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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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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진핑의 고전 리더십 (51) ]

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안득광하천만간, 대비천하한사구환안.

어떻게 하면 천만 칸의 넓은 집을 지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을 감싸 기뻐하는 얼굴을 하게 할 수 있을까.

이 글귀는 시진핑이 ‘착실하게 일하면서 앞장 서 나가자-명절시장 공급과 물가상황을 점검하면서 연설’할 때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초가집은 가을바람에 부서지고(茅屋爲秋風所破歌)>에서 따왔다. 시진핑은 민생개선은 종착역이 없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작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군중은 일하는 출발점이자 머물 곳이라고 말했다. 만약 마음으로 군중과 연결되고 정으로 군중을 견인하지 못하면 발전이 무슨 가치가 있으며, 개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른바 민생은 민심과 연결되고, 민심은 국운과 관계된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또 공공복무 균등화를 추진해 생태환경을 보호하고, 다시 뜻을 세워 공평제도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윈난성 시찰하는 시진핑. ⓒ 연합뉴스
▲ 윈난성 시찰하는 시진핑. ⓒ 연합뉴스

시진핑의 이런 일련의 발언은 전면 발전의 ‘대 민생관’을 형성하기 위한 조처다. 두보 시의 ‘천하의 가난한 선비를 감싸며(大庇天下寒士)’의 문학적 경지는 시진핑의 포부와 집권의 관심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기실 이런 관점은 인민의 공복인 지도간부들이 마땅히 군중의 일상생활에 긴밀한 관심을 기우려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원전은 다음과 같다.

八月秋高風怒號, 卷我屋上三重茅. 茅飛渡江洒江郊, 高者掛罥長林梢. 下者飄轉沉塘坳. 南村羣童欺我老無力, 忍能對面爲盜賊, 公然抱茅入竹去, 脣燋口燥呼不得. 歸去倚仗自歎息, 我頃風定雲黑色, 秋天漠漠向昏黑. 布衾多年冷似, 嬌兒惡臥踏里裂. 牀牀屋漏無幹處, 雨脚如麻未斷絶. 自經喪亂少睡眠, 長夜霑濕何由徹. 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 風雨不動安如山. 嗚呼! 何時眼前突兀見此屋, 吾廬獨破受凍死亦足.
팔월 가을 하늘은 높고 바람이 세차 띠풀로 이은 지붕 세 겹 이엉을 말아 놓았네. 초가집 이엉은 강 건너로 날아가 강기슭에 널브러지고, 높은 것은 무성한 숲 긴 나뭇가지 끝에 걸렸구나. 낮은 것은 땅바닥에 구르다가 웅덩이에 빠졌다. 남촌 아이 녀석들은 내가 늙어 힘없음을 깔보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도둑질을 하네. 드러내놓고 띠풀을 안고 대숲으로 사라지건만 입술이 타고 입은 말라 소리도 지를 수 없구나. 집에 돌아와 지팡이에 기대어 스스로 탄식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은 자고 검은 구름이 몰려들어 가을 하늘은 아득히 어둠이 짙어간다. 무명이불은 오래되어 차갑기가 쇠붙이 같고, 어린 것들 사나운 잠버릇이 이불속을 찢어버리네. 잠자리마다 비가 새어 마른 곳이 없고, 삼대 같은 줄기찬 빗발은 그치지 않는구나. 난리를 겪은 뒤로 잠이 적어졌으니 긴긴 밤을 비에 젖어 어찌 새울까. 어떻게 하면 천만 칸의 넓은 집을 지어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을 감싸 기뻐하는 얼굴을 하게 할 수 있을까. 비바람에도 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편안함을 누리고 싶어라. 아! 어느 때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고래등같은 집을 볼 수 있다면 내 집이 무너져 얼어 죽더라도 또한 만족하리라.

성당盛唐 말기 시인인 두보는 자가 자미子美이며 시성詩聖으로 불리고 있다. 두보는 주로 민중의 삶과 고통을 노래한 민중적 유가儒家 시인이다. 1456 수의 시가 전해온다. 고시古詩 형태의 이 시는 당 숙종 상원 2년 (761년) 8월에 지었다. 두보는 ‘안사安史(안록산·사사명)의 난’을 겪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다가 쓰촨성 청두(성도成都) 서쪽 교외의 완화계浣花溪로 옮겨와 초가집을 엮고 살았다. 오늘날의 두보초당杜甫草堂이다. 그런대 생각지도 않게 노호하는 가을바람이 초가집의 띠풀을 말아가 버렸다. 밤에 폭풍우가 또 두보의 집을 엄습해 집에 물이 새어 침상이 젖었다. 운세가 좋지 않은데다 노쇠하고 가난한 시인은 만감이 교차해 붓을 들었다.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불후의 시를 지은 것이다. 

▲ 두보(杜甫). 사진=위키백과
▲ 두보(杜甫). 사진=위키백과

이 시에서 가장 마음을 뒤흔드는 구절은 ‘어떻게 하면 천만 칸의 넓은 집을 지어 가난한 선비들을 감싸 기뻐하는 얼굴을 하게 할 수 있을까(安得廣廈千萬間, 大庇天下寒士俱歡顔)’를 들 수 있다. 시인의 선량한 바람과 넓고 큰 포부가 잘 드러나고 있다. 여기서 ‘비’는 감싸다, 비호하다 이고, ‘한사寒士’는 가난하고 빈한한 선비를 말한다. 이 시는 아름다운 이상과 냉혹한 현실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현상을 표현했다. 두보는 ‘잠자리마다 비가 새어 마른 곳이 없고’, ‘긴긴 밤을 비에 젖어 어찌 새울까’ 고뇌하면서도 슬프게 탄식하지 않고 남을 헤아린다. 시인은 ‘천하의 가난한 선비’들이 모두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이 해소된다면 자신이 얼어 죽더라도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차라리 자신이 고통스럽더라도 민중들에게 도움이 되는 세상을 구제하는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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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1-25 22:3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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