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비준이 수면 위로 떠오른 지난해 하반기 가장 열정적으로 보도한 언론사는 경제지였다. 기존의 “노동자천국”·“기업옥죄기” 프레임을 넘어 노조법 개정안이 미조직 노동자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논리까지 내놓은 가운데, 노동기본권 전반에 대한 인식 부족이 기저에 깔려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종휘 한겨레 탐사팀장은 ‘노동법률가들의 노조법 개정안 팩트체크’를 주제로 17일 열린 노동법률가대회에서 토론자로 나서 “보수·경제지의 핵심협약 비준 반대 논리는 수십 년 반복돼왔다”며 “이들 논리의 공통점은 노동기본권의 확대가 국민 소득이나 일자리 안정 문제와 결부돼 있고, 결국 국가적 문제인 노후빈곤이나 복지로 귀결된다는 안목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전 팀장은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에서 11개 전국단위 일간지와 8개 경제지를 대상으로 지난해 하반기 ILO 핵심협약 비준을 주제로 한 보도를 톺아본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31일 입법예고를 시작으로 한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은 ILO 핵심협약 4개 가운데 강제노동금지를 뺀 3개 협약 비준동의안과 이를 반영한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과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의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국회에 제출했다.

경제신문들은 ILO 협약을 종합일간지보다도 자주 다뤘다. 머니투데이는 81건, 서울경제 62건, 한국경제 59건, 매일·헤럴드경제가 45건 보도했다. 종합일간지 보도 건수는 경향신문 68건을 제외하면 10~40건 안팎이었다.

▲제5회 노동법률가대회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 5개 노동법률단체 주최로 17일 서울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제5회 노동법률가대회가 ‘노동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 등 5개 노동법률단체 주최로 17일 서울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보수·경제지의 공통 주장은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협약 비준으로, 기존 노동계에 유리한 운동장을 촛불 청구서를 내미는 민주노총에 더 기울인다”는 논지다. 매일·한국·서울경제가 입법예고일 7월30일 앞뒤로 낸 사설에선 일제히 “기울어졌다” “편향됐다”는 표현을 썼다. 이들은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폐지, 직장점거 전면금지 등 “보완입법”을 요구했다. ‘경제해악’ 논리도 반복됐다. 사설 속 “기업 활력 꺾기”(한국경제), “고용경쟁력에 마이너스”(파이낸셜뉴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를 더 망쳐”(서울경제) 등 표현이 단적인 예다.

전 팀장은 “경제지는 핵심 협약을 비준하면 파업과 투쟁을 일삼는 노조 기득권을 강화하는 구실이 된다고 주장해왔다”며 일부 경제지는 ILO 핵심협약을 비판하려 미조직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기 이르렀다고 했다. 한국경제의 “경영계 우려는 차치하더라도 전체 근로자의 90%에 달하는 무노조 근로자에게는 남의 나라 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오피니언 보도다. 전 팀장은 “사실관계가 틀린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특수고용 노동자의 단결권을 확대해야 한다는 ILO 권고사항을 빠뜨린 정부입법안을 비판하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전 팀장은 노사관계와 노동기본권에 대한 안목 부족이 무리한 비판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경제지는 노동자의 기본권 확대만큼 사용자의 권리도 넓여야 한다며 거래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거시경제를 들며 ‘한가하게 노동기본권 확대하면 경제 악순환을 낳는다’는 논지를 펴지만, 사실 특수고용을 비롯한 노동자들의 기본권 확대는 국민의 소득과 일자리 안전 문제와 결부돼 있다. 나아가 현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이들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인 노후빈곤과 국가의 세금이 들어가는 복지로 귀결되는데, 여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지난해 10월9일 한국경제 오피니언.
▲지난해 10월9일 한국경제 오피니언.

 

한편 진보·중도 논조의 신문들은 대다수가 비준을 촉구하고, 일부는 정부안이 오히려 기존 노동권을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7월30일 주요 업무시설의 점거 금지가 파업권을 침해하고, 단협 기간 연장도 노조의 협상력을 약화하는 한계를 보도했다. 그 외 보도들은 대체로 국제적인 기본권을 준수해야 하고, 비준하지 않으면 EU와 통상 갈등이 불거질 우려 등을 들어 비준을 촉구했다.

노동 적대 보도가 지속되는 이유는 뭘까. 전 팀장은 내부 요인으로 언론사의 매출이 대부분 기업 광고에서 나오는 문제와 전문 기자의 부족을 꼽았다. 언론사 내에 노동 담당 기자 자체가 적은 데엔 바깥 요인도 있다. 정부의 구조가 언론사의 논의 구조와 배치에 그대로 투영되는 탓이다. 전 팀장은 “시민사회 시각에선 노동이 큰 주제이지만 언론사에선 산업부가 10~20명일 때 노동 담당은 대개 1명”이라고 했다. 총연맹이나 산별노조 등 출입하다 보니 개인 기자의 ‘결단’이 아니라면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은 취재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전 팀장은 노동기본권에 반하는 보도에 대응하려면 노조 차원에서 반론과 정정 요구 절차에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가 적극 개입할 필요성도 강조했다. ‘전사회적 결사의 권리 확대’ 필요성도 제기된다. 그는 “매번 최저임금을 올리면 경제지는 영세사업장은 어떻게 사느냐고 문제 제기한다. ILO의 권고도 사실 편의점 사장을 비롯한 자영업자가 가맹사업자를 향한 단결권 행사를 촉진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전사회적으로 개별 경제주체가 본사와 원청을 향해 목소리를 키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