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무리한 광고 요구와 안하무인식 취재에 시달려 공식 대응에 나서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전국적으로 늘고 있다.

이정운 전국공무원노조 하동군지부장은 지난해 10월 보름 동안 하동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하동군 발전을 저해하는 적폐기자는 물러가라”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서다. 하동저널의 A기자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군청 직원의 제보가 노조에 끊임없이 접수되자 “더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나섰다.

“A기자가 음주 상태로 군청에 들러 취재한다”거나 “전화를 해서 본인이 있는 데로 오라고 한다”는 제보가 여러 건이었다. “한 직원과의 통화내용을 다른 직원에게 들려주는 등 비밀 유지를 하지 않는다”거나 “전화 취재 중 문제가 생기면 갑자기 공무원 사무실을 찾아가 ‘방금 전화한 사람 누구냐’며 소리쳤다”는 제보도 있었다. 한 공무원은 ‘군청 비판 기사를 내기 전 미리 보여주는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이정운 전국공무원노조 하동군지부장이 지난해 10월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왼쪽)과 하동군민 1600여명이 하동군청에 제출한 청원서.
▲이정운 전국공무원노조 하동군지부장이 지난해 10월 피켓시위를 하는 모습(왼쪽)과 하동군민 1600여명이 하동군청에 제출한 청원서.

 

시위는 공무원노조 하동군지부와 A기자가 ‘올바른 취재문화 확립을 위한 합의문’을 쓰면서 끝났다. 합의문엔 △취재 요청은 사전 협의하고 강압적 취재를 하지 않으며 △근거 없는 음해성 추측 보도를 지양하고 △군청 사업 현장에 공무원과 동행할 땐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겼다. A기자는 이에 “(갑질 주장은) 오해다. 좁은 시골이다 보니 가까운 사람들이 있고 그들에게 한 행동인데 달리 오해가 쌓였다. 서로 사과하고 받으며 풀었고, 다 끝난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사태는 지역사회로 확대됐다. 유사한 피해를 입은 시장 상인들이 공감하면서 ‘건강한 하동군 언론문화 조성을 위한 청원’ 서명운동을 시작했고 주민 1600여명이 모였다. “업무 관련 범죄를 저지른 기자의 관공서 출입을 제한하고 문제 회사에 광고·협찬·신문구독 편의 등을 제공하지 말라”는 청원이다. 지난해 11월 청원서를 받은 하동군청은 “기자실 운영 방침 등 내부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라 밝혔다.

경남의 16개 시·군 공무원들도 같은 목소리를 낸다. 공무원노조 경남본부의 각 시·군 지부장들은 오는 30일 ‘지역 언론인의 불합리한 취재 행태’ 현황을 공유하는 대책회의를 연다. 경남본부 관계자는 “기자들이 언론사가 발간한 고가의 연감을 강매하는 일이 아직 벌어진다”며 “과도히 자료를 청구하고 광고비를 주면 취하하는, 악의성이 의심되는 정보공개청구도 잦다. 사례가 누적돼 대응을 공동 모색하는 회의를 연다”고 밝혔다.

▲하동군에서 기자 갑질 문제가 논란이 되자 문제제기에 나선 하동군지부(전국공무원노조)와 하동저널이 사태 해결을 위해 맺은 협약문 내용 일부. 디자인=이우림 기자
▲하동군에서 기자 갑질 문제가 논란이 되자 문제제기에 나선 하동군지부(전국공무원노조)와 하동저널이 사태 해결을 위해 맺은 협약문 내용 일부. 디자인=이우림 기자

 

이들은 2년 전 경북 안동의 한 기자가 공갈죄로 실형을 받은 사건에 주목했다. 이 기자는 2016년 말께 시장·부시장 업무추진비, 물품 구매, 언론 광고, 수의계약 등의 5년치 내역을 안동시청과 시의회, 예천군청과 군의회에 한꺼번에 청구한 후 광고비를 받으면 청구를 취하했다. 이 방식으로 총 245만원을 갈취했고 210만원은 공갈미수에 그쳤다. 이 기자는 1심에서 혐의가 인정돼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공무원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면서 갈등이 소송전으로 번질 때도 있다. 지난해 6월 시작된 서천군의회와 김아무개 전 서해신문 논설위원 간 다툼은 아직 진행 중이다. 서천군의회 직원들은 서해신문 측의 무례한 취재 행태가 계속되자 시의회 회의 중 막말·욕설을 한 김 논설위원을 업무방해죄로 고소까지 했다. 김 논설위원이 이에 명예훼손, 횡령, 업무방해, 협박 등 6가지 혐의로 군의회 직원들을 고소했다. 명예훼손과 횡령은 무혐의가 났고 나머지 4개 사건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이런 기자를 ‘사이비기자’라고 부른다. 지역에 좋은 기자들도 많은데 소수 때문에 도매금으로 이미지 먹칠을 당한다”며 “우리 지역의 한 기자는 자신을 ‘생계형 기자’라고 변명했는데 그럼 취재 윤리를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냐. 언론 활동에 돈만 남는 것이냐”고 물었다.

경남의 한 지역 기자는 “군 단위 지역은 특히 지리나 사람 간 사회적 관계가 더 좁다. 공무원과 언론인이 한 다리 건너면 다 알 만큼 가깝다. 지역 기자는 한 지역에서 오래 일하는데다 보도로 지역에 영향을 주는 파급력이 더해져, 지역 유지같은 권력을 갖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언론 광고비도 원인 중 하나다. 기자가 지자체에 광고를 요구했다가 거절당하면 보복으로 정보공개청구를 과도하게 하거나 음해성 기사를 쓰는 경우가 생긴다. 지자체 비판기사나 옹호기사를 줄곧 쓰면서 광고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공공기관과 기자 간 앙금이 깊어진다.

공공기관이 방관만 하다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관점도 있다. 수익원이 적은 지역언론은 관공서 광고가 주요 생존 수단인데 지자체가 이 점을 이용해 보도 관리만 하다 언론 문제를 방관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전북 임실군의 정정보도 신청은 지자체가 원칙적 대응에 나섰다는 좋은 평가를 받는다. 임실군청은 국제뉴스가 확인 취재 없는 의혹 보도를 6건 연달아 내자 지난해 5월 언론중재위에 정정보도 신청을 냈다. 언중위는 6건 모두 왜곡이라며 정정보도를 내고 1000만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직권 조정을 냈다. 국제뉴스가 이를 거부해 전주지법에 민사 소송으로 접수됐다. 오는 30일 선고가 나온다.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국장은 “인터넷 매체가 급격히 늘면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주요 일간지’ 지역 주재기자들 사례도 많다.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라며 “시·군청과 의회에서 100만원 씩만 광고비가 나와도 한 달 인건비가 나온다. 관공서 광고만으로도 1~2인 매체 생존이 가능하니 매체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이 매우 낮다”고 짚었다.

손 사무국장은 또 “지자체는 여론 다양성과 언론 지원을 위해 언론 광고비를 충분히 집행할 필요가 있지만 원칙없이 운용한 게 문제”라며 “예로 직원들 4대 보험 가입, 최저임금 이상 지급, 1년 이상 정상 발행 등을 광고비 지급이나 취재 지원 기본 조건으로 둘 수 있고, 업무 관련 형벌을 받았는지 여부도 적극 검토해야 자정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손 사무국장은 “원칙에 따라 광고비를 지급했는지 모두가 확인할 수 있도록 내역을 투명히 공개하는 건 필수조건”이라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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