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고서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회원 모임인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의 공동 창작물입니다.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매주 화요일 저녁에 만나 방송 프로그램과 뉴스 등을 모니터하고, 한 달에 1개 정도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방송비평을 함께하고 싶은 분들은 민언련(02-392-0181)으로 연락주세요.

2019년 대한민국 TV 드라마는 다사다난한 한 해를 보냈다. 넷플릭스, 티빙 등으로 대표되는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성장‧경쟁하면서 TV 플랫폼 자체의 장악력이 크게 줄었고 이에 질세라 지상파 3사도 통신사와 손잡고 통합 OTT 서비스 ‘웨이브(wavve)’를 만들었다. 그러나 플랫폼 다변화로만은 어려움을 타계하지 못했는지 지상파 3사 모두 드라마 제작과 편성에 큰 변화를 줬다. 지난해 4월 MBC는 지상파 3사 중 가장 먼저 월화드라마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실제 폐지는 지난해 9월, 오는 3월 재개 예정) 이어 KBS도 차례대로 MBC를 따랐다.(KBS는 지난해 11월 중단했다가 오는 4월 재편성함). 게다가 황금 시간으로 고정돼 있던 오후 10시 미니시리즈 편성의 틀을 깨고 지난해 5월 MBC가 <봄밤>서부터 오후 9시 편성으로 바꿨다. SBS는 2019년 2월 <열혈사제>를 시작으로 지상파 최초로 금토드라마를 신설했다. 최근 한 회를 3부로 나누는 쪼개기 편성으로 논란이 된 <스토브리그>도 금토드라마다.

제작과 편성, 송출 과정에서 다변화를 꾀하고 있는 한국 드라마. 그렇다면 드라마의 소재나 내용은 어떠할까. 다양성을 요구하는 현재의 콘텐츠 시장 흐름에 맞게 드라마 시장도 노력하고 있을까? 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에서는 2019년 한국 드라마의 경향을 살펴보기 위해 주조연급 등장인물의 직업 및 경제적 배경을 살펴보고 이어 성비와 연령별 비율 등을 분석했다. 먼저 주요 등장인물의 직업이 드라마가 그리는 세계관에 밀접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교육 광풍 및 대학 입시문제를 신랄하게 다룬 JTBC <스카이캐슬>의 등장인물인 ‘김주영’(김서형 분)의 직업은 입시코디네이터였으며, 은행 내 권력 움직임과 파벌 다툼을 밀도 있게 다룬 MBC <더뱅커>의 주인공 ‘노대호’(김상중 분)의 직업은 은행 감사였다. 이어 한국 사회를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는지 보기위해 성별, 연령별 분석을 더했다.

조사 대상 설명

작년 한해 방영된 드라마 123편 살펴… 500여명 등장인물 직업도 분류

조사대상은 지상파(KBS1, KBS2, MBC, SBS), 종합편성채널(JTBC, TV조선, 채널A, MBN), CJ계열 PP(tvN, OCN) 등 총 10개 방송사의 2018년 10월부터 2019년 10월까지의 12부작 이상 종‧방영 드라마 123편이다. 단막극 및 12부작 미만의 드라마인 KBS2 <땐뽀걸즈>와 tvN <톱스타 유백이>, OCN <트랩>‧<타인은 지옥이다> 등은 모니터 대상으로 선정하지 않았다. 또한 등장인물의 직업군을 원활하게 분석하기 위해 조선시대 이전의 시대배경을 담은 사극인 KBS2 <조선로코 녹두전>, MBC <신입사관 구해령>, SBS <녹두꽃>‧<해치>, JTBC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나의 나라>, tvN <왕이 된 남자>‧<아스달 연대기>도 제외했다. 한국전쟁, 일제강점기 등 역사적 배경이 뚜렷한 시대극인 MBC의 <이몽>도 마찬가지다. 

1953년 이후 배경을 다루는 드라마는 모니터 대상엔 포함됐으나 그 속에서 별다른 직업이 없으며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직업 분류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 기준에 따라 KBS2 <단 하나의 사랑>의 ‘천사’(김명수 분), MBC <어쩌다 발견한 하루>의 ‘요정’(이태리 분), SBS <절대 그이>의 연인용 로봇 ‘제로나인’(여진구 분) 등의 등장인물은 분석에서 빠졌다. 위 기준에 따라 총 123편 중 13편의 등장인물 일부 또는 전부가 조사대상에서 배제됐다. 

