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경마공원 고 문중원(40) 기수의 유족이 상경한지 32일 째다. 아내와 부모, 장인·장모가 함께 서울 빈소를 지키며 한국마사회에 한 가지 요구를 일관되게 하고 있다. "제8의 문중원을 막기 위한 제대로 된 교섭과 진정한 사과를 하라"는 것이다.

아버지 문군옥씨는 생업도 접고 제주에서 왔다. 자영업을 하는 그가 사무실 문을 닫은 지도 두 달이다. 문씨는 "여기서 안 고쳐지면 1년 내로 죽는 놈 또 나온다. 지금 사업 다 접었다. 1년이건, 2년이건 마사회가 바뀔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다"라고 말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2일 서울 세종대로 고 김용균씨 추모분향소에서 문씨와 아내 오은주씨를 만났다.

(관련기사 : [마사회 문중원 기수 사망, 왜 ①] "우리 중원이는요… 마사회가 죽였습니다")

▲고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씨. 사진=김용욱 기자.
▲고 문중원 기수의 아버지 문군옥씨. 사진=김용욱 기자.

“애를 확인하면서 보니 왼손이 힘을 꽉 주고 이는 앙 깨물고 눈은 떠 있고… 눈을 감기면서 ‘이건 내가 꼭 복수를 해야겠다’ 그 생각밖엔 안 들었다. 이건 꼭 밝혀내야겠다고. 중원이는 마사회 부정 비리를 자기 몸을 불태워서 알렸다. 억울한 부분 바로 잡는데 힘을 보태고… 이건 정말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다.”(문씨)

문씨와 오씨는 고 문중원 기수가 겪은 억울함을 말하며 여러 번 울었다. 문 기수는 유서 A4 3장 빼곡히 마사회의 부조리를 적고 갔다. 15년차 베테랑인 그는 조교사 부정지시를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하면 아예 말을 탈 수 없는 현실이 고통이라 적었다. 그는 기수 생활 초기 한 조교사 집을 찾아가 무릎 꿇고 사정한 적도 있다.

수 년 간 조교사를 준비해 어렵게 합격했으나 마사회는 조교사 발탁(마사대부 심사) 비리 의혹으로 얼룩져있었다. 3~10년 간 심사에 도전하는 이들보다 면허 딴 지 1년도 안 된 조교사 4명이 두 해 연속 합격했다. 그들이 마사회 간부와 친해 합격할 거란 소문은 심사 전부터 파다했다. 문 기수는 면허를 따고도 4년 동안 개업하지 못했다. 조교사 발탁이 언제 또 열릴 진 기약 없었다. 문 기수는 두 번 연속 탈락하고 4개월 후 목숨을 끊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 소문대로만 (합격이) 되니까 ‘정말 나는 안 되는 건가’ 그런 얘기 했었다. 일을 포기할 수 없지만 돈 벌이는 안 되고… 남편이 ‘대리운전이라도 할까’라고 했다. 마음이 너무나 아팠고 아프다.” 오씨는 “2021년, 2022년 다음 자리까지 간부들과 가까운 조교사가 될 거란 소문이 경마장에 또 파다했다”며 “남편에겐 더 이상 준비할 필요도 없고, 유서 말 그대로 앞이 보이지 않는 너무나도 깜깜한 미래였다”고 말했다.

문 기수는 2015년 조교사 합격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친지를 부산 모 호텔에 모시고 잔치하다시피 감사 인사까지 했다. 그만큼 새 삶에 거는 기대가 컸다. 문 기수는 가족에게 “나는 부정지시하지 않는, 정말 훌륭한 조교사가 될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마사대부 심사가 뜨면, 친한 베테랑 말관리사와 제주를 오가며 서너명만 섭외해도 될 마주를 30명까지 섭외하는 등 노력도 다했다.

