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자유한국당이 KBS 보궐이사로 추천한 이헌 변호사를 대통령에게 임명 요청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여야 정치권의 나눠먹기식 이사 추천을 바꾸지 않으면 제2 이헌 사태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KBS 보궐이사 논란의 출발점은 천영식 KBS 이사다. 지난달 총선 출마를 이유로 사표를 내면서 공석이 됐다. 천 이사는 한국당 추천 몫이라 보궐이사 역시 한국당 추천으로 돌아갔다. 방통위가 KBS 이사 11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방송법에 규정했지만 여당 7명, 야당 4명을 추천하는 관행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당이 도저히 KBS 이사로 수용하기 어려운 인물을 보궐이사로 추천하면서 반발을 키웠다. 이헌 변호사는 과거 새누리당 추천으로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아 특조위 활동을 막은 대표 인물이다. 정치 성향을 떠나 세월호 진상규명을 방해한 인물이 공영방송 KBS 이사로 역할할 수 없다는 비난이 높았다. 이헌 변호사는 세월호 유족으로부터 고발 당해 검찰 수사까지 앞두고 있다.

언론노조를 포함한 언론시민단체로 구성된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전면에 나서 이헌 변호사의 KBS 이사 임명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에 방통위는 6일 비공개 전체회의에서 이헌 변호사의 KBS 이사 선임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대통령에 임명 요청을 않기로 의결했다. 이날 비공개 전체회의 결과는 4대1이었다. 검찰 수사대상인 이헌 변호사를 공영방송 이사로 추천하면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하고, 해당 인사를 청와대에 추천할 경우 온갖 비난을 방통위가 받는다는 판단이 다수였다고 전해졌다. 방통위 고위관계자는 “이헌 변호사의 KBS 이사 추천은 KBS의 위상을 흔드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KBS본부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이번 결정이 공영방송 이사 자질을 갖추지 못한 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이며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다만, 제2의 이헌 사태는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 이사 임명과 관련한 방송법 규정은 “KBS이사는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어 정치권이 개입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여야 7대 4 이사 추천 나눠먹기 관행이 계속되는 한 공백으로 남은 KBS 보궐이사에 또다시 논란의 인물이 올 수 있다.

▲ 6일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열린 방송독립시민행동 기자회견. @KBS본부.
▲ 6일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열린 방송독립시민행동 기자회견. @KBS본부.

언론계가 ‘법대로’ KBS 이사를 임명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KBS본부는 “이번 보궐이사 선임 과정부터 방통위가 내부 합의했던 ‘국민추천 이사제’ 등 ‘국민의 뜻’을 반영할 방법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적용해 나가야 한다”며 “‘정치환경에 영향받지 않는 지배구조’라는 기본 전제를 만드는 데 더 이상 머뭇거릴 이유도, 여유도 없다. 근거도 없이 KBS 이사 추천권을 넘겨받은 정치권이 그 권리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천영식 전 이사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모두 똑똑히 목격했다. ‘국민의 방송’의 제자리를 찾기 위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작업, 이번 보궐이사 선임 과정이 그 출발점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방통위는 지난달 16일 “KBS 등 공영방송 이사, 사장을 선임할 때 국민참여를 보장하고 절차적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업무보고했고, 지난 2018년 정책의견서를 통해 “공영방송의 독립성 및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치환경에 영향받지 않는 지배구조 확립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라며 ‘국민추천 이사제 도입’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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