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8일이면 대구지하철 화재참사가 발생한지 17주년이 된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는 세월호 참사에 견줄만큼 당시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그런데 17년이 흐르면서 국민들 기억속에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는  2003년 2월18일 오전 9시53분께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승객의 방화로 1079호 열차에 불이 나 반대편에서 진입하는 1080호 열차에 옮겨붙어 12량 전동차가 모두 타고 역사로 불이 확대돼 승객과 지하철 노동자 192명이 숨지고 151명이 부상당한 사건이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이 참사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컸던 철도사고로 세계적으로도 최악의 3대 지하철사고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는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이 걸린 지하철을 운영하면서 안전보다 비용절감을 우선하고 지하철 화재에는 무방비였던 데서 비롯된 인재였다. 먼저 전동차와 역사가 불쏘시개처럼 너무 쉽게 불탔고 화재시 유독가스가 대량 발생했다. 당시 대구지하철 전동차 단가는 1량에 약 5억원 수준으로 서울, 부산, 인천지하철 전동차가 약 8억원, 수출하는 전동차가 약 17억원이었던 것에 비해 너무 싼 값으로 화재에 취약한 부실 재질로 제작됐다. 지하철 역사도 화재시 불길과 연기를 잘 차단하고 배출하도록 건설되지 않았고 소방장비도 불비해 사건발생 뒤 3시간이나 구조대가 현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화재에 대비한 지하철 노동자와 승객의 훈련도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관제실과 기관사의 미숙하고 당황한 대응이 방화한 열차가 아닌 다른 열차에 불을 옮겨 붙게 만들었고 그 열차에서 가장 큰 인명피해가 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승객들이 수동으로 전동차 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 불타는 전동차에 갇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진출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시내를 뒤덮고 있다. ⓒ 연합뉴스
▲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화재로 진출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시내를 뒤덮고 있다. ⓒ 연합뉴스

대구지하철 화재참사 이후 17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철도·지하철은 얼마나 안전해졌나?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뒤 2004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 제정되고, 철도·지하철 분야에선 2006년에 ‘철도안전법’이 제정되는 등 재난과 안전을 관리하는 법제는 형식적으로 강화되고 체계화됐다. 이에 따라 철도·지하철에서 실제 안전이 강화되고 재난 대응력이 높아졌을까? 필자는 그렇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대구지하철 참사 뒤에도 이후에도 안전보다 비용절감을 우선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철도지하철 운영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까지 지속돼 오히려 안전 위협이 늘어났다. 대형 인명피해를 낳은 큰 사고는 없었지만 크고 작은 열차의 탈선과 충돌, 철도지하철 노동자 및 여객과 공중의 사상사고가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지하철에서 낡은 전동차 교체, 안전업무의 직접고용 등 안전 예산과 인력에 투자를 확대하는 부분적 변화를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와 촛불혁명을 거쳐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며 공공기관부터 부채가 늘어나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한계는 얼마가지 않아 드러났다. 철도지하철 안전과 관련하여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아예 시설과 차량에도 투자하지 않았다면 문재인 정부는 교체시점이 된 낡은 시설과 차량의 개선에는 투자를 확대하는 변화가 불가피했다. 반면 인력 개선 투자는 최소한에 그치고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효율화를 계속 추진하는 것이 다시 분명해졌다.

재작년 이후 강릉선 KTX 탈선, 밀양역 철도노동자 직무사망 사고 등 크고 작은 철도사고가 잇달아 발생한 이후 철도공사와 국토교통부는 철도차량과 철도시설, 각종 유지보수 장비 개선에는 투자를 대폭 늘리면서도(5년에 8조3000억원을 투자) 공기업 중 산재1위인 철도공사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교대제 개편 소요인력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다. 얼마전 서울교통공사는 인력충원을 하지 않고 기관사 노동시간을 늘리려다 노조가 작업거부를 결의하자 잠정중단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새로 개통되는 노선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최저임금 수준을 지급하며 근로기준법을 위반하는 극단적 인력효율화가 확산되고 있다. 근래 들어 재정에서 철도투자가 도로투자를 상회하며 간선철도, 광역철도, 도시철도 등 철도지하철 산업 전반에 투자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그런데 이 재원이 정부 또는 공공 재정으로 전부 충당되지 않고 민간자본 투자도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철도지하철 운영 능력을 갖추지 못한 민간투자자를 위해 공기업인 철도·지하철 운영기관이 민간자본의 돈벌이를 위한 하청기관으로 전락해 용역형 자회사를 설립 운영하면서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 재정으로 건설된 노선도 비용절감을 위해 민간위탁으로 용역형 자회사를 통해 운영하는 것도 아직 지속되고 있다. 서해선, 경전철, 9호선 2-3단계가 대표 사례다. 이후 GTX, 중부내륙철도 등 향후 민간자본투자로 건설되는 많은 노선에서 동일한 문제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철도·지하철 안전을 확보하고 재난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시설, 차량, 재난대응 설비와 같은 물적 요소, 철도지하철 노동자와 승객과 공중 등 인적요소, 이를 종합·체계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안전과 재난 관리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그 중에서도 주체적이고 최종적으로 안전 확보와 재난 대응을 책임지는 사람이 적정하게 배치되고 교육훈련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2018년 12월9일 강원 강릉시 운산동의 강릉선 KTX 열차 탈선 사고 현장에서 이틀째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 2018년 12월9일 강원 강릉시 운산동의 강릉선 KTX 열차 탈선 사고 현장에서 이틀째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데 문재인 정부가 시설과 차량, 유지보수 장비 투자는 확대하지만 인력부문에선 효율화로 돌아가고 있고, 신규노선에서 용역형 자회사 형식의 극단적 인력효율화가 확대되는데 이는 안전 확보와 재난 대응에서 결정적 약점을 안고 있다. 평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장애와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인력이 부족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터널과 교량이 많은 한국 철도, 지하구간이 대부분인 도시철도에서 대구지하철 참사처럼 탈선, 충돌,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개연성을 안고 있다.

그래서 철도·지하철 노동자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노동시간 단축과 안전인력 충원을 통한 시민안전을 확보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국민들이 대구지하철 참사를 잊지 않고 철도·지하철 안전 확보의 주체로 함께 나서도록 대구지하철 참사 17주기 추모주간을 정해 적극 알려 나갈 것이다. ‘전쟁에 대한 기억 없이 평화 없고, 사고에 대한 기억없이 안전 없다’, ‘돈보다 안전이고, 안전의 시작과 끝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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