오씨는 문 기수가 “길을 두고 ‘둘러가면 더 빠른데 둘러가’란 말을 싫어했다. 원칙대로 정직하게 살았다”고 말했다. 경마장 생활 동안 아버지가 ‘이런 저런 인맥이 있는데 도와줄까’라 말해도 거절했다. 문씨는 “아들이 군대에 있을 적에 한 다리 건너 군 간부가 있길래 좋은 자리 봐줄까 물어봤더니 절대 안된다고, ‘내가 좋은 데 가면 다른 애가 안 좋은 데 가는데 그건 안 된다’고 싫어했다. 부모 면회도 못 오게 한 아이”라고 말했다.

문씨는 “정말 잘 살려고 했는데, 행복하게 살려고 했는데 너무나 아까운 아이”라며 울었다. 문 기수는 ‘죄송하다. 나를 빨리 잊으시고 행복하고 지내시라. 다시 태어나도 아버지 자식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유서에 썼다. 묘를 쓰면 아버지가 찾아오고 괴로워할까봐 화장을 해달라는 유서도 아내에게 남겼다.

▲고 문중원 기수의 아내 오은주씨(왼쪽)와 아버지 문군옥씨. 사진=김용욱 기자.
▲고 문중원 기수의 아내 오은주씨(왼쪽)와 아버지 문군옥씨. 사진=김용욱 기자.

기자에겐 ‘수습했다' 발표, 유족에겐 경찰 보낸 마사회장 “기만”

유족이 서울에 온 이유는 마사회의 "오만함" 때문이다. 부산경마공원에선 어떤 요구를 해도 '중앙(본사) 답변을 받아야 한다'거나 '지역본부는 권한이 없다'는 말만 들었다. 권한은 마사회장에 있다는 답이다. 그래서 본사에 대화하자고 했더니 '개선안을 만들고 있으니 부산본부와 계속 대화하라'는 답만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도 마사회 본사 관계자 누구도 유족을 먼저 찾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김낙순 마사회장은 조문도 하지 않았다.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근본적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는 절실했다. 12월17일 마사회장 면담 요청을 보냈지만 마사회는 거부했다.

급기야 21일 "문전박대"를 당했다. 유족은 직접 김낙순 회장을 만나러 과천 서울경마공원 본사 건물을 찾았지만 경찰병력이 막아섰다. 문씨는 "우리 아들 죽음에 대해 마사회장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좀 묻고 싶다"고 십수 번 외쳤다. 경찰들 발 밑이라도 지나가 보려고 땅에 엎드린 아내 오씨는 경찰에게 목이 졸리면서 머리채가 채였고, 발차기도 당했다.

▲김낙순 마사회장에 면담을 요청하고 찾아간 12월21일, 유족이 경찰병력에 막혀 앉아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김낙순 마사회장에 면담을 요청하고 찾아간 12월21일, 유족이 경찰병력에 막혀 앉아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상경투쟁을 결심하고 12월27일 서울에 온 오은주씨가 운구차 이동을 막는 경찰병력에 막혀 운구차에 얼굴을 묻고 잇있는 모습. 사진=공공운수노조
▲상경투쟁을 결심하고 12월27일 서울에 온 오은주씨가 운구차 이동을 막는 경찰병력에 막혀 운구차에 얼굴을 묻고 있는 모습. 사진=공공운수노조
▲4박5일 과천경마공원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행진이 끝난 1월21일, 오은주씨가 행진로를 가로막은 경찰 병력 앞에 앉아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4박5일 과천경마공원에서 청와대까지 오체투지 행진이 끝난 1월21일, 오은주씨가 행진로를 가로막은 경찰 병력 앞에 앉아 있다. 사진=공공운수노조

유족은 마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을 본 직후 상경했다. 김낙순 회장은 유족에겐 일언반구 없었지만 언론엔 입을 열었다. 문씨와 오씨는 12월26일 “마사회가 승자독식 구조를 개선한다”는 보도를 보고 분노했다. 유족·노조를 무시하던 마사회가 갑자기 문 기수 사망 수습책을 마련했다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냈다. 유족 눈에 수습책은 미봉책에 그쳤지만 마사회는 이를 ‘승자독식 구조 개선’이라 발표했다. 이들은 다음 날 바로 서울에 와 서울 빈소를 차렸다. “마사회 책임을 분명히 하겠다”며 시신을 서울 정부청사 앞으로 운구했다.

