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여개 단체가 모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장애인 차별발언을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진정했다. 전장연은 17일 서울 중구 인권위 로비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권위가 정치인들에게 장애인 차별·비하·혐오 발언 책임을 명확히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에 대해선 21일 민주당 당사 앞에서 ‘반성문’을 요구할 계획이며, 반성문이 제출되지 않으면 설 연휴 전날인 23일 서울역 등지에서 정치인들의 장애인 비하·혐오·차별 퇴치를 위한 서명운동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이 대표는 15일 민주당 유튜브채널 영상에서 “선천적 장애인은 어려서부터 장애를 갖고 나오다보니 의지가 좀 약하다. 그런데 사고가 나서 장애인이 된 분들은 원래 자기가 정상적으로 살던 거에 대한 꿈이 있으니 의지가 더 강하다는 말을 심리학자한테 들었다”고 말했다. 장애인 차별·혐오 발언이라는 지적에 이 대표는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했다며 의도적인 게 아니라 무의식 중에 나온 발언이라 해명했다. 장애계는 이 대표의 입장은 사과가 아닌 “우롱”이라 반발한 바 있다.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해찬 대표가 말한 ‘선천적 장애’가 저다. 한번도 비장애인으로 산 적이 없고 걸어본 적 없다. 어렸을 때 학교에 가지 못했다. 제도권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18살에 집을 나와 시설에 있다 20살에 자립했다. 열심히 일자리를 구하려 돌아다니다 IMF가 터진 뒤 정말 취직이 안 돼서 아무도 없는 서울에 올라와 살기 시작한 게 20년 전이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다 장애인 야학에 들어가 검정고시를 쳤고 지역자립장애운동을 시작했다. 장애차별금지법을 위한 역사적 투쟁에 함께해 왔다”며 “내가 의지가 없어서 공부를 안했다. 의지가 없어서 일하지 못했다”고 이 대표 발언을 비판했다.

▲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애인 차별발언 진정서를 들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박현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가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장애인 차별발언 진정서를 들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박 활동가는 “이 대표가 (민주당이 영입한) 최혜영 교수를 띄워주기 위해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왜 선천적 장애인이 의지가 없냐면 한번도 정상인으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후천적 장애인보다 의지가 없다고 했다. 이게 정말 무의식적이라면 이 대표는 장애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당장 공당 대표를 그만둬야 한다.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한술 더 떠서 자유한국당이 나름 우리를 도와준다고 (의도)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입장을 냈더라. ‘몸이 불편한 사람이 장애인이 아니다. 비뚤어진 마음과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장애인’이라고 했다”며 “제발 장애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 장애인 삶에 대해 칼을 대지 말라”고 목소리 높였다.

박 활동가는 “나는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에게 부끄럽게 살았다고 생각한 적 없다. 의지 없이 자괴감을 갖고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마음 같아서는 인권위 진정이 아니라 명예훼손죄로 고발하고 싶다. (차별발언을 들은) 대상자가 특정되지 않아서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는) 사안이 되지 않는다지만, 저에 대한 명예훼손이고 아이에 대한 명예훼손을 함부로 이야기 하지 말라”고 말했다. 인권위를 향해서도 “단지 한 사람의 장애인 비하발언이 아닌 인간을, 장애인을 무시하고, 철저하게 외면하고 차별한 사안이란 걸 명확히 인지하라”고 촉구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로비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장애인 차별발언에 대한 긴급진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7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로비에서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장애인 차별발언에 대한 긴급진정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인권위는 앞서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장애인 비하발언에 대한 진정 5건을 모두 각하한 바 있다.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는 “인권위는 진정을 각하했다고 올 1월 입장을 발표했다. 정치인들이 차별 발언을 한 건 맞고 사회적으로 심각하다. 그러나 인권위는 권고할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을 통해 발언했기 때문에 피해받은 사람이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에 피해받은 사람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라 전한 뒤 “박현 동지는 이 대표가 언급한 선천적 장애인이다. 20년 동안 같이 활동하고 있는데 너무 의지가 강해서 감당을 못할 정도다. 오늘부터 자신이 선천적 장애라 생각하는 분들은 한명 한명 자신의 이름으로 인권위에 진정했으면 좋겠다. 설날까지 많이 조직해 달라”고 전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 그들을 그대로 놔두기 때문에 문제다. 우리가 너무 쉽게 넘어갔기 때문에 문제다. 인권위가 그런식으로 (진정을) 처리했기 때문에 문제”라며 “정치인들은 스스로 개혁하고 변화할 힘이 없는 집단이다. 우리가 우리 삶을 지키기 위해 그들을 반드시 바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