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안전을 악착같이 외면하는 정당과 한통속이 된 일부 언론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안전보다는 기업 이윤에 목을 맨다. 

2018년 12월 청년 노동자 김용균의 목숨값으로 그 어머니와 시민사회가 각고의 노력 끝에 얻어낸 산업안전보건법, 일명 김용균법이 지난 16일부터 시행됐다. 시행 전날 문화일보는 13면에 “김용균법 내일 시행… 현장선 ‘사업주 책임 광범위’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문화일보는 “법안의 해석이 모호하고 책임 범위도 넓어 범법자로 전락하는 사업주가 생길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우려의 주체는 물론 기업주다. 

조선일보도 이날 16면에 “김용균법 내세워… 민노총, ‘위험없는 외주’도 정규직 요구”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조선일보는 직고용을 요구하는 비정규직을 향해 현대제철 입장을 대변하며 “막무가내로 정규직 전환만 요구하니 답답하다”는 현대제철 관계자의 말을 인용했다. 

결국 이들 신문은 김용균법이 기업에 부담을 주고, 나아가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준다는 프레임을 씌웠다. 그 프레임은 상당 부분 국민들 머리속에 각인된다. 

▲ 故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등은 지난해 4월28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김용균씨 묘소 앞에서 중대채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 묘비와 추모조형물 제막식을 가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 故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 등은 지난해 4월28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김용균씨 묘소 앞에서 중대채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김씨 묘비와 추모조형물 제막식을 가졌다. 사진=김예리 기자

21일 오전에 나온 컨테이너 세척하던 20대 노동자가 ‘톨루엔 급성중독’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는데, 고용노동부가 해당 사업장에 과태료 369만원을 부과했다는 경향신문 기사엔 “과태료를 100배로 올려라, 백만원 단위가 기업에겐 돈이겠냐!”라는 댓글이 달렸다. 

이 기사엔 이밖에도 여러 댓글이 달렸다. “산재사고엔 사장을 형사처벌해 보세요. 아마 이런 사고 90%는 줄어들 겁니다”, “과태료 3억6900만원이면 보호장비 지급할걸”, “과태료가 안전장비값보다 싸니깐 이런 일이 일어나잖아요”, “과태료 369 게임하냐?”

전남 광양의 컨테이너 제조·청소업체 소속 송모 씨(28)가 지난달 16일 저녁 청소하던 탱크 컨테이너 안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송씨는 톨루엔을 걸레에 묻혀 내부에 남은 얼룩을 닦는 중이었다. 

쓰러진 20대 노동자를 발견한 과정도 웃프다. 송씨 어머니가 사고 당일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아 사업장을 방문해 회사 관계자와 함께 작업장을 확인하다가 쓰러진 아들을 발견했다. 성인인 직장인 아들의 안위를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게 나라일 순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오래된 습관처럼 솜망방이 처벌만 하고 있다. 틈만 나면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권 한쪽에선 노동자야 죽든 말든 기업에 조금이라도 손해가 되면 기를 쓰고 이 죽음의 행렬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친다.

탱크 안팎에 각각 1명씩 2인1조로 작업하다가 외부 청소하던 사람은 퇴근하고, 보호구 없이 탱크 안에서 일하던 송씨는 쓰러졌다. 

댓글은 고용노동부 여수지청이 현장조사 끝에 내린 ‘과태료’에도 분노했다. 지청은 밀폐공간 안전작업 조치 미실시, 작업환경측정 및 특수건강진단 미실시, 특별안전보건교육 미실시 등을 지적하면서 369만원을 부과했다. 

일하다 죽는 게 일상이 된 세상에서 ‘검찰 상갓집 소동’이 이틀째 언론의 머리기사를 채운다. 세월호 유족과 동조단식까지 했던 대선 후보가 대통령이 된지 3년이 다 돼 가도록 세월호 유가족들은 아직도 거리를 헤매고 있다. 수천명이 숨진 가습기 살균제 유족들도 마찬가지다. 

▲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지난 1월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국회 기자회견장(정론관)에서 무릎을 꿇고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특별법이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한 지난 1월9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국회 기자회견장(정론관)에서 무릎을 꿇고 법안 통과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김용욱 기자

정치권 시계는 모든 게 4·15 총선 뒤로 미뤄져 있다. 이당저당에서 하루에도 수십명씩 인재영입을 앞다퉈 발표하며 국민들 눈도장을 찍기에 바쁘다. 선거 의제는 초판부터 야당심판 대 정권심판으로 결정난 듯 보인다. 

어느 정당도 대변해주지 않는 진짜 국민들은 정치권을 향해 ‘과태료 369 게임하냐?’고 비웃고 있다. 이 비웃음을 진정 부끄러워 하는 정당이라야 국민 마음을 얻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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