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역사를 보면 객관주의 언론관에서 선정주의로 넘어간 적이 있다. TV조선 보도가 이와 같다. 의혹 보도라고 하지만,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해당 보도는 노조를 두고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었다. 또 정규직화 추진이라는 정부 정책을 놓고 흠집 내려는 배후 정서가 있지 않았나.”(방통심의위 김재영 위원)

▲ 2018년 10월18일 보도된 TV조선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 2018년 10월18일 보도된 TV조선 ‘뉴스9’ 보도화면 갈무리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방송한 TV조선에 법정제재 절차가 추진된다. TV조선은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를 근거를 기사로 쓰면서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단정 보도했다. 민주노총을 지적하는 기사를 쓰면서 반론을 받지도 않았다. 이후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에 나온 민주노총 관계자 입장을 근거로 정정보도했지만, 정정보도 마저 사실과 달랐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위원장 허미숙)는 지난 15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TV조선 ‘뉴스9’(2018년 10월18일)·‘뉴스 퍼레이드’(2018년 10월19일)와 TV조선 ‘뉴스9’(2018년 10월23일) 두 안건이 방송심의규정 ‘객관성’ 조항을 위반했는지 심의한 결과 모두 법정제재 ‘주의’를 결정했다. 법정제재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때 반영된다.

TV조선 ‘뉴스9’·‘뉴스 퍼레이드’는 “[단독] 아들·조카 7명 채용…노조 간부 아내 입사”(김미선 기자) 리포트에서 인천공항공사 채용 비리 의혹을 보도했다. TV조선은 “문재인 대통령의 정규직 전환 선언 이후에 채용 비리 의혹 제보를 받았고 14건을 접수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한 뒤 △노조 지부장이 부인을 정규직 채용하고 본인과 부인 모두 고속 승진시킨 의혹 △노조 간부가 아들과 조카를 비정규직으로 입사시킨 뒤 정규직 전환했다는 의혹 등을 전했다.

그러나 TV조선 보도는 오보였다. TV조선이 기사를 쓴 근거는 민경욱 의원실에서 받은 인천공항공사 감사관실 ‘협력업체 부정채용 익명신고 접수 및 확인 현황’이라는 자료다. 자료를 보면 TV조선은 T1 탑승교운영용역 W협력업체 제보 사실을 기반으로 기사를 썼다.

제보내용은 △노조 지회장이 배우자를 입사시켰고, 정규직 전환발표 후 본인 및 배우자 모두 초고속 승급했고 △과거 노조 간부가 친척과 동생을 줄줄이 입사시켰다는 것이다. 자료를 보면 이후 감사관실은 제보내용을 확인했는데,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TV조선이 민경욱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의 진위를 확인하지 않고, 제보내용을 기반으로 기사화한 것.

이후 TV조선은 해당 보도를 두고 비판이 일자 5일 후 정정보도했다. TV조선은 “‘민노총 지부장이 아니라 지회장’ ‘민노총 측은 당시 부인이 승진이 빨랐던 건 사실이지만 더 빠른 승진 사례도 있었고 승진과 정규직 전화 순번은 무관하다고 알려왔습니다’”라고 했다.

▲ 2018년 10월23일 보도된 TV조선 ‘뉴스9’ 정정보도화면 갈무리
▲ 2018년 10월23일 보도된 TV조선 ‘뉴스9’ 정정보도화면 갈무리

하지만 노조는 정정보도도 잘못됐다며 ‘정정보도에 대한 정정’을 요구했다. 노조는 “TV조선 측에 공식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인천공항 비정규직 노조인 인천공항지역지부(공공운수노조 산하)는 정정보도도 틀렸다며 지난 2018년 12월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및 손해배상 청구했다. 그러자 양측은 정정보도를 두고 2019년 1월22일 합의했다. TV조선은 “민주노총 지부는 간부 부인의 승진이 빨랐던 점을 인정한 적이 없기에 이를 바로 잡는다”고 정정보도문을 실었고, 노조는 손해배상금 450만원 청구를 취하했다.

전광삼 상임위원이 “감사관실 자료를 민경욱 의원에게 받았나? 감사관실에서 이런 자료를 작성하는데 제보만 가지고 작성했나?”라고 묻자 이날 의견진술자로 출석한 강상구 TV조선 편집 1부장은 “감사관실에서 얼마나 확인했는지 우리가 파악 못했다. 감사관실에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자료를 두고 진위 확인없이 보도했다는 것.