드라마 한 편당 조사대상으로 삼은 등장인물은 주‧조연 포함 4명으로 한정하였고, 극중 기여도를 따져봤을 때 4명으로 자르기 어려운 경우, 2~7명으로 예외를 두었다. 또한 한 등장인물이 가진 직업의 개수가 2개 이상일 경우, 모두 포함시켰다. 그 결과 1년여 간 10개 방송사 110편의 드라마에 등장한 주‧조연은 총 447명으로 집계됐으며, 분류된 직업은 총 449개였다. 방송모니터위원회는 이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분석하였다.

▲ 2019년 10개 방송사 전체·모니터 대상 드라마 및 등장인물 수(2018년 10월~2019년 10월, 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2019년 10개 방송사 전체·모니터 대상 드라마 및 등장인물 수(2018년 10월~2019년 10월, 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전체 드라마 통계 분석

신종 직업 등장 속, 재벌 대세 여전해 

분석 결과 재벌‧기업가와 법조인‧경찰이 각각 18%와 15%를 차지하며 비중이 가장 컸다. (법조인과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며 극을 이끈다는 공통점이 있어 한 직업군으로 묶었다.) 법조인‧경찰 직군 다음으로는 ‘기타’ 직군이 뒤를 이었는데 여기에는 표본이 적거나 특정직군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직업들이 포함됐다. 회사원의 비율도 10%로 높은 편이었는데, 리얼하게 사무실 이야기를 담은 모큐멘터리(가짜 다큐멘터리) 드라마 KBS2의 <회사 가기 싫어>나 중소기업 하청업체 직원들의 애환을 담은 tvN의 <청일전자 미쓰리>, 여성의 육아휴직‧경력단절 등을 다룬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7> 및 <로맨스는 별책부록> 등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임금노동자의 삶을 중심으로 다룬 드라마들이 몇몇 편성됐다. 그럼에도 회사원이 등장하는 드라마로 분류된 14편의 드라마 중 11편에서 재벌‧기업가 직군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으며, 재벌 및 기업가의 이야기를 위해 이들 직업군이 부수적으로 활용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 10개 방송사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 직업 현황(2018년 10월~2019년 10월, 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10개 방송사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 직업 현황(2018년 10월~2019년 10월, 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는 2017년에도 6월 이후 종‧방영 드라마 49편의 주요 등장인물 119명의 직업을 분석한 <2017년 드라마는 어떤 세계를 그렸나>(2017년 12월19일)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때에도 가장 비중이 높은 직업군은 재벌‧기업가였다. 2년 뒤인 올해에도 10개 방송사를 통틀어 재벌‧기업가가 가장 많이 등장해 드라마 시장을 이끌어 가는 주된 직업군은 ‘재벌’임을 알 수 있었다. 2019년 조사 결과 재벌‧기업가 직업군의 비중이 가장 높은 방송사는 MBN으로 14명 중 절반인 7명이 재벌‧기업가로 분류됐다. 재벌가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 <우아한 가>, 게임 회사를 기반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 <레벨업> 등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다음으론 SBS가 27.5%로 재벌‧기업가를 많이 등장시켰는데, 이는 지상파 3사 중에서도 높은 비율이다. 특히 평균 시청 연령대가 높고 고정 시청층이 탄탄한 지상파 3사의 주말 및 일일 드라마에 재벌과 기업가가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22편 중 재벌‧기업가가 등장하지 않는 드라마는 KBS1 <여름아 부탁해>, SBS <미스 마 복수의 여신> 단 2편에 불과했다.

