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재학 PD는 처음부터 판례를 말했다. 미디어오늘이 이 PD의 부당해고 문제를 취재하려고 처음 전화했을 때 “나는 판례를 남기겠다는 서약서를 변호사님과 썼다”고 했다. 회사가 합의하려 해도 받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지 않겠단 약속이다. “판례를 남기면 당장 회사가 후배들에게 조심하겠고, 어떻게든 전국에 알릴 수 있다. 쉬운 말로 (내가) 14년 못 썼던 계약서를 전국 민방 프리랜서들이 쓸 수 있다.” 이 PD가 말했다.

이 PD는 2004년부터 2018년까지 청주 지역 민영방송 CJB청주방송에서 일했다. 만 22세 때 입사해 14년 근무했지만 청주방송엔 그의 계약 기록이 없다. 그는 계약서 없이 ‘프리랜서 PD’로 살았다. 고용계약이 뭐고 용역계약이 뭔지, 연장근로수당은 뭐고 4대 보험은 뭔지 구분도 못하는 때 입사했다.

그는 퇴사가 너무 억울했다. 14년을 돌아보면 “부당해고”란 말밖엔 나오지 않았다. 조연출로 시작한 그는 2010년부턴 연출PD도 맡았다. 회사 지시였다. 정직원이 아닌 그가 작가·조연출 채용 면접을 봤고 제작비 정산 등 각종 행정업무도 처리했다. 정직원이 기안해야 할 문서도 기안해 결재받았다. 해고 직전 그는 ‘아름다운 충북’과 ‘박달가요제’ 등을 연출했다.

“나만 보고 들어온 친구(스태프)들인데 페이가 이래도 되나.” 2018년 3~4월께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공식 요구하자는 말들이 팀 내에서 나왔다. 주 1회 60분 방영되는 ‘아름다운 충북’ 회당 인건비는 연출직 40만 원, 작가 30만 원이었다. 이 프로그램만 맡으면 한 달 소득이 120~160만 원이다. 부업을 하긴 힘들었다. 이 PD는 “2일 촬영을 간다. 그럼 3일 동안 편집하고 방송 송출한다. 그 와중에 다음 주 것을 또 준비한다. 이 과정이 매주 반복된다”고 말했다.

인건비 인상을 얘기하자 그는 “너 그만두겠다는 소리 아니냐”는 답을 들었다. 당시 기획제작국장은 팀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화를 냈다. 그리고 며칠 후 “니가 맡은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손 떼라”는 통보를 들었다. 이 PD는 “이 상황에서 프리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손 떼라는데 출근할 수도 없다. 20~30대를 다 보낸 데서 나오니 황당했다. 그렇게 ‘직장갑질119’를 찾았고 이용우 변호사를 만났다”고 말했다. 2018년 4월께다.

▲고 이재학 PD 영정 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고 이재학 PD 영정 사진. 사진=손가영 기자.

“명절 때 인사 안 가면 개XX당한다. 프리랜서인데”

미디어오늘이 취재한 청주방송 전·현직자 8명은 “이재학PD는 청주방송 직원이죠”라고 말했다. “100이 있으면 90이 정직원과 같았고 10만큼만 차이”가 났다. 차이는 근태를 일일이 통제하지 않거나 출장비나 근로수당을 주지 않은 부분 등이다. 그렇다고 이 PD가 근태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었다. “눈 밖에 나면 잘린다. ‘나가’라는 한 마디로 잘리는 프리랜서가 여럿”이었다.

초년생 땐 청주방송에서 살다시피했다. ‘하루 몇 시간씩 일했느냐’는 질문에 이 PD는 “방송쟁이들은 그런 질문에 답을 잘 못한다. 밤새는 게 부지기수니까. 피크 시즌엔 ‘한 달이 50일이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20대 땐 하도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니 별명이 ‘라꾸라꾸(침대)’였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에서 보는 보람, 이걸로 방송쟁이들이 다 견디고 있는거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렇게 차별도 견뎠다. 이 PD는 1박 2일 부산 촬영 일정이 있을 때 숙박을 청주에서 한 적이 있다. “여행 관련 프로그램이었는데 부산에서 2일 동안 촬영해야 했다. 근데 프리랜서니까 출장비를 안 준다. 왔다 갔다 하라는 거다. 청주에서 부산까지 4시간 걸린다. 전날 부산에서 밤 9시 끝나고 청주에 오니 새벽 1시. 조금 자고 새벽 5시에 나간 적 있다. 그때 팀장은 우리를 챙겨 주려 한 좋은 분이었는데 위에서 허가를 안하니 그랬다(출장비를 못 줬다).” 이 PD의 말이다.

