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

지난 9일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서울고법 제3형사부) 판결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 가운데 하나다. 송 전 주필을 상대로 한 박수환 전 뉴스커뮤니케이션즈(뉴스컴·홍보대행업체) 대표의 ‘부정한 기사 청탁’을 인정한 1심 재판부 논리를 깰 때마다 등장했다.

검찰은 송 전 주필이 2007~2015년 박 전 대표 영업 활동을 돕고 기사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현금, 수표, 상품권, 골프접대 등 총 4947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받았다며 2017년 1월 불구속 재판에 넘겼다.

배임수재죄 혐의다. 배임수재죄를 쉽게 설명하면 공무원이 아닌 일반인이 업무와 연관된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돈을 받으면 처벌 받는다. (1)‘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하고 (2)부정한 청탁과 재산상 이익 사이 ‘대가성’도 인정돼야 한다. 문제의 시기(2007~2015년)는 대가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금품 수수 처벌을 의무화한 김영란법(청탁금지법)이 시행되기 전이다.

▲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사진=연합뉴스
▲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사진=연합뉴스

그동안 검찰 주장은 다음과 같았다. “①피고인 박수환은 조선일보 주필 겸 편집인인 송희영에게 2014년 8월경 자신의 지인이 출간한 자서전 소개 기사 청탁, ②2014년 10월경 자신의 고객인 외국계 담배 제조사 BAT코리아의 입장에 반하는 정부의 담배 개별소비세 도입 정책에 대한 비판 기사 청탁, ③2015년 4월경 자신의 고객인 멀린엔터테인먼트가 개최하는 전시회 소개 기사 청탁, ④2015년 7월경 자신의 고객인 GE코리아와 경쟁 관계에 있는 미쯔비시에 불리한 기사 청탁 등 자신의 홍보 대행 영업 활동을 도와달라는 내용의 부정한 청탁을 하고, 그 대가로 2007년 12월 초순경부터 2015년 5월25일까지 송희영에게 총 12회에 걸쳐 합계 4947만원 상당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공여했다.”

1심 재판부는 “이런 기사 청탁 이후 조선일보 등에 박수환이 의도한대로 그와 관련한 기사가 게재됐다”며 ‘부정한 청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금품 등 수수액 4947만원 가운데 기사 청탁과 ‘대가관계’가 인정돼 배임수재죄 판단 근거가 된 것은 골프접대 147만4150원에 불과했다. 박 전 대표는 2013년 11월~2015년 5월 송 전 주필을 포함해 조선일보 기자 등을 상대로 청평 마이다스CC에서 4차례 골프접대를 제공했다. 1심이 송 전 주필에게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과 함께 ‘추징금 147만4150원’을 선고한 까닭이다. 

2심 재판부는 “원심의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며 ①~④ 행위를 ‘부정한 청탁이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박수환이 송희영에게 기사를 게재해 달라고 한 청탁은 ‘정당한 홍보 대행’ 또는 ‘보도자료 수집의 범위 내에 속하는 것’이어서 이를 부정한 청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즉, 박수환의 기사 요구는 “홍보대행업체가 언론인에게 고객 등을 홍보하는 내용의 기사 게재를 부탁하는 것은 업무 수행 과정에서 빈번히 있는 일”이고, 송희영 역시 “언론인으로서 취재원을 확보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등의 의미에서 홍보대행업체로부터 자료를 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뜻. “홍보대행업체 입장에서 자기 고객을 홍보하는 내용의 자료를 얼마든지 언론인에게 보낼 수 있고, 이를 취사선택해 기사화할지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이를 받은 사람의 언론인으로서의 건전한 판단에 달려있다. 기사 청탁이 이뤄졌다는 사정만으로 이를 부정한 청탁이라 단정할 수 없다.”

아울러 재판부는 조선일보 논설위원과 주필이 칼럼, 사설 외의 기사에 직접 간섭하거나 관여하지 않고 기자들도 논설위원실에 업무 보고를 하지 않는다는 진술을 감안해 “송희영이 속한 논설위원실이 조선일보 내에서 기사를 보도하는 소재를 선정하고 작성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 관여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다. 홍보대행업계는 물론 홍보가 필요한 기업 입장에서도 이런 사정은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가 박 전 대표의 기사 청탁 자체를 ‘부정한 청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배임수증재죄는 더 따져볼 것 없는 혐의가 됐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이 박 전 대표와 송 전 주필 관계를 ‘스폰서 형태의 상식적 유착 관계’로 규정한 법리도 깨버렸다. 2심 재판부 입장에서 (1)부정한 청탁이 존재하지 않으니 (2)대가성 인정 여부는 살펴볼 필요도 없었지만 (2)까지 따지며 ‘스폰서 관계’라는 원심 판단을 ‘확인 사살’했다.