TV조선은 보도 후 나온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의 재반박 보도를 보고 1차 정정보도를 했다고 밝혔다. 전광삼 상임위원은 “1차 정정보도 당시 왜 민노총이 TV조선에 알려왔다고 보도했냐”고 묻자, 김동욱 TV조선 뉴스에디터는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 매체에서 쓴 기사를 보니 노조 측 반론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정정보도를 하게 됐는데, ‘알려왔다’고 쓰는 게 통상의 형식이라 고민 그 표현을 썼다. 노조 쪽 입장을 반영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김재영 위원은 “안 한 것만 못한 정정보도였다”고 지적하자, 김동욱 에디터는 “노조 입장을 반영하려다 이렇게 됐다. 나중에 과잉 친절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기사가 맞을 수 있는데,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를 보니 노조 측에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강상구 부장도 “과잉 친절이 화를 불렀다고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강상구 부장은 “민경욱 의원실 자료, 노조 측 취재원 1명, 박완수 의원실 자료 등을 갖고 기사를 썼다. 이 중 한 가지만 들어도 기사를 쓴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김재영 위원은 “국회의원실에서 작성한 문건이 보도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시는데, 국회의원은 면책 특권이 있다. 국회발 미확인 정보가 신문에 나가고 TV가 인용하고, SNS로 확산한다”며 “때문에 국회의원실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신빙성이 있다고 말하는 건 언론이 정치권의 정쟁에 동원되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언론이 중심이 돼서 여론을 만든다. 국회는 언론을 이용하려는 속성이 있다. 앞으로는 정확히 팩트체크 안 하면 이런 일이 또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심의위원 3인(정부·여당 추천 허미숙 위원장, 김재영·이소영 위원)은 법정제재 ‘주의’를 2인(자유한국당 추천 전광삼 상임위원, 바른미래당 추천 박상수 위원)은 행정지도 ‘의견제시’를 주장했다.

이소영 위원은 “1차 자료로 민경욱 의원실 자료를 지정했다. 자료에 제보된 14건 내용을 보면 모두 2017년 5월 전 채용된 사람들이다. 이 자료에서는 TV조선 보도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 특정 사안을 콕 집에서 보도했다면 그 사안을 두고 확인이 필요하다. 기초자료조차도 확인이 안 되고 있다. (보도를)인정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고 본다”며 ‘주의’를 결정했다. 김재영 위원도 “노조를 두고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고, 정규직화 추진이라는 정부 정책에 흠집내기식 보도였다. 전체회의에 회부해 다수 위원 의견을 들어보자”며 ‘주의’를 결정했다.

반면 박상수 위원은 “국회의원이 제공한 자료로 보도해다. 취재기자는 이 자료만 믿지 않고 노조원을 접촉해 확인했다”고 말했고, 전광삼 상임위원도 “감사원실 자료다. 이런 오해 받기 싫으면 아버지 근무하는 회사 안 들어가면 되지 않나? 미디어오늘과 미디어스에 보도된 반론을 실어주려다 이렇게 된 것 같다. 잘 하려다 이렇게 된 것 같다”라는 주장을 펼쳤다. 두 위원은 행정지도인 ‘의견제시’를 주장했다. ‘의견제시’는 가장 약한 제재 수위다.

한편 TV조선은 올해 4월 방통위에서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를 받는다. 방송심의규정 ‘객관성’ ‘공정성’ 등 조항을 위반해 법정제재를 받으면 재승인 심사에 반영되는데, 이번 달에만 ‘객관성’ 조항 위반으로 3건의 법정제재가 확정될 예정이다. 앞서 TV조선 ‘보도본부 핫라인’은 지난달 18일 사실 확인 없이 “조국 딸 시험 보고 학교 간 적 없다”고 발언해 법정제재 ‘주의’를 받았다. 3건 모두 이번 달 전체회의에 회부 돼 제재 수위가 최종 결정된다.

TV조선 측은 행정소송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행정소송을 제기하면 법정제재 건수가 카운트되지 않는다. 2018년 방영분을 두고 의견진술 절차가 올해 진행된 이유는 TV조선 측에서 의견진술 일자를 계속해서 미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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