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가 유료방송 인수·합병을 승인하면서 유료방송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개편 과정에서 노동자 고용안정성과 노동안전 문제 우려도 나온다. 통신 중심의 시장 변화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유료방송 업계의 현안을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승리를 위해~ 승리를 위해~” 지난 10일 오전 인천 계양1동의 한 전신주 위에서 록음악 벨이 울렸다. “어, 너 먼저 밥 먹어. 이따 전화 줄게. 지금 전주야.” SK브로드밴드 홈앤서비스 마크가 적힌 사다리 위에 올라선 장연의씨(47)가 전화를 받고선 곧바로 끊었다. 주머니에 넣고 양손으로 작업하던 중 다시 록음악이 울렸다. 장씨는 이번엔 벨이 울리도록 내버려뒀다. 작업하다 나온 잘린 케이블과 비닐 등 부자재가 3m 높이에서 떨어졌다. “잠시도 뭘 쥐고 일할 수가 없어요. 잠깐 긴장을 풀 때 눈 깜짝하면 사고니까요.” 장씨가 내려오기 위해 벨트를 푼 사이 사다리가 한 번 크게 휘청였다.

장씨는 2017년 7월 ‘정규직’이 됐다. 국내 유료방송시장 2위인 SK브로드밴드가 자회사를 설립해 SKB 인터넷·IPTV 설치수리 노동자들을 고용하면서다. 장씨를 비롯한 설치 노동자들은 SKB 재하청 소사장과 개인사업자 계약을 맺고 일했다. 그러다 2014년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던 중 계약 만료로 해고됐고, 2015년 2월 LG유플러스 하청업체 노동자 강세웅씨와 전원고용승계와 재하도급 금지를 요구하며 서울중앙우체국 위 고공에 올랐다. 이 때 합의로 SKB 설치수리 노동자들은 하청업체 소속 간접고용으로 일하다, 2017년 5월 자회사 정직원으로 전환됐다.

▲전주 추락사고는 작업을 마친 뒤 안전벨트를 풀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가장 자주 일어난다. 장씨가 사다리를 타고 전주에 올라 안전벨트에 기대 인터넷 설치수리 작업 중이다. 사진=김예리 기자
▲전주 추락사고는 작업을 마친 뒤 안전벨트를 풀고 내려오는 과정에서 가장 자주 일어난다. SK브로드밴드 인터넷·IPTV 설치·수리기사 장연의씨(47)가 사다리를 타고 전주에 올라 안전벨트에 기대 인터넷 설치수리 작업 중이다. 사진=김예리 기자
▲ 장연의씨가 고프로가 달린 헬멧을 쓰고 전신주 작업을 위해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암벽등반하듯 전주에 안전벨트 고리를 채웠다가 푼다. 고리를 잘못 채우면 낙상 사고가 나기도 한다. 끝까지 오른 뒤 그 위 (화면 속) 단자함을 밟고 올라서는데 단자함이 흔들렸다. 영상편집=금준경 기자
▲ 장연의씨가 고프로가 달린 헬멧을 쓰고 전신주 작업을 위해 사다리를 오르고 있다. 한 걸음 오를 때마다 암벽등반하듯 전주에 안전벨트 고리를 채웠다가 푼다. 고리를 잘못 채우면 낙상 사고가 나기도 한다. 끝까지 오른 뒤 그 위 (화면 속) 단자함을 밟고 올라서는데 단자함이 흔들렸다. 영상편집=금준경 기자

정규직 돼도 영업·실적 줄세우기 여전

장씨는 실적에 따른 줄세우기가 여전하다고 했다. 219만원 고정급여에 55포인트를 채우면 실적 수당을 받는다. SKB 홈앤서비스 인천계양센터에선 매일 9시 회의를 열어 고객만족도 점수를 공지한다. 점수 현황은 업무 앱에도 떠 있다. ‘보통’인 87점을 받으면 붉은색의 경고 표시가 뜬다. “나는 해피콜 점수를 잘 못 받아요. 피씨 연결해 달라거나 이런 무리한 요구를 받아주지 않고 거절하니까요.” 한편 예약신청이 들어오면, 가입자가 원하는 날짜에 상관없이 당일 처리해야 한다. 장씨는 “직접 불이익은 없지만 회의때마다 묵시적인 압력이 들어온다”고 했다.

