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배드파더스 자원봉사자 무죄 판결로 양육비를 못 받는 한부모 목소리가 공감을 받고 있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무책임한 이들을 제재할 방법도 하루 속히 만들어야 하지만 양육비를 받는다고 양육문제가 해결되진 않는다. 그동안 한국사회가 양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미루며 양육비와 한부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법원이 정한 양육비를 받더라도 터무니없이 양육비가 부족한 현실과 협소하게 규정한 양육비 개념을 짚고 선진국에선 어떻게 양육비를 정의했는지, 한부모의 양육을 방치한데 정치권 뿐 아니라 언론의 책임도 있진 않은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 - 편집자주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배드파더스(Bad Fathers, 나쁜 아빠들)’ 자원봉사자 구본창씨가 지난 15일 무죄를 받았다. 배드파더스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의 신상을 공개해 온 사이트다. 구씨는 법원에서 “한국에 양육비 피해아동이 100만이나 된다”며 “양육비는 단순 금전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생존과 직결한 중요한 문제”라고 호소했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가족실태조사’를 보면 한부모 10명 중 8명(78.8%)이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미혼모의 양육 및 자립실태 조사결과’를 보면 비혼모가 아이 아버지에게 양육비를 받는 경우는 4.7%에 불과하다. 양육을 담당하지만 양육비조차 받지 못하는 양육자(주로 여성)가 ‘배드파더스’에 제보해 신상을 공개하는 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이번 ‘배드파더스’ 재판으로 다시 양육비 지급문제가 주목받았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 중 양육비를 국가가 먼저 양육자에게 지급하고 양육비채무자에게 받아내는 ‘양육비 대지급제도’가 소환됐다. 20대 국회에서 양육비 지급 이행강화 법안을 9건이나 발의했지만 한 건도 통과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 양육비를 주지 않는 한부모(주로 아빠)의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 '배드파더스' 갈무리. 배드파더스에 따르면 이 사이트를 통해 119명의 양육비 미지급 사건을 해결했다.
▲ 양육비를 주지 않는 한부모(주로 아빠)의 신상을 공개한 사이트 '배드파더스' 갈무리. 배드파더스에 따르면 이 사이트를 통해 119명의 양육비 미지급 사건을 해결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양육비 대지급제도는 무려 17대 국회 때부터 나온 법안이다. 양육비를 주지 않는 이들에게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출국을 금지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국회에 묶여 있다. 지난 2018년 청와대 국민청원에 히트앤드런방지법(양육비 대지급제) 제정 요청에 20만명 넘는 국민이 서명했다. 양육비 지급을 압박할 다양한 정책은 절실한 문제다.

그럼 양육비를 지급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2018년 한부모가족실태조사를 보면 양육비 채권이 있는 한부모 중 실제 정기지급 받은 금액은 월 56만원이었다. 지난해 기준 사교육을 받는 학생의 월평균 사교육비가 39만9000원이므로 ‘제때 밥 먹여 학원보내기’도 불가능한 금액이다. 양육비를 못 받는 현실이 심각해 뒷전으로 밀렸지만 양육비 산정도 개선이 필요하다.   

미디어오늘은 법원에서 책정한 양육비를 받으며 혼자 자녀를 키우는 서울의 한 대학교수 A씨를 만났다. A씨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고학력·전문직 여성이다. 사회적으로 A씨는 복지수혜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누구도 그의 양육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가 ‘절대빈곤’ 상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친정의 지원금이 없었다면 정말 내 삶이 비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9년 A씨는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은 양육비를 주지 않겠다고 버텼고, 결국 이혼소송 끝에 법원에서 양육비 50만원을 책정했다. A씨는 “남편이 집까지 있었는데 사업을 타인 명의로 해 소득이 안 잡혀 낮은 액수가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에서 책정한 양육비니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현행법에는 양육비 책정 기준이 없다. 서울가정법원에서 부모합산소득을 고려해 만든 ‘양육비산정기준표’가 있지만 양형기준같은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안희철 변호사(법무법인 양재)는 미디어오늘에 “양육비산정기준표는 강제성이 없고 협의할 때 참고할 뿐”이라며 “가장 중요한 건 당사자 합의”라고 말했다. 비양육자가 양육비 지급에 소극적일 경우 양육자의 요구나 현실을 반영하기 힘든 구조다. 

