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의 경마 기수 고 문중원 씨가 마사회 내부 부조리를 고발하며 세상을 떠난 지 50여 일이 지났습니다. 폭로 이후 갑질과 부조리로 운영되는 마사회를 바로 세우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마사회 산하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선 지금까지 7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상황입니다. 유족과 고 문중원 시민대책위(이하 대책위)는 “바뀌지 않으면 또 죽는다”며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마사회 본부에서 청와대까지 약 26km의 거리를 오체투지로 행진하며 진상규명‧책임자처벌을 요구했습니다. 17일부터 22일까지, 4박 5일에 걸친 일정이었습니다. 유족 측은 문중원 기수의 시신을 서울 정부 청사 앞에 안치해 놓고 장례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사회는 유족과 합의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고 정부도 뒷짐을 지고 있습니다. 경찰의 수사도 미온적입니다. 이런 가운데, 언론마저 문중원 기수 사건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 26km의 거리를 ‘오체투지’로 행진한 고 문중원 기수 유족과 대책위. 사진=전국공공운수노조
▲ 26km의 거리를 ‘오체투지’로 행진한 고 문중원 기수 유족과 대책위. 사진=전국공공운수노조

대다수의 언론은 여전히 침묵

지난 보고서 <마사회 부조리 고발하고 세상 등진 고 문중원 기수… 언론은 침묵>(1월2일)에 이어 1월3일부터 1월22일까지 언론 보도를 모니터 확인한 결과, 문중원 기수 관련 보도는 매우 적었습니다. 종합일간지와 경제지를 살펴보면, 한국일보․조선일보는 1건씩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동아일보‧중앙일보‧서울경제‧한국경제는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11건, 7건으로 지속적으로 문중원 기수 사건을 취재․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직접 관련 보도는 아니었고, 다른 내용의 기사에서 1줄만 언급한 경우였습니다. 조선일보는 <민노총 천막은 놔두고, 탈북민 천막만 철거한 종로구>(1월16일 이해인‧남지현 기자)에서 종로구청의 탈북민 천막 철거를 언급하며 “정부서울청사 옆 중앙지하차도 상단 ‘문중원을 살려내라’는 민노총 불법 현수막에는 손대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문중원 기수 사건에 무관심하다가, 종로구청이 민주노총의 문중원 기수 현수막만 철거하지 않는 건 부당하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입니다.

방송도 무관심했습니다. 저녁종합뉴스에서 문중원 기수 사건을 다룬 건 SBS가 유일했습니다. SBS는 <“죽음의 경주 멈춰라”… 청와대 향한 4박 5일 오체투지>(1월17일 전연남 기자)에서 대책위의 오체투지 행진 소식을 전하면서 대책위와 유족의 입장을 시민들에게 전했습니다. 

포털에 송고된 기사로 살펴보면 YTN은 10건, MBC는 8건, KBS는 4건, SBS는 4건, MBN은 1건이었습니다. YTN‧MBC‧KBS가 온라인 기사와 저녁종합뉴스 외의 뉴스에서 문중원 기수 사건을 다뤘으나 정작 중요한 저녁종합뉴스에서 보도를 하지 않은 점은 아쉽습니다. JTBC와 채널A‧TV조선은 저녁종합뉴스에서도, 포털에 송고된 기사에서도 문중원 기수 관련 기사를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 지난 1월3일부터 22일까지 고 문중원 씨 사망 사건 관련 내용을 언급한 신문·방송 보도량, 신문은 지면보도 기준. 방송은 저녁종합뉴스 기준 (괄호 안은 포털(네이버)에 송고된 온라인 기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 지난 1월3일부터 22일까지 고 문중원 씨 사망 사건 관련 내용을 언급한 신문·방송 보도량, 신문은 지면보도 기준. 방송은 저녁종합뉴스 기준 (괄호 안은 포털(네이버)에 송고된 온라인 기사). 표=민주언론시민연합

대책위는 26km 오체투지 행진, 기수들은 노조 설립 신고… 사안 불거져도 보도 안 해

모니터 기간 동안 보도할 만한 사건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유족과 대책위는 극한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족과 대책위는 17일부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며 오체투지 행진에 나섰습니다. 오체투지는 10걸음을 걸은 뒤에 온몸을 굽혀 양 무릎과 양 팔꿈치, 이마를 땅에 붙이며 하는 절입니다. 유족과 대책위는 경기도 과천 한국 마사회에서 청와대까지, 무려 26km의 거리를 4박 5일간 그렇게 걸었습니다. 