▲ 10개 방송사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 직업 분류표(2018년 10월~2019년 10월, 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10개 방송사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 직업 분류표(2018년 10월~2019년 10월, 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재벌‧기업가뿐만 아니라 전체 직업군으로 확장해보면 한국 드라마가 고소득층을 과도하게 조명하는 현상을 엿볼 수 있다. 표본이 일정치 않은 기타 항목을 제외하면 재벌‧기업가, 법조인‧경찰, 의료인, 언론인, 정치인, 금융업 종사자 등 통상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전문직 등장인물의 비율은 46% 가까이 된다. 반면 회사원, 학생, 구직자, 무직 등의 직업군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문가 및 관련 종사자의 비율이 15.5%에 불과하고, 임금노동자의 10명 중 4명은 비정규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통계를 감안할 때, 드라마 속 현실은 실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사대상 드라마 110편 중 주요 등장인물의 직업으로 재벌 및 고소득 전문직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는 KBS2 <왜그래 풍상씨>‧<동백꽃 필무렵>, MBC <대장금이 보고 있다>, SBS <여우각시별>, MBN <최고의 치킨>, 채널A <열두밤>‧<커피야 부탁해>, tvN <청일전자 미쓰리>‧<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7> 등 총 9개뿐이었다. 

남녀 비율 고른 편?… 재벌 및 고소득 전문직은 남성이 많아  

▲ 10개 방송사 드라마의 성별에 따른 주요 등장인물 수(2018년 10월~2019년 10월,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10개 방송사 드라마의 성별에 따른 주요 등장인물 수(2018년 10월~2019년 10월,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모니터위원회가 모니터 대상 드라마에 출연한 447명의 성비를 분석해보니, 총 447명의 등장인물 중 남성은 239명, 여성은 208명이었다. 447명의 총 성비(여성 100명 당 남성의 수)는 1:1.15로 여성 100명당 남성 115명의 캐릭터가 등장한 셈이었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남녀별 연령별 인구구조>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사회의 성비는 100.4다. 한국 사회와 비교해볼 때 드라마에서 남성이 더 많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성비가 불균형한 방송사는 OCN이었는데, 모니터 대상 기간 동안 방영한 드라마 11편의 등장인물 36명 중 남성은 24명, 여성은 12명으로 남성 캐릭터가 여성보다 2배 이상 많았다. 다음으로 성비가 불균형한 방송사는 MBC로 1:1.29, tvN이 1:1.24, KBS2가 1:1.09였다. 드라마에서 주로 그려진 캐릭터가 남성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OCN의 경우, 해당 방송사가 주력한 드라마 장르에 비교해볼 때 더욱 아쉽다. OCN의 드라마 11편은 모두 범죄‧수사‧미스터리 장르인데, 8편에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OCN 드라마의 경향을 보면 사건을 파헤치고 위험에 맞서는 등장인물로 주로 남성을 그리고, 여성 캐릭터는 주요 전개를 위한 장치로 소모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존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넘어 변주를 준 콘텐츠들이 제작되고,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단 점을 생각해보면 정형화된 서사 탈피는 시대의 흐름인데도 불구하고 OCN의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확인할 수 없었다. 

또한 직군별로 살펴봤을 때도 성비의 차는 심각했다. 특히, 재벌 및 고소득 전문직군의 경우 남성의 비율이 여성보다 평균 2배 가까이 높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의료직군의 경우 여성은 9명인데 반해, 남성은 25명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2.5배 이상 많았고, 법조인‧경찰 직군도 여성이 25명, 남성은 42명으로 1.7배가량 차이가 났다. 재벌 및 기업가도 남성이 여성보다 2배 가까이 많았다. 같은 재벌이라도 남성은 대표이사‧회장 등 직급을 가지고 있었으나 여성은 재산을 물려받는 상속인이나 남성 재벌의 배우자로 나오는 등 가족의 사회적 지위를 물려받으며 등장하는 경향이 있었다.

‘고령사회’ 진입한 한국, 그러나 드라마 세계에선 노인 외면

▲ 10개 방송사 드라마의 60대 이상 등장인물 수(2018년 10월~2019년 10월, 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10개 방송사 드라마의 60대 이상 등장인물 수(2018년 10월~2019년 10월, 1953년 이전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모니터서 제외).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성별과 마찬가지로 연령별 비율을 비교했을 때도 드라마와 한국 사회는 다소 차이가 났다. 모니터 대상 드라마에 등장한 447명 중 60대 이상(추정 포함) 연령대의 등장인물은 10명으로 약 2.2%에 불과했다. 모니터 대상 드라마 110편 중 60대 이상(추정 포함) 등장인물이 그려지는 드라마는 KBS2 <왜그래 풍상씨>‧<국민여러분>‧<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SBS <시크릿 부티크>, JTBC <눈이 부시게>, tvN <나인룸>‧<계룡선녀전>‧<쌉니다 천리마마트>, OCN <구해줘 시즌2) 등 총 10편뿐이다. 통계청의 <남녀별 연령별 인구구조>에 따르면 2017년 한국 사회에서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13.8%다.