▲ 2017년 서울가정법원이 발표한 '양육비산정기준표'
▲ 2017년 서울가정법원이 발표한 '양육비산정기준표'

A씨는 “이혼 당시 남편이 양육비도 거부하고 재산분할에도 협조하지 않아(재산은닉) 남편 태도에 화가 났다. 어차피 내가 애를 키울 생각이었지만 나도 강하게 나가려고 법원에 ‘차라리 내가 양육비내고 안 키우겠다’고 하려고 했다. 변호사가 ‘엄마가 그렇게 나오면 판사가 어떻게 생각하겠냐. 불리하다’고 말하더라. 결국 변호사 의견대로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후 지방도시 여러 곳을 거쳐 서울로 직장을 옮기며 육아를 병행했다. 정기적으로 일정 수의 논문을 써내지 않으면 재임용에서 탈락하므로 승진준비와 육아는 둘 다 1순위였다. A씨는 “한국 부모들이 핏줄을 되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제 이혼해보니 자기 핏줄이 어떻게 사는지 들여다보지도 않는 사람이 많더라”라며 “결국 양육하지 않는 사람은 돈 부담도 없고, 시간도 아끼고, 양육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가사노동자나 베이비시터를 고용해도 그 역할과 노동시간이 정해져 있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생겨도 자녀를 봐줄 사람을 못 찾으면 나갈 수 없었다. 이런 조건에서 동료교수들과 경쟁하니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해외학회 참석은 꿈도 못 꿨다. 사실상 육아를 담당하지 않는 대다수 남성교수들과 출발선부터 달랐다. A씨는 최근에서야 서울에 정착해 다소 안정을 찾았지만 여전히 친정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전 남편에게 받는 돈은 여전히 매달 50만원이다. 

가정법원에 양육비 증액청구를 할 순 있지만 이를 활용해 양육비 산정기준인 부모소득이나 자녀 나이가 달라질 때마다 이를 청구하긴 어렵다. A씨는 “다시 말을 섞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다시 법정에서 얽히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드물지만 양육채권자(양육자) 입장에선 증액청구를 했다가 그나마 받던 금액조차 못 받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감정의 문제를 떠나 양육비 증액청구는 쉽지 않다. 안 변호사는 “양육비를 산정할 때 아이가 자라고 부모소득이 증가하는 등의 요인을 이미 고려했기 때문에 양육비를 올릴 큰 사정 변경이 있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 여러 번 양육비를 조정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 한국에선 민법상 성년이 되면 양육비 지급의무가 사라진다. 사진=istockphoto
▲ 한국에선 민법상 성년이 되면 양육비 지급의무가 사라진다. 사진=istockphoto

민법상 양육비는 성년(19세)이 되면 끊긴다. 자녀가 대학에 진학해 취업을 준비하고 결혼비용 뿐아니라 손주까지 지원하는 현실에 어울리지 않는 법이다. 호주제 폐지 직전인 2005년 1월 이혼에 돌입해 양육비 책정을 못 받은 B씨는 자녀가 대학에 진학할때 등록금을 전 남편에게 요청한 적이 있었다. 이혼 당시 둘 다 일본 유학생 신분이어서 양육비를 요청할 생각도 못했지만 이후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 서울 한 대학의 교수가 됐다.  

“친정아버지, 동생, 올케 등의 지원금과 육아 도움으로 키웠다. 전 남편에게 양육비를 받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엄마로서 당연한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했다. (자녀가) 대학에 가면서 (전 남편에게) 한번 메일을 보내 등록금을 요청해봤다. 전 남편이 메일을 확인했지만 답은 없었다.” 

자녀가 직접 아버지에게 요청해보겠다고 했다. B씨 입장에선 맘이 상했던 경험이 있지만 자녀의 권리라고 생각해 말리지 않았다. B씨는 “말했더니 수업료의 절반만 주고 나머지는 엄마한테 해달라고 했다”며 “용돈도 10만원인가 받았다는데 (자녀가) 나중에 그 돈 괜히 받았다고 후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양육비는 법의 문제를 떠나 인간적인 도리가 아닐까 싶다”고 덧붙였다.  

이혼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줄고 있지만 한부모를 향한 제도의 낙인은 여전하다. 한부모가 되는 순간 이들은 다른 취급을 받는다. 한부모와 그의 자녀도 좋은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지만 현실에선 여전히 ‘한부모면 모든 걸 포기하고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다’는 체념 섞인 편견에 사로잡힌다. 2018년 기준 한국 전체 가구(1만9752) 중 한부모가구(2158) 비율은 10%를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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