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의 오인환 공보처 장관은 1994년 4월9일 1차 지역민방을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4개 지역으로 선정해 발표했다. 이로써 노태우 정부 때 SBS 허가를 시작된 ‘민방시대’는 본격 문을 열었다. 당시 오인환 장관은 “날로 커지는 지역주민들의 민방시청 욕구와 세계적 정보와 흐름, 방송환경의 발전 추세를 감안해 지역민방시대를 열어 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정부는 국민의 공기(公器)인 지상파 전파를 활용하는 지역민방에 여러 제약을 뒀다. 최대주주는 30%로 제한했고, 정당이나 종교단체 등 특정 이익집단과 대기업과 기존 언론사의 참여도 배제했다. 두 달 뒤 4개 지역에서 신청을 마감한 결과 평균 5.7 대 1을 기록했다. 까다로운 진입장벽에도 불구하고 높은 경쟁률이었다. 지역별로는 광주가 9 대 1로 가장 높았고 부산이 3대 1로 가장 낮았다. 다시 두 달 뒤 4개 지역 민방사의 대주주가 발표됐다. 부산은 한창, 대구는 청구, 광주는 대주건설, 대전은 우성사료였다. 건설사가 2개 지역을 차지해 일부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곧 묻혔다.

▲ SBS는 대한민국 지상파 방송사로 태영그룹 계열 SBS미디어홀딩스 산하 민영방송으로, 1990년 11월14일 창립됐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SBS본부 홈페이지
▲ SBS는 대한민국 지상파 방송사로 태영그룹 계열 SBS미디어홀딩스 산하 민영방송으로, 1990년 11월14일 창립됐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SBS본부 홈페이지

김영삼 정부는 이듬해 인천(동양화학), 전주(세풍), 울산(주리원), 청주(뉴맥스) 등 4개 지역민방사 대주주를 확정 발표했다. 청주방송을 차지한 뉴맥스는 태일정밀 산하 기업으로 컴퓨터 주변 기기를 만들었다. 뉴맥스는 청문회에선 신호페이퍼에 뒤졌지만 서류심사에서 역전해 청주방송 최대주주가 됐다. 1990년 연말 SBS 허가 때 최종 경합했던 태영, 일진, 인켈을 놓고 밀실 심사를 했던 것과 닮았다. 당시 뉴맥스는 두진공영, 동양도자기, 충북은행 등 33개 사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민방사업에 뛰어들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던 지역민방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1997년 3월 대형 스캔들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정부 관계자와 야당 의원들은 지역민방 허가에 대통령 아들 김현철씨가 깊숙이 개입해 허가는 물론이고 해당 방송사 간부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다고 폭로했다.

이미 허가 때부터 소문은 무성했다. 지역민방을 추진하면서 정부와 관변 학자들은 장밋빛 전망을 쏟아냈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한채 마구잡이로 들어선 지역민방은 지역민의 목소리를 담아 공익성을 살린다는 좋은 취지와 달리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광주방송 대주주였던 대주건설은 건설경기 부진까지 겹쳐 2년을 못 버티고 나산그룹에 인수됐다. 이렇다 할 대기업이 없는 청주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정동채 의원은 “현철씨는 2차 허가를 받은 울산방송 대주주인 주리원백화점과 청주방송의 뉴맥스 실제 사주들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소통령으로 불렸던 ‘현철씨’는 이 문제 등으로 법의 심판을 받았고, 대통령 아버지는 TV 앞에 나와 부덕의 소치라며 대국민 사과문을 읽어야 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던 지역민방도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앞엔 속수무책이었다. 청주방송은 개국 1년 만인 1997년 11월 뉴맥스의 모기업인 태일정밀이 부도유예협약 대상 기업이 돼 경영난이 가중되자 2대 주주인 두진공영에 경영권을 넘긴다. 두진공영은 청주지역 중견 건설업체였다. 당시 청주방송 주식은 뉴맥스가 27%, 두진공영이 6.9%를 보유했었다.

▲ 청주방송 홈페이지.
▲ 청주방송 홈페이지.

당시 방송법은 설립 3년 이내엔 지배주주를 변경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러나 불가피한 사유가 생길 땐 공보처 장관이 심사해 지배주주를 변경한다는 단서조항에 따라 청주방송은 두진공영으로 넘어갔다. 두진공영은 1986년 설립된 건설업체로 1996년 매출 600억원에 7억원 남짓 당기순익을 올렸다. 두진 창업주인 이두영 회장(70)은 경기도 이천 출신으로 경남종고와 충북대학원, 고려대 언론대학원을 나왔다. 이 회장은 청주방송 컨소시엄 구성 때 사재로 지분에 참여하는 등 충북지역 재력가로 평소에도 방송사업 진출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정부의 민영방송 확대 방침에 따라 출범한 지역민방은 초반부터 광주와 청주에서 경영권이 바뀌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나머지 부산, 대구방송도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뉴미디어 시대가 도래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지역민방은 버티고 있다.

최근 2004~2018년까지 14년 동안 청주방송에서 일하다가 허망하게 쫓겨난 한 프리랜서 PD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고인은 방송사 임원의 교회 장로 취임식을 찍어야 했고 골프장까지 운전해주는 등 온갖 갑질에 시달리면서도 방송을 지켰다. 고인이 포기하지 않고 부당해고를 주장한 건 자신처럼 허망하게 쫓겨나는 동료가 더는 생기지 않게 선례를 만들고 싶어서다.

▲ 고(故) 이재학 PD 빈소 입구. 사진=손가영 기자
▲ 고(故) 이재학 PD 빈소 입구. 사진=손가영 기자

규모의 경제나 미디어산업의 미래보다는 책상 앞에 앉아 잿밥에만 관심이 많았던 정부가 만들어낸 비극이다. 이런 약탈적 경영을 멈춰 세워야만 한다. 방통위가 결자해지하는 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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