▲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왼쪽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오른쪽이 박수환씨.
▲ 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 왼쪽이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오른쪽이 박수환씨.

‘스폰서 관계’라는 그물을 찢다

이 재판에서 ‘스폰서 형태의 상시적 유착 관계’는 박 전 대표와 송 전 주필을 포획하기 위한 검찰의 논리적 ‘그물’이었다. 박 전 대표는 1996년 송 전 주필을 알게 된 다음 여러 골프 모임을 만들어 친목을 도모했다. 업무상 교류를 통해서도 깊은 친분을 쌓았다.

검사는 스폰서 관계를 전제로 송 전 주필이 박 전 대표에게 기사 청탁을 계속 받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이익을 제공받은 이상 이 같은 청탁은 모두 부정한 청탁에 해당하고 이와 관련한 이익도 대가관계가 인정된다는 취지로 일관되게 주장했다.

1·2심 재판부 모두 송 전 주필이 2007~2008년 박 전 대표에게 3500만원어치 수표·현금을 받은 사실은 인정했지만 박 전 대표의 명시적 또는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인정할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점에서 기사 청탁과 현금·수표 수수 사이 대가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만 1심 재판부는 골프접대 147만4150원에 대해선 ‘스폰서 형태의 상시적 유착 관계’ 등 이유로 대가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배임수재죄 근거였다.

2심 재판부는 ‘스폰서 형태의 상시적 유착 관계’라는 말이 “불명확하고 모호한 개념”이라며 “이것만으로 배임수증재죄에서 말하는 ‘부정한 청탁’과 ‘재산상 이익’ 등 각 구성요건적 행위 사이 대가관계를 함부로 추단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골프접대에도 “송희영이 박수환에게 4차례 걸쳐 골프를 접대 받은 것은 사교 내지 의례의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볼 여지가 많다. 결국 이와 같은 재산상 이익(골프접대 147만4150원)이 부정한 청탁 대가로 제공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원심은 박수환이 송희영에게 현금, 상품권, 고급 양주를 주거나 골프접대 등을 하면서 송희영을 성심껏 모셔왔던 점을 보태어, 피고인들 사이에 ‘스폰서 형태의 상시적 유착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을 전제로 골프접대와 기사 청탁 사이의 대가성을 인정했다”며 “하지만 공여자와 수수자의 관계 등 행위자들 사이의 인적 관계만으로 대가관계를 널리 인정하게 된다면 부정한 청탁과 재산상 이익 수수 사이의 대가관계가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았는데도 배임수증재죄 처벌 범위를 만연히 넓히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원심을 인정할 경우 ‘장기간의 친분 관계 중 재산상 이익 수수→스폰서 형태의 상시적 유착 관계→부정한 청탁과 재산상 이익 사이의 대가관계’로 논리가 비약하면 처벌 범위가 한없이 넓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2심 재판부는 골프접대 147만4150원에 “국내 유력 언론사 가운데 하나인 조선일보에서 주필, 편집인, 등기이사 등 중책을 담당했던 송희영이 자신의 언론인 생명과 직결된 ‘기사 등을 게재해 달라는 부정한 청탁’의 대가로 받은 이익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적은 금액”이라며 “(편집국 기사에 개입할 수 없는) 송희영이 기사 등 청탁의 대가로 이익을 수수하고자 했다면 큰 유인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 그러하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골프접대에 송 전 주필 외에도 다른 조선일보 기자들과 경제계 관계자들이 함께 초대됐다는 점 △박 전 대표가 검찰에서 “골프를 시작한 이래 8년 동안 매년 1, 2월만 제외하고 기자를 상대로 수시로 골프접대를 했다”고 진술한 점 △박 전 대표가 6개월마다 송 전 주필에게 정기 골프접대를 했다는 점 등에 비춰 골프접대는 의례 행사였고 기사 청탁 대가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2심은 판결했다.

2심이 전적으로 송 전 주필과 박 전 대표 손을 들어준 만큼 검찰은 코너에 몰린 상태다. 송 전 주필은 지난 9일 무죄 선고 뒤 미디어오늘과 만나 “박근혜 정권 아래서 TV조선이 최순실을 추적하고 조선일보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의혹을 제기하니까 정권이 발끈해서 시작한 수사였다. 정권 지시를 받은 검찰이 얼마나 무리했는지 드러났다”고 공세를 높였다. 검찰은 지난 13일 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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