오전 빈 시간을 이용해 대화하던 중 장씨 핸드폰 업무 단체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영업실적을 비교하는 ‘빙고’ 이벤트 메시지였다. 빙고 칸마다 기사들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다. 기사가 가입자를 새 상품에 가입시키면 그의 칸 표시가 바뀌고, 한 줄 빙고를 완성한 기사들은 성공수당 격의 사은품을 타 가는 방식이다. “이게 정말 사람을 미치게 해요. 본 업무도 아니고 영업 직원이 따로 있는데, 저처럼 안 하면 동료 눈치를 보게 돼요.”

▲장씨는 고객센터가 업무용 앱으로 당일예약 변동과 영업·고객만족 실적을 상시 고지한다고 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장연의씨는 고객센터가 업무용 앱으로 당일예약 변동과 영업·고객만족 실적을 상시 고지한다고 했다. 사진=금준경 기자

오늘 일정은 11시에 하나, 2시에 하나 잡혔다. 추가로 당일 예약이 잡힐 수도 있다. 장씨는 시간에 맞춰 회사에서 지급한 2인승 차량을 타고 고객의 2층 단독주택에 다다랐다. 장씨는 고객의 집 옥상, 옆 집 옥상, 뒷집 옥상을 오르내리며 이리저리 살폈다. 집마다 설치된 사다리가 허술해 보였지만 장씨는 망설이지 않고 탔다. 2층에서 옥상에 걸친 사다리를 후들거리며 타려니 장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전 관람차도 못타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작업할 때 절대 아래를 안 봐요. 보면 작업을 못해요.”

직고용 되니 안전장구 지급 

성큼성큼 지상에 내려온 장씨는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객의 집에 선을 연결할 ‘탭’이 없어 먼저 망 공사를 거쳐야 한다고 했다. 고객에게 “며칠 뒤 공사를 담당한 기사가 찾아올 것”이라고 안내한 뒤 집을 나섰다. 다음 일정은 하나뿐이다. “요즘 일감이 뜸해요. 인터넷 설치가 이사철에 많다보니 부동산 경기도 타고, 계절도 타요. 통신시장에서 새 일감이 전체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기도 하고요.”

▲장씨가 사다리와 UTP선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가입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장씨가 사다리와 UTP선 등 작업에 필요한 장비를 들고 가입자의 집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장씨가 빌라 옥상에서 늘어뜨린 인터넷선을 가내로 들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장씨가 빌라 옥상에서 늘어뜨린 인터넷선을 가내로 들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SKB 자회사의 직원이 된 뒤 가장 큰 차이는 고용안정이다. 장씨는 이전엔 SKB와 계약한 센터 아래 재하청을 받은 소사장과 1년 계약을 맺고 일했다. 센터가 자의로 일감을 안 주고 계약 연장하지 않으면 그대로 해고됐다. 장씨가 2014년 희망연대노조에 가입한 뒤 겪었던 일이다. 현재는 62세까지 보장이 된다. 

회사가 안전에 신경쓰는 정도도 하늘과 땅 차이다. 예전엔 안전벨트부터 사다리, 케이블과 모뎀, 차량까지 자비를 들였다. “도급일 땐 사장이 시중 3만원에 파는 걸 못 사게 하고, 회사 걸 7만원에 팔았어요. 중고를 잃어버려도 새 것으로 가격을 받고.” 이제는 회사가 지급한다. “소속 직원이 매일같이 사고가 나면 감당이 안 되니 직접 하는거죠. 이전까진 모두 개인과실이었고요.” 본사와 센터에서 각각 기사들이 안전장구를 착용하는지 감독도 나온다. 처음으로 연차휴가도 생겼지만 쓰기 어려운 분위기다. 장씨는 자신만 휴가를 챙긴다고 했다.

