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한겨레 논설위원이 22일 오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를 겨냥해 “사법 불신이 여전한 상황”이라며 “재판부는 정신 차려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파기환송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가 최근 삼성이 구성한 준법감시위원회 실효성을 점검하고 이를 형량에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에 대한 일갈이다.

이날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과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가 서울 서초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주최한 토론회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 토론자로 참석한 곽 위원은 “이재용 부회장 죄질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5~8년의 실형이 적합한데도 삼성 봐주기를 할 경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단절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배치된다는 발제자들 지적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 22일 오후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곽정수 한겨레 논설위원은 “이재용 부회장 죄질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5~8년의 실형이 적합한데도 삼성 봐주기를 할 경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단절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배치된다는 발제자들 지적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사진=김도연 기자.
▲ 22일 오후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 등이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곽정수 한겨레 논설위원은 “이재용 부회장 죄질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5~8년의 실형이 적합한데도 삼성 봐주기를 할 경우 ‘유전무죄, 무전유죄’ 단절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배치된다는 발제자들 지적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사진=김도연 기자.

토론회 쟁점 가운데 하나는 ‘치료적 사법’이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 공판기일에서 “재판 진행이나 재판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전제한 뒤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효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삼성은 지난 9일 자사 경영진을 감시·고발할 준법감시위(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를 출범시켰고,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 17일 공판에서 “삼성의 새로운 준법감시제도는 기업 범죄 양형 기준의 핵심적 내용으로 1991년 제정된 미국의 연방양형기준 제8장에 언급된 양형 사유”라며 “이런 제도는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운영돼야만 양형 조건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말 바꾸기’ ‘재판 거래’ 논란에 휩싸인 이유다.

곽 위원은 “법원이 재벌 피고인을 비재벌 피고인에 비해 훨씬 더 관대하게 규율함으로써 법원이 재벌 범죄가 반복되고 있는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며 “대기업 이름을 따서 ‘공화국’으로 불리는 사례는 삼성이 유일하다. 막강한 자금과 정보력을 기반으로 한 뇌물 제공, 정경유착, 법치주의 훼손, 노조 파괴 등 각종 사회적 폐해를 낳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곽 위원은 삼성 편향 언론도 비판했다. 그는 “지난 9일 발표된 삼성 준법감시위 출범을 다룬 대다수 언론 기사는 ‘노조·승계 문제까지 성역은 없다’, ‘계열사 7곳 외부자 눈으로 감시’ 등 기사처럼 매우 호의적”이라고 평가한 뒤 “준법감시위가 내부 정보를 수집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 부회장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판결을 앞두고 실형을 면하기 위한 ‘이벤트성 기구’라는 비판을 담은 언론은 극소수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

곽 위원은 “이 부회장은 삼성에 치명적 타격을 줄 위험을 감수하고 뇌물을 제공했다”며 “이는 경영권 승계만 성공하면 수조원의 막대한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재벌 총수가 이런 검은 유혹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준법 경영은 ‘공염불’에 그칠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할 수 없도록 권한과 책임을 일치시키는 기업 지배구조 혁신이 요구된다. 재벌 봐주기는 재벌이 범죄를 반복하게 한다”고 우려했다.

채이배 의원도 “삼성준법감시위가 처음 설치됐을 때 언론은 삼성이 마치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긍정 보도를 쏟아냈다. 비판적 보도는 찾기 어려웠다”며 “파기환송심 정준영 부장판사가 감형 가능성을 시사했는데도 이를 심각히 받아들이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재판부 판단과 발언에 대한 제대로 된 언론 평가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은 파기환송심 재판부 판단을 비판했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소속 김종보 변호사는 “이른바 재판부가 말하는 ‘치료적 사법’은 아동학대, 약물중독, 성범죄, 가정폭력, 소년법 등 반복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개인을 재사회화하는 데 목적이 있는 형사법 논의”라며 “법치주의에서 중요한 건 인과응보다. 권력형 범죄는 응징 대상이지 치료 대상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앞서 설명한대로 재판부는 ‘미국의 연방양형기준 제8장’을 근거로 감형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김종보 변호사는 “이 조항은 개인이 아니라 회사에 대한 판결일 때 적용하는 기준이다. 회사를 처벌할 때 적용하는 양형 기준을 왜 이 재판에 적용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 뒤 “원문을 봐도 사후적으로 준법제도를 도입하면 과실 점수를 깎아준다는 규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에 비유하면, 외양간(준법감시위 발족)을 고친다고 왜 소 잡아간 도둑을 봐주려 하는가”라고 꼬집었다. 채 의원도 김 변호사 지적에 동의하며 “재판부가 기업인과 기업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 22일 오후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과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는 서울 서초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토론회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를 열었다. 채 의원은 삼성 비판 보도가 부족했던 언론을 비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 22일 오후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과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참여연대는 서울 서초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토론회 ‘삼성공화국으로의 회귀’를 열었다. 채 의원은 삼성 비판 보도가 부족했던 언론을 비판했다. 사진=김도연 기자.

토론자로 참여한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파기환송 재판부가 사회 취약 계층이 아닌 국내 최대 재벌 총수 재판에서 ‘치료’ 내지 ‘문제 해결’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을 우려한다”며 “재판부가 이 부회장을 훈계한 후 느닷없이 준법감시위 설치를 주문하고, 검찰마저 직제개편을 이유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수사가 지연되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이 부회장을 다시 감옥에 보내면 안 된다는 특명에 따른 기획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박영수 특검팀에서 선임특별수사관으로 활동한 전종원 변호사는 “준법감시제도 하나만으로 양형을 고려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정경유착에 의한 부정부패 범죄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가중적 양형 요소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변호사는 “준법감시위는 삼성에 의존하는 조직”이라며 “김지형 전 대법관을 준법감시위원장으로 선임했는데,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삼성 변호인으로 선임한 효과에 불과하다”며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지난해 8월 대법원은 뇌물죄 및 제3자 뇌물공여죄 등 혐의의 이 부회장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한 항소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판결을 보면 이 부회장이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와 비선 최순실씨에게 제공한 뇌물액은 86억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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