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보고서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을 하는 여성들은 강간 위협을 당했다. (보고서는) 소셜미디어에서 자해 콘텐츠를 본 영국 10대의 자살, 여성 복장을 한 자신의 비디오를 게시한 후 괴롭힘을 당한 인도인 등을 언급하며, 18세 미만의 거의 3분의1이 최근 ‘온라인에서 폭력적이거나 증오적인 접촉 또는 행동’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 또한 언급했다.” (김숙희 변호사, 경실련 시민권익센터 운영위원장)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 플랫폼 대중화로 혐오표현 폐해가 쉽게 확산되면서 국가적 차원의 책임을 더 이상 미뤄둬선 안 된다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숙희 운영위원장은 21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에서 열린 ‘디지털 상호의존 시대, 한국의 새로운 도전과제 진단’ 토론회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지난해 6월 UN 고위급 패널 보고서(디지털 상호의존 시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경실련과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공동 주최했다.

김숙희 위원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바람직한 현상이 나타나는 한편 서로 다른 가치에 혐오를 드러내는 이중적 현상이 목견된다”며 “외국인 근로자, 다문화 가정, 여성운동, 동성애자, 성전환자, 장애인, 민주화운동, 특정지역, 특정종교 등에 대한 혐오표현이 범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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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 실현의 핵심가치인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은 바람직함에도 이주노동자, 결혼이주여성과 그 자녀들, 여성,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들 또는 동성애자들에 조롱과 경멸과 같은 차별적 혐오 표현은 특정 대상에 혐오와 적대 및 차별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 사람이 속한 집단 전체에 혐오와 적대 및 차별의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라서 개인 인격권 침해 뿐만 아니라 평등권도 침해해 무제한 보장될 수만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학교 구성원의 차별적 언행을 금지하는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 위헌확인청구를 기각한 사례를 들었다. 헌재는 조례 제5조3항이 금지하는 차별·혐오 표현은 △자유로운 의견 교환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허용되는 표현이 아니고 △타인의 인권 침해를 인식했거나 인권 침해 가능성이 있어 그러한 결과가 발생하는 표현으로 △민주주의 의사형성 보호를 위해 제한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해당 조항은 학교 구성원이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신분, 출신 지역·국가·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사유로 타인의 인권을 침해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김 위원장은 “혐오표현이 갖는 심각성을 고려할 때 국가가 아무런 개입을 취하지 않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은 “국가가 불개입으로 일관하는 것은 혐오표현을 ‘허용’하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줌으로써 혐오표현의 피해자에 대한 추가적인 피해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사회에서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 한 ‘불개입’은 선택지가 될 수 없을 것”이라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온라인에서의 인권이 오프라인에서와 마찬가지로 보호돼야 한다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다. UN인권위원회는 지난 2012년과 2014년, 2016년에 걸쳐 인터넷상 인권의 촉진·보호 및 향유에 관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만 2016년 결의안의 경우 인터넷에서의 접근성 격차 해소와 더불어 국가가 개입해 인권을 침해하는 행태는 금지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김 위원장은 “혐오표현에 대한 조치는 국제법상 요구되는 것이며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부분 어떤 식으로든 조치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며 “이제 논점은 개입이나 불개입이 아니라 여러 규제 장치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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