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광석’에서 시작한 감독 이상호 기자와 고 김광석(1996년 1월 사망)씨 아내 서해순씨의 법정 공방 2라운드가 1심과 마찬가지로 서씨의 일부 승소로 끝났다. 이 기자와 발뉴스(대표 이상범)가 서씨에게 배상해야 할 금액은 1심 5000만원에서 2심 1억원으로 2배 올랐다. 주식회사 발뉴스는 인터넷 언론매체 ‘고발뉴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기자는 고발뉴스 대표 기자다.

서씨는 이 기자가 2017년 8월 개봉한 영화 ‘김광석’ 및 기사·인터뷰·SNS 등으로 김광석 타살설을 제기하면서 용의자로 자신을 지목해 명예와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3민사부(부장 김용빈)가 심리한 2심은 1심과 마찬가지로 ‘영화’와 ‘언론 보도’, ‘페이스북 게시물’로 나눠 판단했다. 서울고법 선고는 지난 22일에 있었다. 

▲ 이상호 기자가 연출한 영화 ‘김광석’ 포스터.
▲ 이상호 기자가 연출한 영화 ‘김광석’ 포스터.

영화의 표현의 자유는 인정했지만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문을 인용해 “영화를 전체적으로 보면, 김광석이 타살됐을 가능성이 높고 원고(서해순)가 그 유력한 혐의자일 뿐 아니라 김광석이 사망에 이르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다소 편파적이고 원고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유발할 수 있는 면은 있다”면서도 “영화가 허용되는 표현의 자유를 벗어나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김광석 사망 원인을 둘러싸고 의문이 제기됐던 게 사실이고 △김광석과 아내 서해순씨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영화 상영 전 이미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인물이고 △영화가 김광석 타살의 유력 혐의자라고 서씨를 상대로 의혹을 제기했지만 김광석이 자살했다는 의견을 소개했고 사망 원인에 관한 의혹을 해소할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 반복되는 등 단정적 표현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을 판단 근거로 들었다.

문제는 이 기자와 발뉴스가 인터넷 기사로 허위 사실을 적시했다는 점이다. 1·2심 판결문을 보면 이 기자와 발뉴스는 ‘①김광석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타살됐고 아내 서해순이 유력한 혐의자다. ②서해순이 재혼 사실을 숨기고 김광석과 결혼했다. ③김광석이 김수영(김광석 아버지)에게 저작권(판권)을 관리하게 했다. ④서해순이 강압으로 김광석의 저작권을 시댁으로부터 빼앗았다. ⑤서해순이 상속재산을 독차지하기 위해 김서연(김광석 딸)을 방치해 죽게 했다. ⑥서해순이 김서연의 죽음을 숨기고 소송 사기를 했다. ⑦김광석 생전에 서해순이 불륜을 저질렀다’ 등을 적시했다.

핵심 의혹이었던 ①에 2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김광석에 대한 부검 결과 김광석 사인은 의사(목을 매어 죽음)로 판단됐다. 현재까지 이를 뒤집을 만한 객관적 증거가 없다”며 “현 단계에서 김광석 사인이 자살이 아니라고 보기는 어려운데도 이상호와 발뉴스는 김광석 사인에 관한 통상적이고 합리적 수준의 의혹 제기를 넘어서 그 사인이 자살이 아닌 타살이고 원고(서해순)가 그 살인 혐의자라고 단정적으로 인상 지우는 표현을 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②와 ③, ⑦에 대해서는 “적시 사실이 허위임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봤지만 ④~⑥에 대해서는 허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2007년 12월 숨진 딸 김서연씨와 연관된 ⑤, ⑥에 대해 재판부는 “부검 결과 김서연의 사인은 폐질환이라고 판단됐고, 서울중앙지검은 2017년 12월 서해순의 행적, 평소 양육 태도, 환경 등을 감안하면 서해순이 김서연을 유기했다고 보기 어렵고, 서해순이 폐렴에 걸린 김서연의 사망을 예견할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며 “이상호와 발뉴스는 서해순에 대한 고발·고소 소식을 보도하면서 통상적이고 합리적 수준의 의혹 제기를 넘어서 서해순이 그와 같은 범행을 했다고 단정적으로 인상 지우는 표현을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적시 사실이 공공 이익에 관한 점은 인정되지만 이상호와 발뉴스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적시 사실이 진실이라고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었던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 이상호 기자는 영화 ‘김광석’에서 고 김광석의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진=영화 김광석.
▲ 이상호 기자는 영화 ‘김광석’에서 고 김광석의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진=영화 김광석.

재판부 “막연한 의혹을 사실로 믿도록 오도”

이 기자가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김광석을 죽인 살인범이 활보하도록 놔둘순 없다”, “영화 김광석을 통해 타살 주요 혐의자로 지목한 서해순의 해외 도피 우려”, “살인 혐의자가 백주대로를 활보하며 음원 저작료를 독식한다”는 표현, “서해순이 영아 살해를 했다”는 표현 등도 허위사실 적시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 역시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기자와 발뉴스에 대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의혹을 의도적으로 편집해 보도함으로써 일반 대중으로 하여금 근거 없이 제기한 막연한 의혹을 사실로 믿도록 오도했다. 이는 진실을 밝히기 위한 합리적 의혹 제기와는 거리가 멀다. 허위사실을 진실로 가장하려는 목적을 가진 의도적 침해에 해당해 그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는 “단순히 허위 사실을 보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와 연계된 입법 청원 유도, 수사기관에의 공개적 고발, 기자회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그 결과 매우 광범위한 일반 대중이 피고들의 주장을 접하게 됐다. 그만큼 원고(서해순)의 정신적 고통이 가중됐다”고 밝혔다.

서씨에게 발생한 정신적 고통의 위자료는 총 1억원. 1심에 비해 2배 뛰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4000만원은 이 기자의 단독 불법행위로 인한 몫이라고 봤다. 6000만원은 이 기자와 발뉴스의 공동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액이다.

한편,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12월 이 기자를 서씨에 대한 명예훼손,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 위반(명예훼손), 모욕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다. 1·2심 민사 재판부가 이 기자의 영화를 통한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검찰은 이 기자가 서씨에 대한 허위 사실을 적시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공소장을 보면, 김광석 사망 당시 촬영된 서씨의 인터뷰 녹화 테이프에 대해 거짓말탐지기 검사가 실시된 사실이 없었고 서씨가 인터뷰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판명된 사실이 없었는데도 이와 배치되는 이 기자의 발언 영상과 “2002년 테이프 탐지 결과 ‘거짓말 판단’”이라는 자막을 삽입하는 등 허위 사실을 적시해 서씨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이 기자가 고발뉴스 보도나 기자회견, 페이스북 글 등을 통해 서씨를 김광석과 그의 딸 죽음의 살해 유력 용의자로 지목한 것에 대해서도 검찰은 서씨 명예를 훼손한 행위로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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