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인 DNA 채취 절차의 위헌성을 해소하려고 개정한 DNA법이 여전히 인권침해 요소를 안고 있다. 법무부가 21일부터 관련 법이 시행된다고 밝혔지만, 앞으로도 추가 개정 요구가 잇따를 전망이다.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DNA법(디엔에이신원확인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DNA 채취영장 발부 시 채취 대상자에게 ‘서면’ 의견진술 기회를 부여하고 관련 처분에 불복절차를 마련한 내용이 골자다. 만일 불복절차로 DNA 채취 처분 취소결정이 확정되면 수집된 DNA신원확인정보를 삭제한다.

10개 노동·인권·법률 단체는 지난 16일 “DNA 채취영장에 의견진술과 불복절차 마련은 헌법재판소는 물론 학계가 지적해 온 디엔에이법의 인권침해를 일부 개선했다. 이는 용산 철거민, 쌍차 노동자, 노점상 활동가, KEC 파업노동자 등 부당한 DNA 채취와 신원확인정보 보관에 항의해 온 이들의 싸움이 이루어낸 성과”라면서도 “그러나 개정 DNA법이 헌재 결정 취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  지난 2014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쌍용차 노동자·용산 철거민 DNA 채취사건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위헌심판을 제청했던 원고측 관계자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난 2014년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쌍용차 노동자·용산 철거민 DNA 채취사건 관련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위헌심판을 제청했던 원고측 관계자들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선 DNA법에 추가된 의견진술 기회와 불복 절차가 개인 권리를 온전히 보장하지 못한다는 평가다. 이들은 “당사자의 의견진술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서는 ‘구술’을 원칙으로 하되 불가피한 경우 ‘서면’으로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함에도, 이번 개정은 ‘서면’을 원칙으로 하며 그마저도 수사기관의 ‘소명자료’로 대체 할 수 있게 했다”며 “이는 사실상 영장발부 과정에서의 법원의 통제를 형해화 함은 물론 당사자의 의견진술 기회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DNA 채취로부터 7일 이내로 규정한 불복절차 기간도 짧다고 지적됐다.

검사가 DNA 채취 영장을 청구하거나 관할 지방법원이 이를 심사하는 요건을 규정하지 않은 점도 논란이다. 재범 가능성이 없는 이들에 대해서도 DNA 채취가 무분별하게 허용되는 기존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범 위험성’을 채취 요건으로 규정했어야 했다. 또 재범 위험성이 없는 경우 대상자 사망시까지 반영구적으로 보관할 것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보관과 삭제 기한을 정하는 것이 바람직했다”며 “헌법재판소가 이미 소수의견에서 채취 요건 및 보관 기간의 문제를 지적했었지만 국회는 이를 모두 외면했다”고 비판했다.

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언론과 국회가 경찰 입장만을 대변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법은 DNA신원확인정보데이터베이스에 대한 법률로서 일반 용의자에 대한 디엔에이 채취와 무관하고 이 법에 따른 채취 또한 대부분 영장에 의하지 않고 대상자의 동의를 강요하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국회가 ‘DNA 채취 올스톱’이라는 경찰의 호들갑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인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국회가 지난해 말까지 개정해야 하는 DNA법 입법을 추진하지 않으면서 이어진 “이춘재 잡은 ‘DNA법’ 내년부터 없어지나”(세계일보), “이춘재 잡은 DNA법, 20일 뒤면 수명 다한다”(서울경제), “DNA법 사망”(매일경제), “수사잡음 생길라…DNA 채취 ‘올스톱’ 우려에 내부단속 나선 경찰” 등 보도가 합리적인 개정방향보다 수사기관 중심적 시각을 앞세웠다는 것이다.

노동·인권 단체들은 “지금도 국가는 헌법불합치 결정의 청구인이었던 노동자의 DNA 정보 삭제를 거부하며 고통을 주고 있다. 앞으로 국가가 또다시 철거민, 노동자, 노점상, 집회시위 참여자에 대해 DNA 채취를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며 “경찰·검찰이 부당한 DNA 채취와 보관을 즉각 중단하고, 부당하게 보관 중인 DNA신원확인정보를 삭제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국회는 수사기관들의 일방적인 주장에 굴하지 않고 DNA법을 적극 재검토해 인권침해 조항들을 개정할 의무를 여전히 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검사가 채취대상자에게 거부권을 고지하고 서면동의를 받으면 DNA 채취가 가능하도록 한 기존 DNA법은 노사분규나 대정부시위 참여자들을 탄압하는 데 악용됐다고 비판받아왔다. 앞선 헌법소원도 노사 분규 중 건조물침입 등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 노점 철거 항의 집회를 하다 주거침입 등으로 유죄를 선고 받은 민주노점상전국연합 구성원들이 DNA시료를 채취당한 부당함을 주장하며 제기한 것이다. 이 밖에 △2011년 용산참사 유족과 쌍용차 노동조합원 △2013년 한진중공업 구조조정을 막으려 고공농성한 김진숙씨 △2015년 문아무개 장애인단체 활동가, 한국GM 노조원 등이 DNA 시료 채취를 요구받은 바 있다.

헌재는 지난 2018년 8월 ‘DNA감식시료 채취 영장’ 발부 절차를 규정한 법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지난해 말까지 국회가 관련법을 개정하라고 밝혔다. 당시 헌재는 △영장 발부 과정에서 채취대상자의 의견진술 기회가 절차적으로 보장되지 않고 △향후 영장 발부에 불복하거나 위법성 확인을 청구할 구제절차가 마련돼있지 않아 △채취대상자의 재판청구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므로 침해의 최소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밝혔다. 국회는 개정시한을 넘긴 지난달 9일 DNA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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