 정보수집을 강화하려 한다면 당장 수사라도 해야할 사안인데, 경찰에게 해명이나 설명을 요구했다는 대목 자체가 조선일보 기사에 없습니다. 2월 11일 현재까지 추가 보도가 없어 반론 없이 ‘소문’만 낸 셈이 됐습니다.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을 언급한 부분에서도 역시 황 전 청장 측 입장은 없습니다. 

‘소문’ 토대로 한 기사로 ‘정권 차원의 문제’까지 

조선일보가 빼먹은 반론은 경찰청이 알아서 했습니다. 7일 경찰청은 조선일보 기사가 사실과 다르다며 ‘지역 담당제’가 “최근 우한 교민들의 아산 및 진천 격리와 같이 대규모 공공 안녕의 위험요인 발생 시 본청 차원에서 현장 상황을 파악하거나 지원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를 대비해 담당자를 미리 정해두자는 취지”이고, “특히 총선 일정 등을 감안해 5월 이후에 시행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지면에 기사를 내지 않았던 중앙일보는 인터넷판 보도 <정보경찰, 지자체별 담당자 둔다… 4·15 총선 뒤부터라지만>(2월7일)에서 그러한 경찰 입장을 바탕으로 ‘그래도 우려된다’는 뜻을 내비쳤습니다. 조선일보에 비하면 매우 정석적인 보도 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타사에서는 거의 나오지도 않았고 ‘카더라’에 근거한 보도를 기반으로 강경한 수위의 사설까지 보탰습니다. 조선일보 <사설-선관위는 불공정, 경찰은 정보 강화, 文은 마스크 선거운동>(2월8일)은 “선거를 앞둔 경찰의 정보활동 강화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선거에 모든 것을 걸고 달려든 정권은 없었다”, “집권 세력은 이번 총선에서 이기고자 무슨 일이든 하려하고 있다”며 정권 차원의 문제로 확대 재생산했습니다. 

최소한 소문보다는 더 확실한 기사를 써야한다 

경찰이 지금까지 오랫동안 정권의 충견 역할을 하느라 선거에도 개입하고, 민간인을 사찰하고,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까지 훔쳐봤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최근 검경 수사권 조정까지 겹쳐 비대한 경찰의 국내 정보수집 활동을 제한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고 경찰도 개혁위원회를 통해 ‘범죄‧안보 관련 정보로 한정한다’는 방향성을 내놨죠. 이런 상황에서 조선일보가 보도한대로 경찰이 선거 목적 정보수집을 강화하려 한다면 마땅히 규탄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만 보도를 냈습니다. 앞서 살펴본 보도의 부실함과 더불어 조선일보 기사가 미덥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렇듯 벌써부터 두드러진 ‘카더라’ 기사 양태는 반드시 지양되어야 합니다. 선거에 아무리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많다고 해도, 경찰 등 공권력을 항상 의심해야 한다고 해도, 그 자체가 아무 소문이나 일단 기사화해 조회 수를 올리고 여론을 좌우하려는 보도까지 정당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 모니터 대상 : 2020년 2월7~11일까지,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겨레신문·한국일보·한국경제의 지면 기사 중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보도(중앙일보 보도 사례는 인터넷판)
※ 정리 : 이봉우 모니터팀장 (02) 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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