거짓말처럼 상경투쟁이 시작되자마자 본사 관계자가 나왔다. 12월27일 고 문중원 기수가 사망한 지 29일째 비로소 유족 측과 마사회의 예비 교섭이 시작됐다. 요구는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마사회 공식 사과와 유족 보상이고, 목적은 “제8의 문중원을 막는 것”이다. “보여주기식 시늉 말고 진정한 근본 대책을 만들자”는 것이다.

7번째 사망, 마사회 간부 한 번도 사죄·조문한 적 없어

문 기수 사망 60일째 교섭 진전은 없다. 마사회는 ‘상금 분배율을 조정하고 경주마 훈련비를 인상하겠다’고 대책을 내놨으나 유족은 “근본 구조 개선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적극적인 진상규명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마사회는 경찰 수사만 의뢰했고 자체 감사는 진행하지 않고 있다. 경찰 수사 결과는 마사회가 어느 정도의 기록·자료·증언을 먼저 내놓느냐에 달렸다. 마사회는 ‘기수는 개인사업자’라며 책임을 부인한다. 김낙순 회장은 지금까지 문 기수 빈소를 조문한 적이 없지만 지난 22일 기자간담회는 열어 "(유족 측과) 부산경남경마장 기수 관련 제도 개선 사항을 협의해 개선에 나설 것"이라 밝혔다.

(관련 기사 : 기수 죽음에 책임 없다는 마사회, 언론에 잇단 ‘거짓말’)

지금까지 부산경마공원에선 기수 4명과 말관리가 3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명이 유서를 남겨 마사회를 비판했다. 2010년 고 박진희 기수는 “도대체 부산에서 몇 번의 자살시도를 한 거야. (중략) 경쟁이 그만큼 심한 부산경마장인 만큼 여자기수로서 견뎌내기가 이제 힘에 부친다. 왜 그 나이 되도록 철없이 (조교사가) 혼자 견뎌내고있는 나를 “또라이 같은 년”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는지 모르겠어"라고 썼다. 2011년 고 박용석 말관리사는 “너무나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 정말 내가 정신병자가 되지 않은게 신기할 정도”라며 “관리자 노조원 여러분 우리의 권리를 위해 항상 투쟁하십시오”라 적었다. “X 같은 마사회”는 2017년 고 박용석 말 관리사가 남긴 한 마디다.

문씨는 “유서를 이렇게 써가지고 다니는 애들이 지금 일고여덟명이 된다. 어떤 애는 ‘문중원이 죽을 게 아니고 자기가 죽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억울한 일이 많아도 얘길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은주씨가 1월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오은주씨가 1월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유족은 성과 경쟁만 강조해 승자만 살아남게 만든 부산경마공원의 ‘선진경마 체제’ 폐기를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마사회가 꺼낸 몇 가지 세부 방침 개선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상금체계, 외국인 기수 도입, 건강권 보장 등 기수를 둘러싼 모든 제도를 다시 돌아보고 조교사와 기수 간, 마사회와 기수 간 갑을관계를 전면적으로 뒤바꿔야 한다.

문 기수를 사망에 치닫게 만든 마사대부 심사도 대폭 개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유족은 “진상규명은 경찰에만 맡기고, 책임차 처벌도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른다”는 현재 마사회 태도론 내부 자정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문 기수와 오씨는 8살 딸과 5살 아들을 뒀다. ‘자식 바보’였던 문 기수는 사망 하루 전 아이들 크리스마스 선물 배송을 미리 준비해놔 가족들을 안타깝게 했다. 오씨는 매일 매시간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그러나 오씨는 “마사회는 7명 죽음에 대해 여태껏 수수방관만 했다. 누구도 (7명의) 유족 앞에 사죄하거나 문상하러 온 적이 없고 그 점에 가장 분노한다”며 “남편의 억울한 죽음은 명백한 타살이기에 죽음의 원인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마사회가 보여주기식으로 합의하려 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우린 절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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