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종 보호 대상인 대왕조개를 태국에서 채취해 먹는 장면을 방송한 SBS ‘정글의 법칙’가 법정 제재를 피해갔다. SBS 책임PD는 고의로 대왕조개를 채취한 게 아니라고 주장했고, 심의위원들은 금지 사항을 정확히 확인하고 방송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소위원회(위원장 허미숙)는 15일 오후 목동 방송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SBS 예능프로그램 ‘정글의 법칙’이 방송심의규정 ‘법령의 준수’를 위반했는지 심의한 결과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했다. 행정지도는 방송사 재허가·재승인 심사 때 반영되지 않는다.

▲ SBS ‘정글의 법칙’ 지난 6월29일 방영분.
▲ SBS ‘정글의 법칙’ 지난 6월29일 방영분.

SBS ‘정글의 법칙’은 지난해 6월29일 배우 이열음씨가 태국 남부 꼬묵섬에서 대왕조개를 채취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이후 이열음씨는 2번 더 대왕조개를 채취했다. SBS는 해당 방영분을 방송한 후 다음 회차 예고 영상에서 개그맨 이승윤씨가 대왕조개를 양손으로 쥐고 입으로 들이키는 장면도 방송했다. 대왕조개는 멸종위기에 처해 국내외 모두 법적 보호하고 있다. 평균 수명이 100년 이상인 세계에서 가장 큰 조개다.

해당 편 방송 영상 클립이 SNS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면서 논란이 커졌다. 그러자 태국 핫차오마이 국립공원은 지난해 7월3일 현지 경찰에 ‘정글의 법칙’팀을 가이드한 현지 가이드를 두고 수사 요청했다. 수사는 아직 진행 중이다.

▲ 지난 7월7일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 지난 7월7일 연합뉴스TV 보도화면 갈무리.

이날 의견진술자로 출석한 유윤재 책임PD는 “낚시가 아닌 채취는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현지 가이드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생긴 일”이라고 해명했다. 허미숙 소위원장은 “태국이 제작진도 조사하고 있냐”고 묻자, 유윤재 PD는 “태국 측이 아직 수사 대상도 명확히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심의위원들은 “한국 이미지가 타격받았다”고 지적했다. 허미숙 소위원장은 “한국은 세계자연보존연맹 회원국이다. 멸종위기종은 국내법적 효력을 갖는다. 태국과 국가적 신뢰에 손상이 왔다. 한국은 선진국 아닌가. 이런 일로 태국과 분쟁이 벌어지면 역효과가 난다”고 지적했다. 전광삼 상임위원은 “한국 국민을 모독한 방송이다. 한국 지상파 방송에 출연한 배우들이 멸종위기종을 잡아먹는 굉장히 무식하고 미개한 사람들로 비쳤을 수 있다고”고 우려했다.

김재영 위원은 “대왕조개를 채취하면 안 되는지 정말 몰랐냐”고 말한 뒤 “출연자와 제작진이 대왕조개를 발견하고 굉장히 환호한다. 대왕조개 채취를 목표로 촬영한 것 아닌가. 정글의 법칙이 해외 촬영갈 때 그 지역에 뭐가 유명한지 등을 고려해 방송할 텐데, 멸종 희귀종인 대왕조개를 몰랐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소영 위원은 “현지 가이드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방송사가 현지법상 어디까지 가능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 기본적으로 확인한 상태에서 촬영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유 PD는 “실제 특정 국가 촬영을 갈 때 환경부 장관을 만나기도 한다. 이번 사건은 저희도 의아하다”고 답했다. 이소영 위원은 “SBS가 태국과 처음 계약할 땐 국립공원 해변에 들어가서 구경만 한다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대왕조개를 채취하는 장면을 보도했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유 PD는 “제작팀이 곤란해질까 정확한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심의위원 3인(정부·여당 추천 허미숙 소위원장·김재영 위원, 바른미래당 추천 박상수 위원)은 행정지도 ‘권고’를, 심의위원 2인(정부·여당 추천 이소영 위원, 자유한국당 추천 전광삼 상임위원)은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김재영 위원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태국 당국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일단 행정지도 결정 후 유사한 시기 같은 채널에서 이 같은 일이 반복되면 중한 징계를 하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박상수 위원도 “방송사가 제대로 사전 조사하지 않은 데서 불거진 일이다. 처음인 점을 감안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소영 위원은 “SBS는 처음엔 보트 타고 구경하는 모습만 촬영하겠다고 했다가 막상 허가받은 장소에 가니 그림 욕심이 난 게 아닌가. 방송사의 잘못이 매우 크다”고 지적하면서도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이라 ‘법령의 준수’ 조항을 적용하기 어렵다”며 문제없음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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