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제철이 지난 16일 ‘김용균법’ 시행을 앞두고 아연도금 사내하청 노동자를 일부만, 계약직 채용해 꼼수란 비판이 나오자 조선일보가 ‘직고용 떼쓰기’라는 보도를 내놨다. 현장에선 현대제철의 정책으로 더 위험해졌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당초 김용균법 전에도 직접고용 법조항·판결이 나온 사안을 놓고 ‘위험 여부’ 논란으로 프레임을 옮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인다.

조선일보는 지난 15일 ‘김용균법 내세워… 민노총, ‘위험없는 외주’도 정규직 요구’ 제목의 기사에서 “국내 2위 철강기업 현대제철의 전남 순천공장은 일명 ‘김용균법’(개정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현대제철은 그간 협력업체 직원 24명이 맡았던 아연 관련 업무를 운반과 도금 작업으로 구분해 위험이 없는 아연 운반은 기존처럼 협력업체에 맡기고, 도금은 별정직 근로자 12명을 직접고용해 맡기기로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민주노총 소속인 협력업체 노조는 무조건 전원 정규직으로 채용하라고 요구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며 “친노동 정책을 등에 업은 민노총의 무리한 요구는 그동안에도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고 했다. 현대제철 관계자 입을 빌려 “개정법에 맞춰 대응했을 뿐인데 자꾸 논란이 벌어지니 곤혹스럽다”고 전했다.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한 김용균법이 시행돼 도금공정을 직고용하느라 비상에 걸렸고, 민주노총이 법에 따라 ‘위험하지 않은’ 업무까지 전원 전환을 요구한다는 주장이다.

▲15일 조선일보
▲15일 조선일보 16면

실상 도금업무는 산안법 개정 이전부터 도급금지가 원칙인 데다, 현대제철 순천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이란 법원 판단을 받았다.

김용균법은 58조에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의 제련·주입·가공·가열작업 등 유해화학물질을 쓰는 작업을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나 법 개정 이전에도 도금작업의 하도급은 고용노동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1990년 신설된 도급금지 조항은 도금작업 등에 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만 분리도급할 수 있도록 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따르면 그간 현대제철은 인가 신청 않은 채 도금작업을 외주화했다. 노동부는 감독하지 않았다.

한편 법원은 현대제철 순천공장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해왔다. 광주지법 순천지원과 광주고법 등은 2011~2019년에 걸쳐 현대제철과 순천공장 원청이 하청 노동자들에게 작업지시와 관리를 해왔으므로 파견이며, 그러므로 현대제철 노동자로 봐야한다고 선고했다. 현대제철은 상고해 사건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현대제철이 김용균법 탓에 최근 ‘비상’이 걸린 게 아니라, 애초 직접고용 대상인 도금공정 노동자들을 줄곧 외주화해왔단 얘기다. 금속노조는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어 이같이 밝혔으나 조선일보는 해당 기자회견을 기사에 언급하면서도 반영하지 않았다.

▲아연도금 공정 현장. 금속노조 현대제철 순천지회 제공
▲아연도금 공정 현장. 금속노조 현대제철 순천지회 제공

조선일보와 현대제철은 왜 김용균법을 들어 업무의 위험 여부를 강조할까. 기존 제도와 판결로 현대제철의 직접고용 의무가 명백한 상황에서 ‘위험·비위험 업무’로 쟁점을 좁히는 시도라는 지적이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조선일보와 현대제철이 논리적으로 궁색한 주장을 내미는 의도는 프레임 전쟁으로 보인다. 조선일보와 현대제철은 도금이라도 위험한 건 승인 대상, 아닌 건 사내하청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도금이 원래 통째로 도급금지라는 점과 자신들에게 불리한 불법파견 판결 흐름을 지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장 노동자들은 현대제철이 아연도금 업무를 이분해 한쪽만 직접고용한 뒤 오히려 위험해졌다고 밝혔다. 금속노조 현대제철 순천지회 설명에 따르면 아연도금은 자동차나 건물 외장재에 들어가는 금속판의 영구성을 강화하는 공정이다. 판이 라인을 따라 아연 용해로를 거치면서 도금된다. 아연괴가 460도 온도에 녹으면서 그 자체로 위험하고, 불순물과 함께 드로스·슬러지라 불리는 찌꺼기도 나온다. 2인1조는 함께 불순물을 일일이 떠내거나 긁어낸다.

이병용 순천지회장은 “아연괴 운반과 투입, 전·후처리와 불순물 제거 등 작업이 2인1조로 함께 혹은 돌아가며 이뤄지는데, 지난 16일 이후 ‘별정직’ 1명이 대부분 작업을 떠맡게 돼 위험해졌다”고 했다.

▲금속노조
▲민주노총은 지난 9일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위험의외주화 금지 편법꼼수 회피 현대제철 규탄 및 정규직 전환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대제철이 그간 외주화 정책을 고수해오다 김용균법 시행 뒤에도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일련의 시도에 오히려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신범 부소장은 “현대제철이 직고용해야 할 근거는 판결과 법조항 등 너무나 많은데도, 어떻게든 비용절감하려는 태도가 아주 깊게 박혀있다. 산재사망 반복을 막고 안전한 일터를 만들려면 고용이 안정돼야 하고, 이는 사측엔 비용이다. 현대제철 내에 왜 사망사고가 많은지 설명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금속노조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현대제철에선 3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숨졌다.

현대제철 측은 아연도금 공정에서 2인1조의 1명만 직접고용한 이유를 놓고 “개정법을 따라 현장 업무분석을 통해 구분해 2명 중 1명만 채용했다. 비용절감을 위한 건 아니다. 직원이 100~200명 있는 업체도 아닌데 몇 명 그렇게 한다고 큰 의미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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