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기본적으로 뉴스거리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기자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은 “그거 말이 돼?”다. 이말은 “그거 기사거리가 될까?”란 말과 동의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식량은 보도자료다. 보도자료나 받아쓰는 기자라는 표현은 부정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기사의 핵심은 보도자료를 보고 그 행간까지 파악하여 제대로 쓰는 것이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정책이나 통계 들은 독자들에게 꼭 전달해야 할 중요한 정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쓸만한 보도자료조차 발표되지 않는 날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 들판에서 스스로 먹잇감(기사거리)을 찾아야 한다. 이럴 때, 연합뉴스 기사는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다. 

지난 10일 연합뉴스는 ‘작년 나랏빚 51.6조원 증가… 4년 만에 최고’라는 기사를 송고했다. 총 발행량이 1천조원이 넘어선 것은 작년이 처음이라며, 모두 미래세대가 세금으로 갚아야 할 나라빚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이 기사는 MBC, SBS, OBS, MBN 같은 방송사 위주로 십수개의 언론 매체에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보도되었다. 연합뉴스를 포함한 기사들의 출처를 보면 모두 ‘10일 코스콤에 따르면’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이 아니다. 그러나 코스콤은 10일 보도자료를 발표한 바 없다. 코스콤이 보도자료를 내지도 않았는데 십 수개의 매체가 동시에 코스콤을 인용하면서 같은 내용의 기사를 쏟아내는 비밀을 파악해보자. 

▲ 코스콤(koscom) 홈페이지
▲ 코스콤(koscom) 홈페이지

코스콤은 한국거래소가 출자해서 만든 증권전산망을 구축하고 관리하는 회사다. 거래소 등에는 코스콤이 설치한 단말기가 존재한다. 이 단말기는 각종 주식, 재정 통계 자료를 제공하는데, 거래소 출입기자들은 이 단말기를 통해 각종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자,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지난 10일 한 연합뉴스 기자가 코스콤이 제공한 단말기에 담긴 통계를 이리저리 보면서 기사거리를 찾는다. 국채와 공공기관 채권(나라빚) 순발행량 자료를 본다. 10년도 나라빚 순발행량은 80조원이다. 반면 18년도에는 16조원, 작년(19년)에는 52조원을 순발행했다. 이러한 단순 통계를 어떻게 가공하면 오늘의 일용할 양식이 될까? 가장 빠지기 쉬운 유혹은 비교 가능한 연도를 이리저리 조정하는 것이다.

▲ 코스콤 단말기가 제공하는 국채와 공공기관채권의 연도별 순 발행액
▲ 코스콤 단말기가 제공하는 국채와 공공기관채권의 연도별 순 발행액

만약 순 발행량이 적다고 말하고 싶으면, 10년도와 비교해서 제목을 달아보자. “작년 나라빚 순 발행량, 10년전 80조원보다도 크게 감소한 52조원” 거꾸로 순 발행량을 부풀리고 싶다면, 이런 제목도 가능하다. “작년 나랏빚 순 발행량, 4년 만에 최고” 둘 다 팩트는 맞지만 진실은 아니다. 둘 다 데이터를 ‘마사지’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또한, 작년 처음 총 발행량이 1천조원을 초과했다는 설명도 팩트는 맞지만 별 기사거리는 안 된다. 경제규모와 재정규모가 커짐에 따라 국채 총량이 매년 최대치를 경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는 ‘작년 사상 처음 2019년이 되었다’는 말 만큼이나 하나마나한 소리다. 

특히, 나라빚은 모두 미래세대의 빚이라는 표현은 팩트도 틀리다. 나라빚의 약 절반은 대응자산이 있는 금융성 채무다. 예를 들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서 달러를 매입하면, 국채는 발생하지만 달러라는 대응자산이 생긴다. 미래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 빚이 약 절반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연합뉴스가 이렇게 데이터를 마사지 해서 기사를 만들면, 이 기사를 그대로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다른 언론사로 인해 확대 재생산 된다. ‘이거 말이 돼?’라는 근원적인 물음조차 필요없다. 출처는 모두 ‘10일 코스콤에 따르면’이다. 그러나 정말로 코스콤 단말기를 통해 저 통계를 직접보고 내린 결론이 ‘나라빚 4년만에 최대’일까? 그리고 왜 나라빚은 모두 미래세대가 갚아야 한다는 연합뉴스의 틀린 설명을 그대로 반복할까? 이는 오타까지도 그대로 베껴쓴 기사나 마찬가지다. 결국 코스콤에 따르면이라고 연합뉴스를 그대로 전한 십 수개의 매체는 사실상 ‘우라까이’에 불과하다. 취재 없이 타 기사를 적당히 베껴서 쓰는 기사를 언론계 은어로 ‘우라까이’라고 표현한다. 연합뉴스는 기본적으로 통신사다. 기사를 타 언론사에 판매하는 것이 본업이다. 그러나 연합뉴스 기사를 전재하려면 반드시 ‘연합뉴스 제공’이라고 명시해야 한다. 그런데 연합뉴스 기사를 구매하는 회원사 등이 적당히 연합뉴스를 ‘우라까이’해서 기사를 써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 연합뉴스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 연합뉴스 사옥. 사진=이치열 기자

가왕 조용필은 먹이를 찾아,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다니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죽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고 싶다고 노래한 적 있다. 연합뉴스가 던진 잘못된 기사(썩은 고기)를 먹기보다는 좀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표범같은 기자가 많아지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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