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청주방송(대표 이두영·이성덕)에서 부당해고돼 법적으로 싸우다 숨진 고 이재학 PD는 자신의 소송을 도운 직원들을 회유·협박하는 회사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생전에 밝혔다. 모두 이 PD의 노동자성을 입증해 준 동료직원이었다. 청주방송은 진술서를 쓴 이들에게 ‘진술서 제출을 취소해라’고 요구했다. 

고 이재학(38) PD는 지난해 7월과 10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나에게 진술서를 써 준 직원들이 회사로부터 회유, 협박을 당하고 있어 너무나 미안하다”고 밝혔다. 이 PD의 동료였던 청주방송 전·현직 직원 3명이 ‘이 PD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진술서를 이 PD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 낸 후였다. 

명목상 프리랜서였던 이 PD는 2018년 4월 인건비 인상을 요구하다 부당해고돼 그해 9월 청주지법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넣었다. 동료직원 3명은 진술서에서 “이 PD는 정직원과 다를 바 없이 근무했고 상사로부터 똑같은 지휘·감독을 받았다. 이 PD는 인건비 인상을 요구하다 부당하게 해고된 게 맞다”고 밝혔다.

▲ 고 이재학 PD가 생전 공개한 한 동료 직원의 자필 진술서.
▲ 고 이재학 PD가 생전 공개한 한 동료 직원의 자필 진술서.

당시 여러 내부 직원들을 통해 상황을 확인한 이 PD는 “칼만 안 들었을 뿐, 압박이 아니라 협박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정 중간관리자들이 급여, 연봉을 언급하며 ‘앞으로 조직생활을 어떻게 할 거냐’, ‘연봉계약 할 땐 어떻게 할 거냐’, ‘회사에서 니 편을 들어주겠냐’ 등의 말을 했더라”며 “아내가 청주방송 프리랜서로 재직 중인 한 직원에게는 아내 고용형태를 언급하며 ‘너는 가장으로서 행동해야지’하며 더 큰 수위로 압박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 PD는 확인한 당시 문제를 공론화하려 했으나 이들이 추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걱정에 입을 닫았다. 그는 “내가 이 사실을 말하면 그들이 나에게 말을 한 꼴이 된다. 내 사건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들은 치졸한 복수극을 당할 수 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공격받고 보복받는 게 두렵다”고 밝혔다. 

미디어오늘 취재 결과 진술서를 제출한 3명 중 1명은 청주방송 퇴사자였다. 남은 2명 중 1명은 회사의 거듭된 지시 끝에 진술서를 쓰게 된 경위서를 제출했다. 경제적 문제 등을 겪던 한 직원은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 기존 진술서를 번복하는 내용의 진술서를 쓰고 죄책감에 시달렸고 직접 이 PD를 찾아가 사죄까지 했다. 

3개 진술서 “이재학 PD는 실질 정규직 PD였다”

3개 진술서는 상당히 구체적이다. A씨가 쓴 진술서엔 “이재학 PD의 모든 업무는 청주방송 관리자들의 지시와 보고, 결재와 승인을 거친다. 예를 들면, 이재학 PD가 사업계획서, 보조금 협의 관련 문서, 보조금 신청 문서, 보조금 정산 및 증빙 서류 등을 결재 문서로 기안하면 본인을 거쳐 국장-본부장-대표이사님 결재를 받고 다시 본인에게 내려오면 해당 서류를 이재학 PD에게 전달하면 이걸 가지고 이 PD가 국장 등에게 혼난 적도 있다. 연출 과정에서 이 PD는 청주방송 법인카드로 진행비를 처리하고 영수증 처리를 해 일일이 결재를 받아야 한다”고 썼다. 

A씨는 또 “보조금 관련 업무는 청주방송에서 매우 중요한 업무라서 청주방송 직원들의 담당업무인데 이재학 PD는 회사 지시로 이런 업무를 상시적으로 했다. 또 이 PD는 정규직만 하는 중계차와 부조정실 업무도 회사 지시로 수행했다. 이런 이유로 공무원들, 청주방송 간부나 정규직 PD들과 직원들, 프리랜서들 모두 이재학 'PD'라고 불렀고 대우했다”고 밝혔다.

▲ A씨가 쓴 이재학 PD에게 작성해서 준 진술서 일부. 이 PD의 노동자성을 긍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A씨가 쓴 이재학 PD에게 작성해서 준 진술서 일부. 이 PD의 노동자성을 긍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B씨는 “(해고 당시) 모 국장이 인건비 문제로 이재학 PD와 언쟁을 하다가 이 PD에게 그만두라고 얘기했다. 그 이후 국장님이 모 팀장에게 이 PD를 대체할 외주제작사를 물색하라고 지시했다”고 자필 진술했다. 

B씨는 또 “이 PD는 오래 청주방송 관리자와 상급자들 지시를 받으며 방송연출은 물론 행정업무까지 사실상 청주방송 직원처럼 근무하면서 회사 정규직들이나 프리랜서들과 협업을 하면서 가족처럼 잘 지냈고 업무능력도 탁월했는데 먼저 잘리게 돼서 다른 사람들이나 본인도 모두 안타까워 했다”고 적었다. “이 사실은 당시 프로그램을 같이 하던 모든 스탭들은 물론 방송국 관계자들이 전부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도 덧붙였다.

C씨는 “이재학 PD는 청주방송 직원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하기에 근로시간과 근무장소에 매인다. 특히, 이 PD는 국장에게 일일업무보고를 해야 하므로 매일 오전 8시30분 이전에 출근해야 했고, 청주방송 직원 등과 협업을 위해 오후 6시 이전 퇴근은 어려웠다. 편집작업 등으로 매주 며칠 야근이나 밤샘작업이 있다. 스튜디오 촬영, 회의와 행정업무, 편집 등은 모두 청주방송 건물에서 진행된다”고 썼다.

C씨는 이어 “이 PD의 촬영과 편집 등 방송 제작에 필요한 모든 물품은 청주방송이 제공하고, 청주방송 근무 당시 이 PD는 많은 프로그램과 행사 등 업무를 해서 다른 회사 업무를 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실제로 다른 회사 업무를 한 적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C씨가 이 PD에게 작성해서 준 진술서 일부.
▲ C씨가 이 PD에게 작성해서 준 진술서 일부.

청주지법 “진술자, 증인 출석 안해서 신뢰 못해”

이 PD 사건을 심리한 청주지법 민사6단독 정선오 판사는 3개 진술서와 관련 “각 진술자들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바가 없어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5일 이 PD 빈소에서 만난 이용우 변호사는 “수년 동안 같이 근무한 동료 직원의 상세한 진술서를 법정 증언이 없다고 배척했는데 이런 경우는 통상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 PD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대리했다. 

한편 지난해 7월 청주방송 관계자는 ‘진술서를 쓴 직원을 회유·협박한 적이 있느냐’는 미디어오늘 전화 질의에 “사실이 아니”라고 답한 바 있다. 이와 관련 미디어오늘은 7일 청주방송 측에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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