물론, 주연급 등장인물의 평균 연령대가 높지 않은 것은 2019년만의 두드러진 현상은 아니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방송통신위원회가 2018년 발표한 <미디어 다양성 조사연구>(2018)에 따르면, 2017년에 편성된 지상파‧종편‧tvN‧OCN 드라마 주연 등장인물의 연령대 중 10~20대는 38.3%, 30~40대는 55.5%로, 총합만 93.8%에 이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 없으며, 방송사에서 선호하는 주연급 등장인물의 나이대가 10대에서 40대 사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통계청 발표와 비교할 때, 2019년 드라마 속 60대 이상 인구는 실제보다 과소 재현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드라마 주연급 등장인물의 나이대가 다양하지 못한 것은 한국 드라마가 다루는 삶이 편협하다는 점을 방증한다.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주연급 노인 등장인물의 수도 적었지만, 작품 속에 나타난 노인은 갈등 조장에 필요한 주변 장치로 이용되거나,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기업의 회장 등 단편적으로만 소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의 경우 주인공 ‘박선자’(김해숙 분)가 극을 끌고 나가긴 하나, 기존의 가족드라마가 답습하던 남편과 자식에게 헌신적인 ‘어머니의 모습’만 형상화할 뿐이었다. 

사실상 노인의 모습을 주체적으로 그린 드라마는 JTBC <눈이 부시게> 한 편에 불과했다. <눈이 부시게>는 타임리프물이라는 최신의 트렌드로 노인의 삶을 진지하고도 입체적으로 다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라는 판타지 요소를 가지고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인물로 설정, 이를 알츠하이머로 인해 지남력(시간과 공간 상황 따위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 저하된 ‘혜자’(김혜자 분)의 현실과 연결시켰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와 그를 인지할 수 없는 혜자의 상황은 시청자에게 서글픔을 자아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자의 과거는 처절하게 기억해내고자 하는 ‘찬란한 순간’이자 삶을 디뎌 나가는 이유였다.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노년의 삶을 주체적으로 형상화한 <눈이 부시게>는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으며, 주연배우 김혜자 씨는 2019년 제55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노년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다룬 드라마를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서 <눈이 부시게>는 가뭄 속 단비 같은 작품이나, 노인의 삶을 다룬 드라마가 턱없이 적은 것은 아쉬울 따름이다.  

방송사별 통계 분석

특이 직업 많았던 KBS, 재벌 편향은 마찬가지

▲ KBS(KBS1·KBS2) 주요 등장인물 직업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KBS(KBS1·KBS2) 주요 등장인물 직업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방송사별 특징을 살펴볼 때 KBS(KBS1‧KBS2)에서 주목할 점은 ‘기타’ 직업군이다. 모집단의 수가 적고, 특정 직군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경우 ‘기타’로 포함시켰는데, 모니터 대상 10개 방송사 통틀어 KBS가 ‘기타’의 비율이 17.3%로 가장 높았다. KBS 내에서도 재벌‧기업가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포함된 직업으로는 카센터 정비소장, 게스트하우스 사장, 예술단 감독 등 분야를 불문하고 다양했다. 드라마 안에 비교적 많은 직업들의 서사를 녹여내려 한 점이 엿보였다.

그러나 기타의 비율이 무색하게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등장인물의 직업군은 재벌‧기업가였다. KBS1의 경우 시사교양 및 보도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편성하는 채널 특성 상 모니터에 포함된 드라마는 긴 호흡의 일일드라마인 <비켜라 운명아>, <여름아 부탁해> 등 2편이었는데, 두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 8명 중 4명이 재벌‧기업가였다. 퓨전사극 <조선로코 녹두전>(11월 25일 종영)을 제외하고 같은 기간 19편의 드라마를 편성한 KBS2 역시 마찬가지였다. 통계에 집계된 90명의 인물 중 재벌‧기업가는 17명으로 다른 직군의 캐릭터보다 재벌 활용 비중이 월등히 높았다. 재벌 뿐 아니라 의사, 법조인 등 고소득 전문직의 비율도 평균 7~8% 정도로 이들의 합만 40% 가까이 된다. 모니터 기간에 포함된 드라마 중 주요 등장인물로 재벌 및 고소득 전문직이 등장하지 않은 KBS(KBS1‧KBS2)드라마는 <너의 노래를 들려줘>, <동백꽃 필 무렵>, <최고의 이혼>, <회사 가기 싫어> 등 네 편에 불과했다.   

