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금희와 최은영, 이기호의 이상문학상 수상거부, 대상을 받은 작가 윤이형의 절필 선언, 이상문학상을 주최하는 출판사 문학사상사에 기고 거부 등 ‘이상문학상 사태’가 일파만파다. 이상문학상 사태는 문학사상사가 수상자들에게 수상작 저작권을 3년간 양도받는 조항이 불공정하다는 비판에서 시작했지만 이번 사태 배경에 유력 문학상조차 권위가 바닥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한국 문학계의 중요한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관련기사 : 이상문학상 ‘# 업무 거부’ 작가들 해시태그 보이콧 선언]

문학상 비판은 한 세대 전부터 이어졌다. 한 예로 신경숙 표절로 시끄럽던 2015년 등단하지 않은 작가 손아람은 문학상 완전폐지를 주장하며 문학상이 폐지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자신이 문학상을 운영할 예정이라며 상금 100억원짜리 1회 수상작을 자신의 작품으로 선정했다. 문학상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풍자였다. 

그간 비판이 없었던 게 아니라 ‘문단권력’이라 불리는 카르텔이 문학계를 점령한 권력구조가 깨지지 않았을 뿐이다. 유명 문학출판사와 문예지, 몇몇 신문사들이 운영하는 문학상을 받아야 하고 그들이 열심히 띄워주지 않으면 생명줄이 위태롭던 작가들은 이렇게 ‘감히’ ‘대범하게’ 대들지 못했다.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이 운영하는 현대문학상과 함께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이상문학상은 200~400개로 추정하는 여타 문학상과 위상이 달랐다. 김승옥(1회), 이청준(2회), 박완서(5회), 이문열(11회), 윤대녕(20회), 은희경(22회), 신경숙(25회), 김훈(28회), 한강(29회), 김영하(36회), 김숨(39회) 등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는 그 자체로 한국 문학의 역사다. 

“이 상 역시 제 마음자리 가장 깊은 곳에 소중하게 간직했다가 소설 쓰는 일에 바치는 수고에 지쳤을 때, 그 일이 허망하고 허망해서 막막해졌을 때 꺼내 볼 겁니다. 그때 그것은 한 가닥 빛으로든, 모진 채찍으로든, 저에게 큰 용기가 되어줄 겁니다.”

박완서가 1981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았을 때 소감이다. 이상문학상은 작가들의 꿈이고 버팀목이었다. 최재봉 한겨레 문학기자는 최근 한겨레 칼럼에서 이를 인용하며 “(최근 사태의) 저변에는 문학상 자체의 위상 변화 및 변질이라는 더 본질적인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 이상문학상을 운영하는 문학사상사
▲ 이상문학상을 운영하는 문학사상사

2013년 정치적인 이유로 현대문학에 원고거부·수상거부 움직임이 있었고, 김동인의 친일행적과 운영주체인 조선일보 탓에 동인문학상 역시 수상거부와 비판이 있어왔지만 이번 사태는 불공정계약의 문제라는 점에서 다소 다른 결을 보인다. 

‘그들만의 리그’에 참여하지 말자는 혹은 참여하지 않고도 작가들이 생존할 토양이 만들어졌고, 이 건강한 생태계가 기존 악습과 거세게 충돌해 승리했다고 볼 수 있다. 작가들 뿐 아니라 독자들의 비판이 쏟아지자 임지현 문학사상 대표는 지난 4일 “저작권 인식 부족을 통감한다”며 ‘저작권 3년 양도’를 ‘출판권 1년 설정’으로 수정하고 작가들과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문학상의 권위가 왜 이렇게 추락했을까. 상업주의와 불공정(수상작 선정과정의 불투명)을 원인으로 꼽는 분석이 많다. 

한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은 매년 베스트셀러였다. 문학작품이 많은 독자에게 전달되고 문학계를 넘어 사회적 담론을 만드는 현상, 즉 대중성은 상업성으로 이어진다. 작가들에게 대중성을 요구하면서 상업성을 비난하는 건 작가에게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상문학상을 주면서 저작권을 가져가는 게 대표적인 예다. 판매부수대로 인세를 주지 않고 ‘매절’이라며 첫 원고비만 지급한 이후 수익을 출판사가 독식하는 관행을 정당화 했다. 

노벨문학상 시즌이 되면 전 세계에서 유력 후보 작가들 작품이 새 표지를 씌우거나 번역을 다시 해 서점에 깔린다. 수상하면 불티나게 책이 팔리고 작가는 유명해진다. 노벨문학상 시장은 여전히 거대하다. 프랑스의 권위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은 상금이 만원 남짓이라 얼핏 상업주의와 거리를 두고 순수문학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역설적으로 공쿠르상은 이를 통해 권위를 얻고 상업성까지 확보해 수상작은 30여개 언어로 번역된다. 

한국 작가 한강이 받아 국내에서도 유명해진 영국의 맨부커상은 심사기간 동안 대중의 관심을 충분히 끌어낸다. 수상 세달 전 1차로 선정한 롱리스트를 공개하고 한달 전 쇼트리스트로 다시 추린다. 수상작 뿐 아니라 후보작들도 인기를 얻어 수차례 언론에 노출된다. 세계 3대 문학상인 공쿠르상, 노벨문학상, 맨부커상은 다분히 상업적이다. 상업성만으로 권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 이상문학상 작품집
▲ 이상문학상 작품집

한국 문학상의 권위를 갉아먹는 건 불공정이다. 2013년 계간 ‘문학의오늘’ 여름호에서 작가 70명에게 ‘문학상 선정과정이 공정하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공정하다’고 답한 작가가 13명(18.6%)에 그쳤다. 수상자가 상금을 심사위원과 나눠야 하거나, 선배 심사위원의 입김으로 당선작이 결정되기도 한다. 

한국 문학상 시장에선 무명작가의 좋은 작품보다 더 많이 팔릴 유명작가의 신작만 주목받는다. 수상작에는 다양한 평이 아닌 칭찬일색인 ‘주례사 비평’만이 따라붙는다. 반면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은 때론 수상작을 선정하지 않기도 하고, 모든 심사위원의 비평만 ‘문예춘추’에 공개되기도 한다. 수상작이라도 혹평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한국 문학상이 상업성과 권위를 모두 잃은 이유다.  

온라인을 포함해 글 쓸 공간이 많아진 것도 문학상에 기대지 않아도 되는 한 요인이다. 꼭 유력 출판사나 문예지가 없어도 살아남는 작가가 생겼다. 일부 작가는 기획사에 들어가 자신을 보호할 힘이 생긴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 흐름이다. 이제 갑을관계로 불공정을 유지하던 관행이 버틸 수 없는 조건이다. 

이번 문학사상 사과문에 “최근 경영 악화로 본사 편집부 직원들이 대거 퇴직하며 일련의 상황에 대한 수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문장이 나온다. 최근 문학출판계의 슬픈 현실을 드러낸다. 문학사상 사과문처럼 “폐습을 끊어내고 작은 소리에 귀 기울여 낡고 쇠락한 출판사가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면 이상문학상 사태는 문학판이 거듭날 전환점일지 모른다. 

[관련기사 : 반성 없는 문학권력, 다시 돌아본 신경숙 옹호론]

※참고문헌 : 이승하, 문학상이 공정하지 않으면 한국문학의 발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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