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준의 여성 정치대표성을 높이기 위해 선출직 선거 후보자의 성비를 ‘남녀 동수’로 의무화해야 한다는 분석 보고서가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앞서 관련 제도를 시행한 독일·프랑스 사례에 비춰 한국 역시 남녀동수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되, 제도 도입과정에서 불거질 수 있는 위헌 논란에 대비한 사회적 담론 형성 절차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한국 여성의원 비율은 세계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하위권이다. 4년 전 제20대 총선에서 여성 당선자는 전체 300명 중 51명, 10.49%로 실제 성비에 한참 못 미친다. 2017년 기준 OECD 36개국 가운데 한국보다 여성의원 비율이 낮은 국가는 5개국에 불과했다. OECD 회원국의 여성의원 비율 평균은 28.8%, 한국은 이보다 10%p 낮은 수준이다.

우리 국회와 각 정당에서도 여성 정치대표성 확대를 위한 입법 논의들이 이어졌다. 공직선거법에 따라 국회의원 비례대표 명부 작성 시 정당은 후보자의 50% 이상을 여성에게 할당하고, 후보자 명부 순위 홀수에 여성을 추천해야 한다. 각 정당 비례대표 후보 1번이 여성인 이유다. 할당규정을 위반한 후보자명부는 무효다. 지역구선거의 경우 선거참여 정당이 여성후보를 30% 이상 추천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비례대표처럼 강제력은 없다. 정치자금법은 국회의원 및 지방의회의원 선거(지역구)에서 여성 후보자를 추천하는 정당에 여성추천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도록 한다. 이는 여성후보자 선거경비로 사용해야 하며 그 외의 용도로 사용한 보조금은 회수되거나 감액된다.

▲ 역대총선 결과 여성 국회의원의 수와 비율.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회입법조사처
▲ 역대총선 결과 여성 국회의원의 수와 비율. 자료=중앙선거관리위원회, 국회입법조사처

그러나 이런 제도가 가진 여러 한계도 지적된다. 23일 발간된 보고서(여성 정치대표성 강화방안: 프랑스·독일의 남녀동수제 사례분석)는 “현행 여성할당제는 비례대표 선거에 치중해 있는데 지역구의원에 비해 비례대표의원 비율이 낮은 한국에서 비례대표 선거의 할당제 효과는 한계를 가진다”고 했다. 전체 의원 가운데 비례대표의원 비율은 국회의원의 경우 15.7%, 광역의원 10.6%, 기초의원 13.2%다. 여성 추천 30% 권고 조항만을 두고 있는 지역구 선거와 관련해선 “선거 경쟁력 등 이유로 여성후보 추천을 강제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30% 권고조항은 미흡한 측면이 있어 추천비율을 높이거나 위반 시 국고보조금 삭감 비율을 높이는 등 제도적 보완방안이 논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 보완방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남녀동수제’다. 프랑스는 지난 2000년 이른바 ‘빠리테법(La Parité)’을 제정해 여성 후보를 남성 후보와 동수로 추천하고 있다. 이 법은 지방의원선거, 하원의원선거, 유럽의회의원선거, 상원비례대표선거 등에 적용된다. 의무조항을 지키지 않은 정당의 후보자명부는 접수할 수 없으며, 소선거구 다수대표제인 하원의원선거의 경우 여성할당 비율을 지키지 않은 정당은 국고 정당보조금이 삭감된다. 보고서는 “빠리테란 동등, 동격, 동률을 의미하며 이는 빠리테법이 소수자 우대정책이 아니라 남녀 양쪽의 기회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법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빠리테법 제정 직후 프랑스 여성의원 비율은 2002년 총선에서 12.4%(직전 선거 10.9%), 2017년 총선에선 하원의원 여성 비율이 39.6%로 늘었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 세계 193개국 중 18위다. 3년마다 전체 의석 절반을 선출하는 상원의원선거의 경우 여성의원 비율이 2008년 15.8%, 2011년 28.8%, 2014년 22.4%, 2017년 29.3%로 증가했다.

▲ 프랑스 '빠리테법' 제정 이후 여성 하원의원 비율. 자료=Parline database on national parliaments, 국회입법조사처
▲ 프랑스 '빠리테법' 제정 이후 여성 하원의원 비율. 자료=Parline database on national parliaments, 국회입법조사처

독일의 경우 지난해 1월 브란덴부르크 주의회에서 정당의 비례대표 명부를 남녀 동수로 구성하도록 강제하는 선거법 개정안이 의결됐다. 각 주의 당원대표자총회가 남성후보명부와 여성후보명부를 작성하고 각 명부에서 여성과 남성을 교차해 순차적으로 정당 명부순위에 배정하는 방식이다. 다만 당내 규정에 의해 ‘한쪽 성’에만 개방된 정당의 경우 할당규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 보고서는 법 개정 배경과 관련 “여성의원의 낮은 비율은 무엇보다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다고 보고 실질적인 성평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선거법 개정이 효과적 수단이라는 인식이 우세했다”고 전했다.

입법조사처는 두 사례에 비춰 △‘인센티브 제도’와 연계한 남녀동수제 법제화 △정당차원의 여성 인적자원 발굴 및 육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남녀동수제 위반에 강한 제재를 두기보다 정당국고보조금 확대 등 인센티브제를 통해 여성후보 추천을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하자는 것이다. 단지 후보자 추천을 넘어 여성정치대표성 강화라는 취지를 살리려면 각 정당이 여성후보 발굴과 육성 단계에서 지속적인 투자와 교육프로그램에 역점을 둬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도입과정에서 우려되는 ‘위헌 논란’ 해소를 위한 사회적 담론 형성과 총의 수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독일에선 남녀동수제가 정당의 자유 및 선거의 자유·평등을 침해한다는 위헌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인적자원이 부족한 군소정당 문제나 ‘제3의 성별’을 가진 후보가 특정 성별을 선택할 수 있게 한 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는 남녀동수제 범위를 확장하기에 앞서 두 차례 개헌으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입법조사처는 “위헌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프랑스와 같이 법 개정에 앞서 개헌을 통해 남녀동수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개헌을 남녀동수제의 위헌소지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개헌논의에 앞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총의를 수렴하는 절차가 선행될 필요가 있을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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