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정부가 중동 호르무즈해협에 청해부대를 파병한 결정을 이제라도 철회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 동의를 받지 않은 절차부터 청해부대가 현지에서 실질적인 작전을 수행하기 무리한 상황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29일 정의당 국민안보특별위원회·평화본부와 김종대 의원실이 주최한 ‘호르무즈 독자파병, 국익에 부합하는가’ 긴급토론회가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진행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번 파병을 두고 “청해부대 파견지역을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대한다고 했으나 이는 군사적 목표를 변경하는 새로운 파병이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뿐 아니라 중동 곳곳에 자리한 우리 국민과 시설들이 표적에 대상이 될 수 있는 국군 파병 역사상 가장 위험한 파병”이라며 “지금이라도 작전이 시행되기 전에 파병 결정을 철회하고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위한 결정을 내리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심 대표는 △목표를 변경하는 새로운 파병은 국회 동의 필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위협 평가는 근거 없음 △이란의 적대감을 자극할 이유가 없음 등을 파병 재고 이유로 제시했다. 그는 “이번 파병은 국군이 미국의 IMSC(국제해양안보구상·호르무즈 호위연합)에 참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이미 이란은 수차례 파병 반대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했다”며 “일본 사례를 많이 드는데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 한국은 한미 동맹을 처음 맺었던 1950년대의 원조 받는 국가가 아닌 국제사회의 중견 국가이기 때문에 국익과 안보를 위해서 호르무즈 파병은 원점에서 재고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의당 국민안보특별위원회, 평화본부, 김종대 의원실 주최로 '호르무즈 독자파병, 국익에 부합하는가?'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정의당 국민안보특별위원회, 평화본부, 김종대 의원실 주최로 '호르무즈 독자파병, 국익에 부합하는가?'라는 주제의 긴급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노지민 기자

김종대 의원은 “모름지기 국군 파병 역사에선 파병지역이 결정되고 규모·목적·작전 양상까지 수개월에 거쳐 준비한 다음에 군대를 보내는 게 순리인데 이번엔 군대 보내는 걸 먼저 결정한 다음에 어떻게 할지 정하는 비상식적 파병의 나쁜 선례”라며 “작전계획 없는 군대가 목적도 불분명한 가운데 현지에서 느낄 혼란과 딜레마적 상황을 감당할 수 있나. 누가 적인지, 누굴 상대로 뭘 하는지 작전계획 수립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파병이 먼저 결정된 건 상식을 벗어난 일탈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토론에 참석한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파병 주장의 근거들을 반박했다. 먼저 파병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란 시각을 꼬집었다. 정 대표는 “파병 방침을 밝힌 지 이튿날,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월스트리트저널(WSJ) 공동기고문에서 한국은 부양대상이 아니라며 대폭적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 어제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인 노동자들에게 무급휴가 입장을 전달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며 “파병해주면 미국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철회할 거란 기대는 근거 없었다는 게 미국 행동을 통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가 파병을 계기로 대북정책 방향을 선회할 가능성도 낮다고 봤다. 정 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라크 파병을 떠올리며 “당시 윤영관 외교부 장관이 콜린 파월 국무장관을 만나서 ‘파병해줄 테니 대북정책 바꿔주면 안 되냐’ 요청했는데 파월이 ‘친구를 대하는 태도가 아니’라고 핀잔을 줬던 사례”라 전했다. 그는 “파병을 결정했던 정책결정 단위나 많은 국민은 한국이 이라크 파병을 단행함으로써 부시 행정부 대북정책이 바뀐 것처럼 오해한다. 하지만 결정적 계기는 부시가 이라크 전쟁 수렁에 빠지고 ‘네오콘’(neocons·공화당 중심의 미국 신보수주의자)이 줄줄이 쫓겨났기 때문이다. 과거 사례로부터 여전히 배우지 못하는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더구나 이번 파병 결정은 실리는 물론이고 명분조차도 없다. 미국의 일방적인 이란 핵협정 탈퇴가 위기를 조장했고, 드론을 동원한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도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파병 결정은 마땅히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는 “‘북한식 모델’ 장점을 살려 이란 핵문제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미국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북한은 지난해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때 대북제재 완화를 전제로 우라늄 농축 시설 및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정 대표는 이를 현실화한 뒤 이란의 우라늄 농축 시설을 억제하는 구상을 밝혔다.

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해 온 김영미 ‘시사IN’ 국제문제 편집위원은 “파병이 결정되면서 국내와 미국의 정치적 문제보다 가장 걱정된 건 현지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지나다니는 상선이 많고 좁은 호르무즈 해협 특성을 언급하며 지난 1988년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 해군의 ‘USS 빈센스함’이 이란 민항기를 적(敵)기로 오인해 격추한 사례를 이야기했다. 실질적인 경험이 부족한 청해부대가 이 같은 ‘휴먼 에러’(human error)를 저지를 수 있는 요인들이 상당할 거란 우려다.

김 위원은 또 “청해부대가 작전하는 지역엔 25개국 연합군이 있고 미 5함대가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사작전을 할 땐 고도의 기술과 인도양에서의 여러 전투경험이 있어야 한다. 청해부대는 그런 경험이 없다. 어떤 국가의 군대와도 전투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연합군’ 형태로 정보공유를 해야 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파병했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우리가 상대했던 소말리아 해적은 기관단총 하나에 나머지는 소총이다. 전쟁에선 ‘센 거’ 쏘는 사람이 이긴다. 이런 해적을 상대로 청해부대가 갔던 거다. 해적과 이란 군대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고, 우리가 파병에서 상대한 곳들은 ‘평화유지’를 위해 갔지 공격용으로 간 건 아니었다”고 지적한 뒤 “모든 위험 요인을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 군사작전인데 안을 수 있는 리스크를 최대한 모두 안고 간다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