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가 유료방송 인수·합병을 승인하면서 유료방송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개편 과정에서 노동자 고용안정성과 노동안전 문제 우려도 나온다. 통신 중심의 시장 변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유료방송 업계의 현안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시각적인 차이’가 선명했다. 지난 10일 만난 인천 계양지역 SK브로드밴드 인터넷·IPTV 설치수리 기사 장연의씨는 SK브로드밴드의 상징인 주황색과 빨간색 날개를 한 나비 로고가 새겨진 ‘레이’ 차량을 타고 출근했다. 차에는 SK브로드밴드 홈앤서비스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반면 서울 은평지역 LG헬로비전(구 CJ헬로)의 인터넷·케이블방송 설치기사 김동환씨는 16일 자신의 SUV 투싼 차량을 타고 출근했다.

두 노동자 모두 우리가 동네에서 만나는 평범한 ‘기사님’이다. 그러나 고용 형태는 다르다. SK브로드밴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하청업체 설치 수리 노동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최근 LG유플러스가 인수한 CJ헬로는 전국에 위치한 개별 하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을 유지하고 있다. LG도 CJ도 그들의 고용주는 아니었다.

SK브로드밴드의 경우 전국의 설치수리 노동자가 한 회사 소속으로 일률적인 구조를 유지하지만 LG헬로비전은 계약을 맺고 있는 개별 하청업체에 따라 고용형태와 업무성격 등이 상이하다.

▲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 기사 장연의씨가 회사 차량 앞에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 기사 장연의씨가 회사 차량 앞에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LG헬로비전(구 CJ헬로) 설치 기사 김동환씨가 업무에 쓰는 자신의 차량 앞에 서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LG헬로비전(구 CJ헬로) 설치 기사 김동환씨가 업무에 쓰는 자신의 차량 앞에 서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장연의씨는 “원래는 차가 없었다. 정규직 전환 이후에야 차가 지원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유류비만 지원했고 지금은 자신의 차를 쓸지 유류비로 할지 선택하게 한다”고 했다. 유류비 지원을 받으면 돈을 절약하기 위해 차에서 냉난방을 제대로 틀지 못한다. 김동환씨가 실제로 그렇게 일하고 있다. 장연의씨는 회사 차가 나오니 아파트 들어갈 때 따로 경비원들이 차를 멈춰 세우지 않는 점도 이점 중 하나라고 했다.

두 노동자 차에는 무엇이 있을까. 원래 두 노동자가 갖고 있는 장비를 펼쳐보고 비교하는 기사를 쓰려 했다. 한 때 유행했던 ‘테트리스 챌린지’를 본 따서다.

하얀 천을 준비해 장비를 올리는 과정에서 장연의씨 물품 대부분을 회사에서 지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회사에서 ‘지급한 물품 비교’로 취재 방향을 튼 계기다. 헬멧, 신형 안전벨트, 안전화, 전동 드릴, 니퍼와 스패너 등 공구까지 회사 물품이다. 주요 장비 및 물품 가운데 인터넷 연결 여부를 테스트하는 기계만 사비로 구입한 것이라고 했다.

김동환씨를 만났을 때 장연의씨 물품 사진을 보여주며 비교 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김동환씨는 “이렇게 많이 회사에서 지원해준다고요?”라며 놀랐다. “이래서 모르면 당하는 건가”라고 덧붙였다. 그의 차에서 주요 장비 및 물품 가운데 ‘회사에서 지급한 것들’을 꺼내달라고 하자 머쓱해 했다. 셋톱박스, 구형·신형 인터넷 선, 공유기 등 기본 제품을 제외하고는 헬멧과 작업화, 인터넷선만 천 위에 놓았다. 천 위에 틈이 없었던 장연의씨 때와 달리 3분의 2가량의 넓은 공간이 텅텅 비었다.

▲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 기사 장연의씨의 주요 장비 및 물품. 작업 도구 및 안전장비 전반을 회사에서 지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직고용된 SK브로드밴드 설치수리 기사 장연의씨의 회사 지원 주요 장비 및 물품. 사진=김예리 기자.
▲ LG헬로비전(구 CJ헬로) 김동환 설치 기사의 주요 장비 및 물품 가운데 회사에서 지원한 것만 나열했다. 안전장비를 포함한 다수 장비를 직접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 LG헬로비전(구 CJ헬로) 설치 기사 김동환씨의 주요 장비 및 물품 가운데 회사에서 지원한 것만 나열했다. 안전장비를 포함한 다수 장비를 직접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같은 물품에도 ‘퀄리티’가 달랐다. 장연의씨가 회사에서 지급 받은 사다리에는 미끄럼 방지 판이 있었다. 김동환씨가 직접 구매한 사다리는 일반 사다리로 쉽게 미끌렸다. 장연의씨는 “전주 작업 때 미끄러질 위험이 큰데 사다리를 바꾸고 나서는 그래도 좀 낫다”며 “그래도 안전 문제는 개선이 됐다”고 했다. 장연의씨의 드릴에는 ‘1월’이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매월 회사에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붙이는 스티커다.

그 역시 정규직 전환 이전에는 대부분의 물품을 지원받지 못했다. 자비로 구매해야 하니 ‘필수적인 것’만 구매했고 돈이 드는 장비는 구매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 선 하나 하나도 ‘돈’이었다. 그는 “과거에는 인터넷 선도 우리가 구매했다. 10층 넘는 아파트 고층에서 1층까지 선을 내리는 날에는 이게 얼마인지 계산하며 아까운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SK브로드밴드 자회사 정규직 전환 이후 여전히 개선할 사항은 적지 않다. 노동자들은 임금 차별, 문화적 차별이 더해져 여전히 자신을 비정규직 때와 다르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정규직 전환의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두 노동자의 차와 차 안에 든 물품의 ‘성격’은 노동의 ‘질’이자 안전의 ‘질’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드러내는 단면이었다. LG헬로비전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는 직접고용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묵묵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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