직업군 가장 다양한 MBC, 재벌 비중 여전히 높아

▲ MBC 주요 등장인물 직업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MBC 주요 등장인물 직업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퓨전사극 <신입사관 구해령>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인 <이몽>을 제외한 MBC의 조사 대상 드라마는 21편이었다. 재벌‧기업가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머지 두 지상파 방송사와 다르게 MBC에서는 법조인‧경찰 직군의 캐릭터가 자주 등장했다. <배드파파>, <나쁜 형사>, <검법남녀 시즌2>, <웰컴2 라이프>, <아이템> 등 법조계‧경찰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주로 편성됐기 때문이다. 비율이 높진 않지만, MBC는 10개 방송사 통틀어 유일하게 ‘사회복지’ 직군에 포함된 등장인물이 등장한 방송사이기도 하다. 이는 어른들이 저지른 아동학대와 방관 등 사회 문제를 다룬 <붉은 달 푸른 해>에서 사건을 파헤치는 주요 등장인물이 ‘아동 상담가’였기 때문이다.  

재벌‧기업가의 비율만 20%가 넘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와는 달리 MBC는 12% 정도이지만, 법조인‧경찰 다음으로 높은 직업군이었다. 일례로 <모두 다 쿵따리>의 경우 ‘1번 국도가 끝나는 민통선 철책에 가로막힌’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기획의도에서 언급하는 배경과 달리 주요 등장인물 중 3명이 재벌‧기업가였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힘들고 지친 세상에 상처받은 아픈 사람들이 온다’는 내용과도 비교했을 때 등장인물의 직업 군상이 다양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10개 방송사 통틀어 재벌 비율 가장 높은 SBS

▲ SBS 주요 등장인물 직업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SBS 주요 등장인물 직업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사극과 시대극인 <해치>와 <녹두꽃>을 제외하고, SBS는 17편의 드라마가 모니터 대상 드라마에 포함됐다. SBS의 경우 재벌과 기업가에 해당하는 인물 비율이 27.5%로 현저히 두드러졌다. 두 번째로 많은 직업군은 의료인으로 약 14.5%인데, 타 방송사 평균이 2~3%인 점을 감안하면 의료인의 비중 또한 높다. 여기엔 의학 드라마 편성이 영향을 미쳤다. 17편의 드라마 중 <흉부외과>, <닥터탐정>, <의사요한> 등 3편의 드라마가 의학 드라마였는데 이는 10개 방송사 통틀어 가장 많은 수치이다.  

‘구직자’와 ‘학생’이 1‧2위 다투는 유일한 방송사 JTBC

▲ JTBC 주요 등장인물 직업 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JTBC 주요 등장인물 직업 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퓨전사극인 <꽃파당>과 조선 건국을 배경으로 하는 <나의 나라>를 제외하고, JTBC의 모니터 대상 드라마는 12편이었다. JTBC는 모든 방송사 통틀어 구직자의 비율이 13.4%로 가장 높았다. 극에서 나타난 구직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헤어디자이너 보조, 아나운서 지망생, 기업 취업 준비생 등 주로 청년 계층의 녹록한 현실을 담았다. 같은 기간 평균 스무 편의 드라마를 편성한 지상파 방송사의 구직자 등장인물 비율이 평균 2.4%임을 감안한다면, JTBC는 지상파 채널보다 현실에 맞닿은 이야기를 풀어낸 드라마를 많이 편성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다. 

