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에 ‘무더기 제소’ 전략을 펼쳐온 유성기업이 잇따라 패소하면서 사측의 그간 대언론 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유성기업은 왜 노사갈등 쟁점을 다루는 기사에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신청과 소송으로 대응할까. 이 가운데 반론보도 청구에만 몰두하는 배경은 뭘까.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의 엔진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다. 2011년부터 노조파괴 문제로 인한 노사갈등이 지속돼왔다. 이 과정에서 지난 4년 간 3명의 노동자가 숨졌다. 그러나 사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어용노조 문제 해결을 둘러싼 노사 교섭은 타결되지 않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초 사측에 ‘1노조 적대행위 자제와 대화’를 권고했지만, 사측이 불복해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유시영 전 유성기업 회장은 노조파괴에 회삿돈을 쓴 혐의(배임죄)로 지난달 2심에서 6개월 감형된 징역 1년4월형을 선고받았다.

언론중재위가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유성기업은 지난해 언론사 14곳을 상대로, 노조파괴 쟁점을 다룬 총 54건의 기사에 정정․반론보도를 청구했다. 1주일에 한 번 꼴이다. 2018년 청구 건수 1건에 비해 급증했다. 이 가운데 96.3%에 달하는 52건이 반론보도 청구였다. 기업 차원에서 언론사에 이처럼 장기간에 걸쳐 집중 조정신청한 선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다수 청구 취지가 법원‧인권위 판단에 반해 노사갈등 원인을 노조에 전가하는 내용으로 논란을 빚었는데, 중재위에서 정정‧반론보도를 거부한 언론사 3곳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패소 흐름은 뚜렷하다. 서울남부지법은 유성기업이 레디앙과 미디어오늘을 상대로 총 4건 기사에 대해 건 소송에서 2건은 반론보도 청구를 모두 기각, 2건 대부분 기각했다. 참세상은 정정보도 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다.

▲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대기업은 광고로 압박, 하청기업은? 대중 이미지 부담도 ↓

상황이 이런데도 유성기업은 지난해와 같은 언론대응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언론계 전문가는 공격적 언론 대응의 배경으로 유성기업이 원청기업을 고객으로 하는 하청업체란 점을 꼽는다. 근본적으로는 사측이 노조파괴 실패와 노사갈등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대언론 전략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성기업의 고객은 현대차 원청이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광고‧홍보하고 대중 이미지를 의식하는 대기업과는 언론 접촉면이 다르다. 대기업이 주로 광고를 이용해 언론사를 압박‧회유하면서 불리한 보도에 대응하는 반면 광고를 내지 않는 유성기업은 언론중재위와 법정 제소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삼성과 현대그룹 같은 대기업은 사회적 위상을 감안해 노골적인 무더기 제소를 택할 수 없는 반면, 유성기업은 그만큼의 대중 위상이 없는 점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유성기업이 현대차의 핵심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로, 언론대응으로 원청과 공생관계를 공고히 하려는 신호란 해석도 나온다. 김 교수는 “유성기업 노사갈등을 다루는 보도에서 현대차의 하청기업이라는 사실이 언급된다. 현대차는 직접 나설 수 없지만 유성이 이에 대응하며 원하청 관계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내보이는 ‘효과’도 있다”고 했다.

‘유일한 노조파괴 실패 업장’, 사측의 책임 부인

그러나 대기업의 하청업체가 모두 ‘묻지마 제소’ 전략을 펴진 않는다. 유성기업이 ‘노조파괴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가 줄제소의 기저 원인으로 꼽힌다. 유성기업은 조직적 노조파괴가 ‘실패’한 드문 업장이다. 유성기업지회가 살아남으면서 역설적으로 해당 쟁점이 지속되는 한편, 사측은 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를 보도하는 언론사에 공격적으로 반응한다는 것이다. 

윤지선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 활동가는 “반레오만도와 상신브레이크 등 창조컨설팅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엔 노조가 깨져나갔다. 유성기업지회는 노조와해 공작에도 다수노조를 지키고 부당노동행위 판단을 이끌어낸 유일한 사례”라며 “상황이 이런데 사측은 언론사들에 ‘2011년 직장폐쇄 사태 이후엔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며 부인한다”고 했다. 

▲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 방패를 든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00여명에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 2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금속노조
▲ 2011년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헬멧과 마스크, 방패를 든 사측 용역업체 직원들이 출근을 시도하는 노조원들 200여명에 쇠파이프, 죽창을 휘두르고 소화기를 던지는 유혈사태가 일어나 20여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사진=금속노조

반론보도 대거 청구, ‘사실’의 문제 아니란 반증

그렇다면 유성기업은 왜 사실상 반론보도‘만’ 청구할까.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보면 정정보도는 잘못된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 청구하는 것이고, 반론보도는 사실 보도로 피해를 입은 자도 청구할 수 있다. 사측이 해당 보도의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는 의도보다, 노사갈등을 둘러싼 법원이나 인권위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고 경영진 비판 보도를 입막음하려는 차원이 크다. 

김서중 교수는 “정정보도는 피해자(청구인)가 허위보도 입증책임을 진다. 반면 반론보도는 언론사가 ‘반론을 실으면 안 되는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유성기업은 진실과 사실 측면에서 밀리기에 반론보도를 청구하고, 언론사는 귀찮고 피곤해져 보도를 꺼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유성기업 입장에서 반론보도 청구는 쉬운 선택”이라고 했다.

유성기업은 측은 자사의 반론보도 청구 기록을 두고 미디어오늘에 “언론 압박 의도는 없다. 불리한 보도를 접한 당사자가 언중위나 법원에 제소하는 건 합법적으로 마련된 절차”라며 “‘유성기업이 보도를 막으려 한다’는 주장은 언론사가 확증편향이나 오보 책임을 회피하려는 무책임한 태도”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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