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혼자만을 위한 싸움은 아니었다. CJB청주방송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정규직 PD보다 적게 일하지 않았다. 프리랜서, 작가, 스태프들이 겪는 부당한 일을 못 견디고 문제제기했다. 정규직으로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부당한 대우를 하지 말라는 주장이었는데 부당하게 해고당했다. 억울함을 선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해 소송을 시작했다.”

형은 죽으면서도 억울해했다. 남은 이들은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해 싸움을 이어받았다. 청주방송(대표 이두영·이성덕)에서 14년간 일했고 지난 4일 세상을 떠난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는 청주방송과 청주지법에게 큰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또 방송사 관리·감독에 실패한 방송통신위원회와 고용노동부도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씨는 1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청주방송에서 형에게 직접 가해를 한 사람들, 진실을 알리려 했던 동료들을 회유·압박한 2차 가해자들에게 1차 책임이 있다”며 “40여종의 증거를 외면하고 사측이 회유·압박해 허위로 제시한 직원들 증언을 판결문에 올려놓은 사법부(청주지법)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가 11일 오전 서울 반포동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씨가 11일 오전 서울 반포동 한 카페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장슬기 기자

이씨는 10일 오후 2시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를 만나 유족의 입장을 말했다. “첫째는 형의 명예회복이다. 직원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우를 하라고 요구했다. 책임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도 요구했다. 진상규명을 위해 진술했던 동료들을 철저하게 보호해달라고도 했다.”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이씨는 “유족이 인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꾸려야 한다”고 이 대표에게 말했다. 곧 꾸릴 유족·노·사 공동조사단이 가해 관리자 등 관련자들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해서다.

청주방송은 지난 9일 “고 이재학 PD 문제 철저히 진상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씨는 “진정성을 보이려면 증거은폐 행위를 멈추고 재판부에서 제출하라고 했던 노무법인 컨설팅 자료를 공개하라”고 주장했다. 청주방송이 과거 받은 노무컨설팅 자료에는 이 PD 등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에도 역할도 기대했다. 이씨는 “늘 그렇듯 누가 죽어야만 나서고 사고가 나야지만 처리에 급급하다”며 “이번 사태에서 형을 같은 언론인으로 생각하고 확실하게 (책임자를) 처단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한 뒤 “방통위가 청주방송을 재허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11일 오후 2시 방통위 관계자를 만나 이 같은 의견을 전하겠다고 했다. 

이씨는 고 이한빛 PD 죽음으로 방송계 ‘을’들을 돕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한빛센터)를 언급했다. 그는 “형의 억울함이 풀리면 억울한 이들을 돕고 싶다. 형 같은 사람들이 많을거다”라며 “형 이름으로 프리랜서들, 부당해고 당한 사람들에게 소송비용 등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미디어오늘과 이씨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했다. 

- 형은 왜 청주방송과 싸웠나?

“유족이나 법률대리인이 보기엔 형 혼자만을 위한 싸움은 아니었다. 14년간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정규직 PD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게 일하지 않았다. 일이 많든 적든 떠나 그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들이 있었다. 작가들, 프리랜서, 스태프들이 겪은 일을 못 견디고 어필했다. 이 시기에 사측에서 노무법인을 통해 컨설팅(이 PD 등을 정규직 전환하라는 내용)을 받았다. 이를 핑계삼아 프로그램에서 하차시켰고, 형은 부당해고를 당했기 때문에 싸움을 시작했다. 소송을 걸었던 것도 몇 달 뒤였는데 고민하고 고민해봐도 억울해 선례로 남겨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 형 죽음의 책임 있는 주체는 누군가?

“첫째는 청주방송 사측, 가해자들이 있다. 형에게 직접적인 가해를 한 사람들. 사실을 말하려고 했던 사람들을 회유·압박한 2차가해자들이다. 두 번째는 판사다. 청주지법에서 노동관련 말도 안되는 판결문이 많았다. 양쪽 입장을 듣는 게 아닌 것 같다. 우리 증거는 40여종이고 근로감독을 받은 것 등을 제출했는데 사측 반박은 직원들을 회유·압박해 제시한 허위증언들이었다. 사측 주장을 고스란히 판결문에 올려놨다. 청주방송도 책임이 있지만 법대로 안한 사법부도 문제가 있다. 항소할 예정이다.”

▲ 고 이재학 PD 영정 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 고 이재학 PD 영정 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 관리감독에 소홀했던 곳들의 비판도 나온다.

“방통위는 늘 그렇듯 누가 죽어야만 나서고 사고가 나야지만 처리에 급급한다. 다시는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면서도 무한반복되고 있다. 형의 바람대로 제발 끝났으면 좋겠다. 방통위가 이번 사태에 대해 형을 같은 방송언론인으로 생각하고 방송사를 처단했으면 좋겠다. 말도 안되는 행태들이 벌어졌는데 방통위가 청주방송 재허가를 못하게 했으면 좋겠다. 노동부도 책임이 있다. 근로감독이 중요한 업무인데 놓친 것이기 때문이다.”

- 진상조사를 시작할텐데 공동조사단에 참여하는 청주방송 노조나 청주방송 사측이 제대로 조사할지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어제 청주방송 대표에게 이 사태까지 오게된 가해자들을 적극 추출해 징계 형사처벌까지 요구할 예정이라고 전달했다. 형은 단순히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다 해고당한 게 아니다. 후배작가들, 조연출들, 동료들 임금 개선과 인력 보충 문제, 제도개선 등을 말했다. 방송계 특히 청주방송의 기형적인 구조와 그 안의 부조리, 말도 안 되는 제도들에 대해 총대를 메고 앞장서 고쳐야 한다고 했다. 

청주방송 내부에선 (책임자를 떠넘기며) 폭탄돌리기 하는 것 같다. 공동조사단에 유족도 참여한다. 2017년 청주방송에서 노무컨설팅을 받았다. 노무법인 회장이 잘 아는 법인인데 거기서도 형을 정규직으로 봤다. 법원에서 이 자료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사측은 없다고만 했다. 노무법인에 전화 한통이면 됐을 건데. 유족들도 우려해서 사측 인사를 우리가 인정하는 사람들로 꾸릴 것을 주장했다.”

- 시민사회에서 공동대책위도 꾸릴 예정이다. 

“예전에는 한빛센터와 같은 민간재단들이 왜 있는지 잘 몰랐다. 형의 억울함이 풀리면 배상금이든 어떤 명목이든 돈을 들여서 사람들을 실질적으로 돕고 싶다. 형같은 사람들이 많을 거다. 프리랜서들, 작가들, 부당해고 당한 사람들에게 소송비용을 돕는다든지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 형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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