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건 항소심 선고 이틀을 앞두고 재판부가 선고기일 직전에 신상철 피고인(전 민군 합동조사위원)과 검찰에 아예 변론을 재개하겠다고 밝혀 그 배경이 의문이다.

천안함 선체에 존재했던 스크래치가 사라졌다는 의심, 사이드스캔소나로 탐색했을 때 안나오던 어뢰추진체가 어떻게 쌍끌이어선으로 발견할 수 있느냐는 의심, 신 전 위원이 1심 때 유죄판결을 받았던 ‘국방부 장관등의 증거인멸’ ‘고의 구조 지연’ 주장의 근거를 다시 제출해달라는 요구다. 특히 재판부는 공직자 개인의 명예훼손과 관련해 정부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을 비판하는 행위가 명예훼손이 될 수 없다는 두가지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의문점은 이미 재판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석명을 요구할 수 있었고, 재판과정을 통해서도 판단할 수 있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공직자가 광범위한 감시와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는 판단은 매우 중요하지만 판결문에서 해도 될 얘기를 굳이 변론을 재개하면서 강조한 배경은 의문이다. 특히 재판장을 비롯한 재판부는 부임한 후 2년 가까이 진행했다는 점에서 재판부 교체를 앞두고 ‘어떤 결정을 내려도 비난이 나올 수 있는 부담스러운 사건’의 결론을 일부러 피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재판부는 이 재판을 총선이후에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는 30일 주재한 천안함 관련 신상철 명예훼손 항소심 사건 공판에서 “판결문을 쓰다가 심리가 더 필요하다고 보고 변론재개 통보를 드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 28일 피고인, 변호인, 검찰 측에 변론재개서를 송달했다. 대법원 전자소송 시스템에 따르면, 재판부가 판결을 내리지 않고 변론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한 시점은 지난 22일이다.

김형두 재판장은 이날 공판에서 선고하려다 변론을 다시하겠다고 방침을 바꾼 사유(쟁점)로 네가지를 들었다. 재판부는 특별히 3쪽짜리 석명요구서를 작성해 검찰측과 변호인측에 전달하기도 했다. 김 재판장은 우선 신상철 전 위원이 처음 본 천안함 선체에 있던 스크래치가 사라진 주장과 관련해 변호인이 고압 분사 등의 청소 때문에 스크래치가 희미해졌을 가능성을 제기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검사에게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천안함이 육지로 인양된 이후 4월30일까지 청소 작업이 있었는지 여부, 있었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는지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밝혔다. 실제로 아이티시에스란 업체가 지난 2011년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 천안함 선체 사진을 보면, 부식변환 도포 전 사진은 부식된 부위가 주황빛 또는 붉은빛을 띠지만, 도포후 사진은 모두 검게 변해있다.

김 재판장은 두 번째로 어뢰추진체가 인양된 2010년 5월15일 이전에 천안함 ‘폭발원점’에서 사이드 스캔 소나를 통한 수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 정밀수색으로 발견이 안됐다면 쌍끌이어선의 저인망에 발견됐다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피고인측의 주장을 소개했다. 김 재판장은 검사에게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사이드스캔소나 작업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상세한 자료나 증인이 있다면 신청해주시고, 기존에 제출된 증거가 산만하게 있는데, 이것 만으로 충분하다면 어디를 보면 된다는지 등에 관해 알려달라”고 주문했다.

▲천안함 함수 선체 우현에 부식변환 도포 작업을 하기전 모습. 사진=(주)아이티시에스 홈페이지
▲천안함 함수 선체 우현에 부식변환 도포 작업을 하기전 모습. 사진=(주)아이티시에스 홈페이지
▲천안함 함수 선체 우현에 부식변환 도포 작업을 한 후의 모습. 2011년 촬영해 공개. 사진=(주)아이티시에스 홈페이지
▲천안함 함수 선체 우현에 부식변환 도포 작업을 한 후의 모습. 2011년 촬영해 공개. 사진=(주)아이티시에스 홈페이지

김 재판장은 세 번째 쟁점으로 신상철 전 위원이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고의적인 구조지연’, ‘천안함 선체 증거인멸’ 관련 글을 작성한 행위를 두고 변호인에게 신 전 위원이 쓴 글이 진실하다거나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하는데, 이 글을 쓸 때 탐색하고 참조했던 문헌이나 뉴스 등 자료가 무엇인지 정리해달라고 주문했다.