구직자 다음으론 ‘학생’이 뒤를 이었다. 재벌‧기업가, 법조인‧경찰이 1~2위를 다투는 다른 방송사와 비교해보면 눈에 띄는 지점이다. 학교는 올해 JTBC 드라마의 주요 배경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모니터 기간에 포함된 12편의 드라마 중 3편에서 학교폭력 및 대학 입시 등 청소년 관련 사회 문제를 선명하게 풀어냈다. 특히 종합편성채널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갱신한 <스카이캐슬>에서는 종합병원 의사, 로스쿨 교수 등 대한민국 상위 0.1%에 해당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이 누리는 부와 명예, 권력을 고스란히 대물림하고자 자녀의 명문대 입시에 올인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스카이캐슬>은 대치동 사교육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고증도 높은 대본으로 현실을 매섭게 꼬집으며 화제가 되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청일전자 미쓰리> 힘입어 회사원 비율 높았던 tvN 

▲ tvN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 직업 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tvN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 직업 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각각 상고시대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아스달연대기>와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제외하고 18편의 드라마를 편성한 tvN은 법조인‧경찰의 비율이 가장 높았다. 18편의 드라마 중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개의 별>, <나인룸>, <진심>, <사이코메트리 그녀석>, <자백>, <어비스>, <60일 지정생존자> 등 7편의 드라마에서 경찰 및 법조계 인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법조인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직군은 회사원이었다. 다양한 업종의 직군이 회사원으로 분류됐다. <로맨스는 별책부록>엔 도서출판사 직원이, <쌉니다 천리마마트>엔 대기업 계열사 대형마트 대리, <청일전자 미쓰리>엔 중소기업 경리사원 등이 등장했다. 

모니터 대상 드라마 11편 모두 범죄‧수사극 OCN, 10명 중 3명 법조인‧경찰 

▲ OCN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 직업 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 OCN 드라마 주요 등장인물 직업 분포도. 그래프=민주언론시민연합

재벌‧기업가의 순위가 압도적으로 높은 다른 방송사와 달리, OCN에서는 법조인‧경찰이 두드러지게 등장했다. 법조인‧경찰의 비중이 31.7%로 타 방송사와 비교해도 높은 수치이다. 모니터 대상 기간에 포함된 11편의 드라마 모두 범죄‧수사‧미스터리 장르였던 만큼 수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직업인 법조인‧경찰이 극을 이끌어가는 현상은 예상되는 바였다. 법조인‧경찰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 직업군은 의료인이었다. 타 방송사와 달리 OCN에서의 의료 직군 캐릭터는 병을 고치는 캐릭터가 아닌, 부검 및 수사 진행에 방점을 둔 법의관 등이 주로 등장했다. 

종합편성채널 이름값 못한 MBN‧채널A‧TV조선…1년간 방영한 드라마 편수 평균 3.3편

JTBC를 제외한 종합편성채널 TV조선‧채널A‧MBN 세 방송사의 경우 표본이 너무 적어 분석에 어려움이 있었다. 특정 직군이 과대 대표되는 경향이 있어 방송사별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같은 기간 평균 18편의 드라마를 편성한 여타 방송사와 달리 MBN은 4편, 채널A와 TV조선은 각각 3편밖에 편성하지 않았다. 2017년 종편 재승인 조건으로 주문 받은 △조화로운 장르의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약속한 콘텐츠 투자를 이행할 것을 여실히 따랐는지 의뭉스러운 대목이다. 종합편성채널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1년 동안 편성한 드라마의 개수가 3.3편 밖에 안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비정기적인 편성 또한 문제이다. 드라마 한 편이 종영하고 새 드라마가 방영하기까지 TV조선의 경우 평균 3달, 채널A는 7개월이 걸렸다. MBN은 1개월에서 5개월로 편성 기간이 중구난방이었다. 

MBN의 경우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업 IHQ 계열사 ‘드라맥스’와 공동으로 편성한 <최고의 치킨>을 제외하고 4편 중 3편이 재벌가 내의 권력다툼 및 로맨스가 주 소재였다. 3편의 드라마를 편성한 채널A의 경우 웹툰 작가, 대안학교 생물교사, 사진작가 등 출연 직업군이 다양했으며 재벌 및 고소득 전문직 등장인물을 그린 드라마는 없었다. 채널A와 같이 세 편의 드라마를 편성한 TV조선의 경우에도 기업가, 검사, 해커, 택배기사 등 출연 직업군이 다양했으나 마찬가지로 표본이 적어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다시, 시청자를 사로잡는 드라마가 되려면

