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성전환) 여성 A씨의 입학을 비난한 서울 소재 6개 여대 소속 자칭 ‘레디컬 페미니즘’ 단체들은 낸 지난 4일자 입장문에서 여대를 “남성중심사회에서 차별받고 기회를 박탈당하는 여성들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라며 “A의 여대 입학은 물론 이를 가능케하는 법원의 성별변경 허가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했다.

남성중심사회에서 혜택받던 남성이 자신을 여성이라고 주장한다고 여성들의 공간에 들여선 안 된다는 말인데 이는 논박이 가능한 주장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모순된 감정을 담아낸 궤변이다. 

남성중심사회란 ‘이성애 남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사회의 최상층에 위치하고 여타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차별받는 사회를 말한다. 따라서 이성애 여성, 동성애 남성·여성,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이들도 ‘이성애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봐 차별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따라붙는다. 언론이 전할 부분은 인류보편 가치에 근거해 남성중심사회를 비판하는 내용, 차별받는 이들이 어떻게 연대하고 있는지 등 남성중심사회를 해체하는 과정이다. 

▲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쏟아져 결국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다. 이에 숙대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진=pixabay
▲ 성소수자 혐오 발언이 쏟아져 결국 트랜스젠더 여성 A씨가 숙명여대 입학을 포기했다. 이에 숙대 측은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사진=pixabay

언론은 이런 기본 기능과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페미니즘 관점을 차용하거나 페미니스트들에게 힘을 실을 필요도 있다. 물론 페미니즘을 하나의 관점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어떠한 ‘페미니즘’이 특정집단을 혐오하거나 사회 진보에 도움되지 않을 때 언론은 그 ‘페미니즘’을 비판하거나 합리적인 의견에서 지울 필요가 있다. 

자칭 ‘레디컬 페미니즘’ 단체들 글을 요약하면 이성애 남성을 최상층에 놓고 젠더를 수직질서에 편입한 현재 구조를 그대로 둔 채 ‘남성들이 우리 여성들을 차별해선 안 되지만 우리 여성들은 여타 젠더소수자들을 차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남성에 비해 적지만) 여성들이 다른 젠더에 비해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겠다는 이기적인 발상으로 보일 뿐 소수자들간 연대로 새 합의를 이뤄가는 민주사회의 모습은 아니다. 

과거 메갈리아 사태 이후 일부 여성들이 자신들을 ‘페미니스트’라면서 여성을 ‘선’, 남성을 ‘악’으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언론에 등장했다. 여성운동은 남성에 비해 약자인 ‘여성’이란 정체성 하나로 모여 힘을 얻지만 동시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하나의 정체성만 요구받는 현상에서 벗어나야 했다. 즉 ‘정체성의 정치’를 넘어서지 못하면, 성소수자들에겐 기득권자로 비칠 수 있으며 남성중심사회를 유지하는 세력에겐 ‘너희도 다르지 않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이번에 A씨가 혐오에 상처받고 숙대 입학을 포기한 사태가 이를 상징한다. 이번 사태 역시 언론에 책임이 있다. 사건의 성격과 맥락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채 기계적 균형, 혹은 여러 입장이란 명목으로 입학 찬성과 반대로 전했다. 다음은 일부 기사 제목이다.

“여성 모욕”vs“차별·혐오 배제해야” 트랜스젠더 입학에 온·오프라인 찬반 가열 (6일 세계일보)
숙대 성전환 합격자에 두쪽난 여대…“女권리위협” vs “환영” (4일 중앙일보)
‘트랜스젠더 여대생’ 두고 “여성 권익 위협” vs “소수자 혐오” 갑론을박 (4일 아시아경제)
‘성전환 20대 합격’ 숙대…입학 찬반 논쟁 (4일 YTN)
“굳이 여대에?” 성전환자 숙명여대 입학에 트위터 분노 (1월30일 위키트리)

▲ 지난 8일 뉴시스 "'숙대 포기' 불구 트랜스젠더 조롱 계속…"정신병원 가""란 기사 마지막 부분. 이는 성소수자 혐오 온라인 댓글을 중심으로 작성한 기사로 제목 뿐 아니라 다수의 혐오표현을 기사본문에 인용했다. 미디어오늘은 자칫 이를 인용하면서 다시 한번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 아닌지 우려하면서도 해당 부분은 언론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일부 인용한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성전환한 여성 A씨가 숙대에 합격해 입학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처음 단독보도한 기자다.
▲ 지난 8일 뉴시스 "'숙대 포기' 불구 트랜스젠더 조롱 계속…"정신병원 가""란 기사 마지막 부분. 이는 성소수자 혐오 온라인 댓글을 중심으로 작성한 기사로 제목 뿐 아니라 다수의 혐오표현을 기사본문에 인용했다. 미디어오늘은 자칫 이를 인용하면서 다시 한번 혐오를 재생산하는 것 아닌지 우려하면서도 해당 부분은 언론의 심각성을 부각하기 위해 일부 인용한다. 해당 기사를 쓴 기자는 성전환한 여성 A씨가 숙대에 합격해 입학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처음 단독보도한 기자다.

일부 매체는 A의 숙대 입학이나 성전환 관련 혐오 댓글을 제목으로 뽑거나 댓글 내용을 기사로 전했다. 선정적인 댓글을 그대로 기사에 인용해 혐오를 확대재생산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 ‘클릭 장사’다. 

입학 과정에서 법적으로 문제가 없었는데도 한 개인의 선택을 법적 명분 없이 훼방 놓는 걸 존중받아야 할 하나의 의견으로 다뤄도 되나. 혐오와 혐오를 비판하는 주장을 동등한 선에 놓을 수 있나. 어떤 사안의 ‘찬성vs반대’ 식의 보도는 토론을 위한 과정인데 이번 사태에서 혐오세력들은 토론의 준비, 다시 말해 자신들 입장을 수정할 가능성을 보였는가. 언론이 확대해선 안 될 혐오를 하나의 의견처럼 다뤄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 숙명여대 상징 캐릭터 '눈송이'. 사진=숙명여대
▲ 숙명여대 상징 캐릭터 '눈송이'. 사진=숙명여대

여성으로 성을 전환해 여군복무를 신청했지만 군에서 쫓겨난 변희수 하사 사건이나, A씨가 숙대 법대에 지원하는데 동기를 부여했다는 트랜스젠더 박한희 변호사 인터뷰 등으로 이미 한국 사회에선 성소수자 혐오의 심각성과 문제점을 충분히 보여줬다. 페미니즘을 자칭한 혐오단체들은 이런 분위기에서도 혐오를 멈추지 않았고, 오히려 다수 매체가 이를 공론화하고 기사 제목으로 올렸다. 

의견에도 층위가 있다. 사실을 허위정보와 대립각 세울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정치권 소식을 여야 입장을 반씩 담는 식의 보도를 인권문제에 그대로 적용해선 안 된다. 유대인 차별이나 나치 지지를 토론이 가능한 것처럼 찬성과 반대를 절반씩 다룰 수 없다. 혐오자들의 언어를 별 생각없이 토론 가능한 논리로 채택한 게으른 언론도 한 개인의 대학선택권을 짓밟는데 일조했다. 

다행인 건 몇몇 언론사에서 성소수자 권리에 연대하며 혐오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줬다는 점이고, 불행한 건 이런 언론이 수차례 이런 목소리를 내왔는데도 여전히 혐오를 하나의 의견으로 포장하는 무책임한 언론이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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