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LG헬로비전 고객센터 간접고용 노동자 김도빈씨가 사망한 이후, 현장 노동안전실태조사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지만 원청인 LG헬로비전이 응하지 않았다. 이에 더불어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지부(이하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지부)와 노동건강연대가 본사 참여 없이 긴급실태조사를 해 발표했다.

21일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지부와 노동건강연대가 서울 국회의원회관에서 발표한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설치‧A/S 등의 업무 1건을 이동시간 포함 30분~40분 안에 끝내야 했다. 악천후에도 전봇대 등에 올라가 작업을 하는 것으로도 드러났다. 좁은 업무편성간격 때문에 1일 평균 방문건수가 10건을 넘기도 했다.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설치, AS, 철거 등의 근무를 한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지부와 노동건강연대가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전국 34개 업체 중 17개 업체의 노동자 187명을 10일부터 14일까지 설문조사한 결과, 평균임금은 229.4만원으로 평균 연령 41세, 평균 경력 11년차였다.

이들 업무의 열악함은 설치나 A/S 등 업무 한 건 편성 시간이 짧고, 휴식시간과 공간이 거의 없으며, 자연재해 시에도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것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났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노동현장 모습. 휴게실이 없어 상가 복도에서 대기하는 모습(왼쪽)과 높은 곳에서 설치 작업 등을 하는 모습(오른쪽). 사진출처=LG헬로비전 비정규직 지부.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의 노동현장 모습. 휴게실이 없어 상가 복도에서 대기하는 모습(왼쪽)과 높은 곳에서 설치나 수리 작업 등을 하는 모습(오른쪽). 사진출처=LG헬로비전 비정규직 지부.

실태조사에 참여한 187명 중 157명(84%)이 업무 편성 시간이 40분 미만이라고 응답했다. 그중 30명(7%)는 30분 미만의 간격도 있었다고 답했다. 휴게시간을 제외한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8시간 초과, 10시간 이하라는 응답이 61.5%(115명)으로 가장 많았다.

평균 휴게시간은 1시간 미만이 73.3%(137명)이 가장 많았고, 30분 미만이라는 응답도 23%(43명)이었다. 휴게시설이 있는 노동자는 11.8%(22)명에 그쳤고 88.2%(165명)의 노동자는 휴게공간이 따로 없다고 답했다.

LG헬로비전의 한 노동자(5년차 설치‧A/S업무)는 “사측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을 휴식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업무를 처리하고 휴식 등의 시간 없이 계속해서 이동하고 또 업무를 처리한다”고 말했다.

자연재해가 있을 때도 작업을 중지하지 않는 사례도 많았다. 지진, 폭설, 태풍, 우천, 강풍 등 산업재해가 우려되는 자연재해가 있을 때 작업을 중지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66.3%(124명)가 작업중지 없이 평상시처럼 작업한다고 응답했다.

2m이상 고소작업(전봇대, 옥상, 난간, 담벼락 등 높은 곳에서 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안전벨트를 걸 수 없을 경우 어떻게 하는지 묻는 질문에도 그냥 작업한다는 응답이 60.4%(113명)에 달했다. 또한 이렇게 안전벨트 없이 고소작업을 해야 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냐는 질문에 매일같이 있다는 응답도 27.0%(38명)이었다.

설문에 참여한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 중 90.9%(170명)가 자신의 노동 환경이 안전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들에게 자신의 노동 환경을 안전하게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를 세 가지 꼽아달라고 요청했을 때, 정규직 전환(23.9%)이 가장 높은 비중으로 나타났고, 업무당 처리 시간 증가(21.3%)와 임금 인상(17.9%)이 그 뒤를 이었다.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 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 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내용 중 일부. 

이만재 희망연대노조 조직국장은 “인력감축으로 인해 남은 노동자들의 업무량이 증가했다”며 “LG헬로비전에는 36개 외주업체 소속 약 2200명의 고객센터 노동자들이 종사하고 있었지만 SK텔레콤과의 합병 논란 이후, 최근 3년간 경력자 사직 압박, 업무 멀티화 등을 통해 절반의 노동자들이 감원돼 현재 약 1100명의 노동자들이 남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12월30일, 작업 중 쓰러져 사망한 해운대서부고객센터의 김도빈 조합원의 12월 작업처리건수를 보면 1일 평균 11집이나 방문해 작업을 처리하면서 식사를 빵과 우유로 대신할 정도로 과도한 업무를 수행했다”며 “실제로 LG헬로비전 고객센터의 업무편성은 다른 유료방송 고객센터와 비교해보았을 때에도 과도한 편”이라고 전했다.

이 조직국장은 “2017년에 SK브로드밴드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외주업체 노동자들을 직접고용하면서 설립된 홈앤서비스의 경우, ‘서비스매니저 표준업무 가이드’를 통해 표준작업시간이 설치와 AS업무에 1시간(DPS의 경우 1시간15분)을 배정하도록 권고했다”며 “이에 따르면 설치 기사는 하루에 6개, AS 기사는 하루에 7개의 작업을 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즉 LG헬로비전 고객센터 노동자들은 동종업계 다른 회사보다 2배 이상 빠르게 작업을 완료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21일 서울 국회에서 노동건강연대와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전 비정규직 지부 등이 주최한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 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21일 서울 국회에서 노동건강연대와 희망연대노조 LG헬로비전 비정규직 지부 등이 주최한 LG헬로비전 고객센터 작업환경, 노동안전 긴급 실태조사 결과 발표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정민경 기자.

박상빈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정규직 전환이 노동 환경을 안전하게 하는 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요인은 아니지만, 심층 인터뷰를 통해 봤을 때 노동자들은 하청업체를 통한 간접고용이라는 현실이 자신들의 노동환경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것이라 인식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박 활동가는 “노동자의 노동환경을 지속적으로 위험하게 만드는 근원인 원·하청 구조에서 발생하는 중간착취를 끊지 않는 이상, 적은 인원으로 바쁘게 움직이며 전봇대에 오르는 LG헬로비전 노동자들의 모습을 멈추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LG헬로비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헬로비전의 새로운 주인인 LG가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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