요컨대 모니터 대상 10개 방송사 110편의 드라마에 등장한 447명의 등장인물의 절반은 재벌 및 고소득 전문직이었다. JTBC를 제외한 9개 방송사에서 재벌 및 고소득 전문직 캐릭터가 만연하였고, 현실 속 다양한 사회계층을 반영하지 못했다. tvN의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나 모니터 대상엔 포함되지 않았지만 MBC <신입사관 구해령> 등은 기존의 선입견을 뒤집는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키며 주목을 받기도 했으나, 드라마 시장 전체로 따져볼 때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작품 속 나타난 노인은 JTBC <눈이 부시게>를 제하곤 단편적으로만 소비됐다. 이밖에도 모니터 대상 중 JTBC <멜로가 체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작품에서 그리는 사랑은 이성애 중심적이었으며, 작품의 배경이 도시가 아닌 드라마는 KBS2 <동백꽃 필 무렵>, MBC <모두다 쿵따리>, OCN <구해줘 시즌2> 등 3편에 불과했다.

전체적인 드라마 시장을 봤을 때 현실을 절묘하게 녹여낸 드라마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드라마 속 세계는 현실 세계와 지나치게 괴리되어 있었다. 드라마가 현실을 똑같이 반영할 수는 없고, 반드시 그러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방송사와 배우만 바뀐 천편일률적인 재벌‧로맨스 이야기, 판타지 세계관의 반복은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지속시키기 어렵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또 장르를 불문하고 모든 창작예술에서 상상의 세계나 가상세계를 다룰 때 현실을 떠올릴 수 있는 매개체를 집어넣는 이유는, 그래야 대중들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방송모니터위원회 모니터 중, 실제 피해자가 드라마에 직접 등장한 SBS 드라마 <닥터탐정>이 눈에 띄었다. 산업현장의 부조리를 파헤치고 진상을 규명하는 <닥터탐정>은 매회 다큐멘터리 형식의 에필로그를 추가하며 해당 회차에 인용된 사건을 작품과 자연스럽게 연결시켰다. 삼성반도체공장 백혈병 피해자 사건을 다룬 11회 방송분 에필로그에서는 사망 피해자 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등장한다. 또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씨를 다룬 16회에서는 김용균 씨 어머니 김미숙 씨의 목소리를 듣는다. 

<닥터탐정>은 드라마가 각 회차에 인용한 사건을 단순히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은폐된 산업 재해의 근본적 원인을 추적했다. 또한 실제 피해자의 목소리를 담는 에필로그를 통해 유가족을 위로하고, 시청자들에게는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작품에 출연한 봉태규 배우는 종영 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 이야기로 가다 보면 상업적인 이야기에서 멀어질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를 드라마적인 장치로 사용하는 게 아닌, 피해자가 중심이 되고 그 주인공(배우)들이 장치로 사용된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어 보람된 시간이었다”고 답변한 바 있다. 산재 사건 피해자들의 감정을 염려하고 종영할 때까지 작품이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고민한 제작진과 배우들의 노고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 SBS 드라마 ‘닥터탐정’은 매회 다큐멘터리 형식의 에필로그를 덧붙여 산업 현장의 실제 피해자들을 드라마에 출연시켰다
▲ SBS 드라마 ‘닥터탐정’은 매회 다큐멘터리 형식의 에필로그를 덧붙여 산업 현장의 실제 피해자들을 드라마에 출연시켰다

방송사들은 더 다양한 사람 군상을 다루는 드라마, 다채로운 상상의 세계에서도 절묘하게 현실을 녹여낸 드라마를 제작해야 한다. 스토리텔링 방법을 다룬 책 <이야기의 힘: 매혹적인 스토리텔링의 조건>에서 권정민 저자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보잘 것 없는 ‘내’ 일생에 의미를 부여해주고, ‘내’가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 속 주인공들도 그러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이 말은 즉,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는 우리 삶을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올해는 과연 어떤 드라마가 대중의 호평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재벌 이야기보다는 ‘내’ 삶과 맞닿아 있는, 그래서 ‘내’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는 드라마가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18년 10월~2019년 10월 한 해 나온 10개 방송사 드라마. 자세한 사항은 보고서 전문 참조.
※ 문의 : 조선희 활동가 (02) 392-0181 / 정리 : 민언련 방송모니터위원회 김상경 회원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