“SK직원 느낌은 없어”

장씨는 정규직이지만 스스로 “SK 직원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입자 집에 SK 나비모양 마크를 달고 찾아가면 가입자들이 ‘SK 직원이냐’ ‘좋겠다’고 해요. 개인도급으로 일할 땐 부끄러워서 얼버무렸는데, 이제는 SKB 아니고 자회사 직원이라고 얘기해요. 전 여전히 하청 직원이에요. 홈앤서비스는 인력만 모아놓은 자회사니까요. 실적제 위주 시스템도 달라진 게 없고요.”

5시가 되기 직전, 6시 이후 예약이 갑작스럽게 잡혔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질 참이다. 그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오전 10시부터 밤 7시까지, 한 시간 늦게 시작해 한 시간 늦게 일을 마친다. 어둠 속에서 하는 작업은 훨씬 위험하다. 그는 ‘이번엔 간단한 작업이라 괜찮다’며 돌아와서 어둠 속 아파트 옥상 작업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장씨가 고프로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쓰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 설치 작업 시범을 보이고 있다. 15층 높이 아파트에서 설치 대상 집까지 인터넷 선을 늘어뜨린 다음 실내로 들어가 연결 작업을 한다. 고공에서 하는 작업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구식 아파트 가운데 경사 진 지붕 형식의 아파트에서는 난간 없는 지붕 위에서 작업해야 한다. 영상편집=금준경 기자
▲장씨가 고프로 카메라가 달린 헬멧을 쓰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 설치 작업 시범을 보이고 있다. 15층 높이 아파트에서 설치 대상 집까지 인터넷 선을 늘어뜨린 다음 실내로 들어가 연결 작업을 한다. 고공에서 하는 작업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구식 아파트 가운데 경사 진 지붕 형식의 아파트에서는 난간 없는 지붕 위에서 작업해야 한다. 영상편집=금준경 기자
▲장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외벽으로 인터넷 선을 드리우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장씨가 아파트 옥상에서 외벽으로 인터넷 선을 드리우고 있다. 사진=금준경 기자

저녁 7시30분 한 아파트 앞 주차장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헬멧에 고무줄 랜턴을 달아 보였다. 불빛이 비추는 반경은 코앞 지름 70cm 정도였다. 설치 작업을 해보이며 인터넷선을 따라 돌아다니던 중 ‘우직’ 소리가 났다. 전날 비가 내린 뒤 표면이 언 웅덩이를 밟아 신발 밑창이 젖었다. 장씨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동안 3차례 넘어질 뻔했다. 

장씨는 옥상에서 내려와 여전히 “안전 문제가 제일 크다”고 강조했다. 작업중지권과 2인1조 체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실적제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작업거부하면 동료가 해야 하니까, 미안해서라도 내가 해야 돼요. 일단 일몰 뒤와 폭우 강풍이 일 땐 업무 중단하도록 법으로 박아놔야 해요. 옥상 지붕에 매달려 간신히 일하는데, 어둡거나 미끄러울 땐 2인1조도 소용 없어요.” 노사는 일몰 뒤와 눈비가 올 때는 작업을 중단하도록 한다는 규정에 합의했지만 콜센터는 6시 이후에도, 눈비가 와도 예약을 배정하고 있다.

▲장씨가 오후 7시30분께 아파트 위에서 야간 작업을 해보이고 있다. 확보되는 시야는 코앞 70cm 정도다.
▲장씨가 오후 7시30분께 아파트 위에서 야간 작업을 해보이고 있다. 확보되는 시야는 코앞 70cm 정도다.

※ 취재에 민주노총 더불어사는희망연대노동조합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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