김 재판장은 네 번째 쟁점사항으로 이 사건을 공직자 개인의 명예훼손으로 볼 수 있느냐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면서 이를 이 사건에 적용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의견을 밝혀달라고 검찰과 변호인측 모두에 요구했다.

김 재판장은 검찰이 신 전 위원의 공소장에 적시한 정보통신망법 70조2항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해 거짓 사실 드러나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들어 “대법원 판결(2017년 12월27일 2014도15290 판결)을 보면 ‘형법이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를 처벌함으로써 보호하고자 하는 사람의 외부적 명예는 개인적 법익으로, 공권력 행사자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본권의 주체가 아니고,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은 항상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며, 표현의 자유가 충분히 보장될 때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있으므로 국가와 지자체는 외부적 명예의 주체가 될 수 없고,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김 재판장은 다른 대법원 판결(2018년 11월29일 2016도16478 판결)에서는 “공공적 사회적 의미를 가진 사안에 관한 표현의 경우, 표현의 자유를 가급적 넓게 보호해야 하고, 국가기관의 업무수행 관련 사항은 감시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한다”며 “그 내용으로 공직자의 사회적 평가 다소 저하될 수 있다 해도 악의적이거나 경솔한 표현이 아닌 한 곧바로 공직자 개인 명예훼손이 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김 재판장은 이 같은 대법원 판례와 법리가 피고인의 천안함 사건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얼마나 유사한지, 차이점이 무엇인지 등에 구체적인 의견을 밝혀달라고 검사와 피고인 양측에 요구했다. 김 재판장은 “네번째 항목은 상당히 중요한 쟁점”이라며 “구체적으로 공소사실을 변론해달라”고 밝혔다.

김 재판장이 검찰에 준비하는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묻자 소재환 검사는 두 달 안에는 진행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답했고, 심재환 변호사도 그만큼 빨리 낼 수 있다고 밝혔다. 김형두 재판자은 오는 4월23일 목요일 오후 3시에 변론기일을 잡고 재판을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 2010년 5월15일 쌍끌이 어선 위에서 합동조사단 과학수사분과 수사관들이 이른바 1번 어뢰추진체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동영상
지난 2010년 5월15일 쌍끌이 어선 위에서 합동조사단 과학수사분과 수사관들이 이른바 1번 어뢰추진체를 측정하고 있다. 사진=국방부 동영상

재판부가 제기한 의문점은 그동안 신 전 위원(피고인)과 변호인 측에서 꾸준히 제기해온 쟁점이다. 신 전 위원이 처음 봤을 때의 천안함 스크래치와 이후 2010년 4월30일 평택 해군2함대에 가서 직접 봤을 때 사라졌다는 스크래치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의문에 충분한 설명이 나오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천안함 사건 1~2년 이후 평택 2함대에 보관중이던 천안함 선체의 녹슨 부위 주변 색깔은 주황빛에서 거의 검은색으로 크게 달라졌다. 쌍끌이 어선으로 어뢰추진체를 발견한 경위에 관한 의문도 10년째 계속된 의문이다. 수백~수천미터 해저까지 훤히 보인다는 사이드스캔소나로 해당 지역을 정밀탐색했는데도 못찾은 어뢰추진체를 어떻게 쌍끌이어선으로 투입하니 찾느냐는 의문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근거 제출을 왜 판결 선고 이틀을 앞두고 요구하느냐는 지적이다.

법관을 포함한 법원 인사가 오는 2월에 예정돼 있다. 현 재판부는 지난 2018년 2월부터 만 2년째 천안함 항소심 재판을 이어왔다. 앞선 윤준 재판장도 2016년부터 2년 가까이 재판을 하다 교체됐다.

변호인이 이번 재판부가 교체되느냐고 묻자 김형두 재판장은 “인사가 나봐야 안다”고 답했다. 이로써 천안함 재판은 1심 재판을 포함해 만 10년을 넘기게 됐다. 횟수로 따지면 11년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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