▲소송에 증거로 제출된 고 이재학 PD 명함.
▲소송에 증거로 제출된 고 이재학 PD 명함.
▲고 이재학 PD가 연출했던 아름다운 충북 갈무리
▲고 이재학 PD가 연출했던 아름다운 충북 갈무리

“그게 일을 배우는 거고, (직장에) 충성하는 건 줄 알았다. 20대 초반 애들이 뭘 알겠느냐.” 프리랜서 이 PD는 조연출 시절 간부, 선배 직원들의 이삿짐을 날라줬고 아침 7시에 일어나 골프장까지 차로 운전해주고 다시 데리고 온 적도 많다. ‘술자리까지 운전해 달라’고 지시해 간부를 태워준 적도 부지기수다. 그는 “명절 때 인사 안 가면 개XX당한다. 프리랜서들도 관례처럼 국장한테 인사하러 가는 거다. 지금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 PD는 ‘지시-복종’ 관계가 그만큼 깊었다며 한 예를 들었다. 부당해고되지 않았다면 그냥 묻고 갈 사안이었다. 2016년 11월27일 일요일 아침, 이 PD는 하아무개 당시 기획제작국장의 전화를 받고 청주 한밭교회로 향했다. ‘회사에서 카메라 들고 교회로 와 회장을 찍으라’고 해 ‘예. 가겠습니다’라 답했다. 그는 자신이 찍었다며 이두영 청주방송 회장의 장로 취임식 영상을 보여줬다.

그는 “과잉충성”이라며 이두영 청주방송 회장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직관계가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는 “청주방송엔 회장 친인척 직원이 많다. 각 국 마다 한 명씩은 있는데 그걸로 회사를 지배하는 것 같다. 회장 사모님 생일, 초·중 동문회를 챙기는 국장들도 봤다. 회사 사람들은 ‘저 직원은 누가 받았는지(취직시켰는지)’ 다 안다”고도 했다.

▲고 이재학 PD가 남긴 유서 전문을 재편집. 디자인=이우림 기자.
▲고 이재학 PD가 남긴 유서 전문을 재편집. 디자인=이우림 기자.

재판 결과 두렵다며 “지역 유지들 멕시코 카르텔보다 심해”

이 PD는 항상 재판 결과를 두려워했다. “지역 유지들 카르텔이 멕시코 카르텔 저기 가라”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 PD는 “지역에서 큰 힘, 카르텔을 쥔 언론이 지역민방과 KBS, MBC다. 지자체 까는 뉴스 말고 순 사건사고만 내보낸다. 언론 기능을 상실했다. 지역 언론이 먹고 사는 큰 수익 중 하나가 관공서 광고”라고 말했다.

그는 청주방송에서 있었던 자기 사례도 들었다. “옛날에 시사프로그램 맡았을 적인데 충북 내 한 지자체장이 국비, 도비, 시비를 마음대로 쓴다는 내용이었다. 2부작으로 제작했고 1부작이 나갔을 때였다. 다음날 2부작이 안 나갔다. 그 지역 지자체장이 청주방송의 모 인사들을 만나더니 ‘방송 내보내지 말라’가 된 거다. 그래서 방송이 중간에 끊겼다.”

그는 또 얼마 전 청주방송에서 낸 한 모델하우스 리포트를 보고 황당했다고 말했다. 음성군에 건설붐이 인다는 리포트였는데 두진건설이 시공하는 아파트의 모델하우스였다. 이두영 회장은 두진건설 회장이기도 하다. 이 PD는 “지역 민방은 (소유주가) 사유화된 곳이 많다. 청주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했다.

이두영 회장은 미디어오늘과 세 차례 통화 모두에서 “청주방송 일을 왜 나에게 묻느냐”고 일관되게 말했다. 이 회장은 “대표이사 이사회 의장 역할만 하지 경영엔 일절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대표이사에게 전화해 내용과 답변을 들으라”고 설명했다.

이 PD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 한창 진행되던 지난해 7월, 이성덕 사장은 “전임 사장의 일이고 (본인은) 충주 본부, 북부권에 있어 내용 자체를 잘 모른다. 법원 판단이 나온 게 아니니 조금 더 지켜보고 취재해달라”고 말했다. 이 PD의 직속 상관이었던 간부도 “프리랜서에게 해고가 성립이 되느냐. 프로그램 연출은 내가 맡는 거고 그에게 찍어오라고 필요한 지시를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예전에 ‘이거 판례 남겨서 남은 후배들은 이런 부당 대우 받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했던 거 기사에 실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언론사들 정권 바뀌고 비정규직 사안 다루잖아요. 언론사들이 가장 폐해가 심한 곳인데…. 그런 얘기도 담아주면 좋겠어요.” 이 PD가 지난해 7월15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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