또, 지난 20일 부산경남경마공원 소속 기수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기수 35명 중 19명이 설립총회에 참가했습니다. 동료 7명을 잃은 부산경남공원 기수들이 노동자를 보호해줄 보호막인 노동조합 설립에 나선 것입니다. 다만, 기수들은 법상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 특수고용직 신분이라, 고용노동부가 이들의 노조 설립 신고를 받아들일지가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경찰과 충돌도 잦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4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마사회 측과 면담을 요구하기 위해 서울경마공원에 진입하려다가 경찰과 충돌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연행되기도 했습니다. 21일은 청와대 앞에서 또다시 충돌해 대책위 관계자 1명이 다쳐 119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보도를 이어가고 있는 매체들

그나마 몇몇 매체에서 문중원 기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한겨레는 <사설-40일 떠도는 기수의 죽음, 마사회는 답해야>(1월6일)를 통해 마사회를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한겨레는 “현행 경마제도의 무한경쟁체제와 다단계 구조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며 “서울과 달리 기본급이 없는 부산은 출전 여부를 결정하는 조교사에 기수들이 철저히 종속돼, 생계유지도 힘들 뿐더러 승부 조작 등 부당한 요구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기수들은 ‘개인사업자’라며 산재 적용도 받지 못한”다는 법적 허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어 “김낙순 한국마사회 회장이 유족들을 계속 피할 게 아니라 찾아가 사과하고 협의하는 게 마땅하다”라고 요구했습니다. 

한국일보는 <마방‧상금 쥔 ‘경마장 갑’ 마사회… “기수 극단적 선택 책임져야”>(1월8일 변태섭 기자)에서 마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밀도 있게 짚었습니다. 한국일보는 “마사회는 감독 역할을 하는 조교사를, 조교사는 기수와 말 관리사를 통제하는 다단계 하청 구조가 연이은 죽음의 배경”이라며 마사회의 이른바 선진경마체제가 가진 구조적 문제를 설명했습니다. 또, 마방 배정 과정에서 마사회의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크며, 기본급 없이 경마 성적을 기준으로 임금을 달리하는 기수 간 경쟁체제가 이번 사건의 핵심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일보는 “경마업계의 비뚤어진 하청 구조와 상금 지급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고 있다”고도 전했습니다.

경향신문은 <“남편의 죽음이 마지막이어야…정부가 답해달라”>(1월11일 김한솔 기자)<청와대 앞, 가로막힌 ‘20km’의 외침 “문중원을 살려내라”>(1월22일 조문희 기자) 등 총 11건의 기사를 통해 문중원 기수 사건을 지속적으로 취재‧보도하고 있습니다.

모니터 대상이 아닌 매체에서 문중원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다룬 경우가 있었습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는 <고 문중원 기수 아내 “여보, 승부조작 못하겠다고 말하지”>(1월22일)에서 문중원 기수의 아내인 오은주 씨와 직접 인터뷰했습니다. 오은주 씨는 마사회 내 승부조작과 관련한 질문에 “오늘은 몇 등으로는 가지 말아라. 말을 당겨서 들어오지 말아라. 그런 승부 조작의 지시를 받았다고는 얘기를 들었다”고 의혹을 제기하며, 이를 지시한 조교사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을 자세히 전했습니다. 또, 마방 배정 과정에서의 부정과 이로 인해 문중원 씨가 고통스러워했던 상황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영상-아들 상여 청와대 앞에 두고 눈물짓는 아버지의 사연>(1월6일 김혜주 기자) <위장자영업자가 남긴 유서>(1월14일 전주희 기자) 민중의소리 <극우단체 집회 이유로 가로막힌 4박5일 고 문중원 오체투지… “기어서 가겠다는데 왜 막나”>(1월21일 이승훈 기자) 프레시안 <남편의 죽음 알려 ‘죽음의 경주’ 멈추게 할 것입니다>(1월21일 최용락 기자) 등에서 꾸준히 보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또 노동전문매체인 매일노동뉴스는 <마사회는 문중원 기수 죽음 사태 해결할 생각이 없다>(1월2일 제정남 기자) <다단계 하청구조 탓에 김용균 이어 문중원 숨져>(1월17일 제정남 기자) 등에서 적극적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 모니터 기간과 대상 : 2020년 1월3~22일 (종합일간지 경향신문·동아일보·조선일보·중앙일보·한국일보·한겨레, 경제지 서울경제·한국경제, 방송사 KBS·MBC·SBS, 종합편성채널 JTBC·TV조선·채널A·MBN, 뉴스전문채널 YTN)
※ 문의 : 엄재희 활동가 (02) 392-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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