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9월 ‘원전 비평’이란 칼럼을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동안 핵발전소 관련 보도를 비평하는 글을 쓰면서 단 한 번도 원고 쓸 소재가 부족하지 않았다. 바꿔말하면 현재 우리 언론에는 핵발전소·에너지 정책에 대한 ‘가짜뉴스’와 ‘억측’이 차고 넘친다. 단순히 관점의 차이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잘못 이야기하는 것부터 부분적인 이야기를 크게 확대하는 ‘침소봉대’형 기사, 장밋빛 전망을 확대해서 포장하는 ‘소설형 기사’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중금속 범벅 태양광 패널’ 같은 것이 대표적인 ‘가짜뉴스’이고, 한때 104기나 운영되던 미국의 핵발전소 수가 96기로 줄었지만 2기 건설 기사를 확대해서 ‘미국도 핵발전 호황’ 같은 기사가 ‘침소봉대’형 기사의 전형이다. 뚜렷한 근거와 출처도 없이 핵산업계의 일방적인 ‘시장 전망’을 그래도 보도하는 형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들 보도가 원하는 바는 대체로 핵산업이 중요한 산업이며, 한국은 이에 대한 훌륭한 원천기술을 갖고 있는데 ‘영화 한 편 보고 탈원전 정책을 결정한 문재인 대통령’이 이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보수 야당의 논리를 유지하는 좋은 근거가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느끼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탈핵 논쟁’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좌파와 우파를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애국과 매국을 나누는 핵심 의제이기도 하다.

▲ 지난해 7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탈원전반대 서명 50만명 돌파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해 7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국민보고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탈원전반대 서명 50만명 돌파를 주장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그간 칼럼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이는 대한민국에 있어 큰 불행이다. ‘기-승-전-탈원전 반대’ 논리 구조에 막혀 정작 중요한 에너지 정책의 다른 의제들은 논의 의제에조차 올라오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전기요금 문제이다. 연료비 등 발전 단가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현재 전기요금 책정 방식은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적되어 오던 문제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연료비 연동제’ 등 제도 도입을 검토했으나, 10여 년 동안 논의는 한발도 나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지금은 보수 야당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전기요금 올라간다’라는 반발과 이에 맞선 ‘문재인 정부하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라는 반박에 막혀 아예 논의 의제에도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전환 과정에서 생길 다양한 문제, 특히 일자리와 산업변화에 대비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둘러싼 논의도 마찬가지이다. 미세먼지 문제와 온실가스 문제로 석탄화력발전소와 내연기관 자동차 등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기존 일자리가 줄어드는 등 다양한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법·제도 보완 및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시급한데, 우리 국회는 이를 다룰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대안을 준비하고 보완하기는커녕, 가장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두고 다투기에도 바쁘기 때문이다. 

워낙 가짜뉴스가 많은 시대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모든 가짜뉴스를 바로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주요 일간지와 언론조차 이런 보도를 이어가는 것은 ‘공론(公論)’을 형성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된다. 한 번 입력된 왜곡된 지식을 바로 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왜곡된 정보에도 불구하고, 재생에너지에 대한 필요성과 에너지전환을 둘러싼 국민의 의식은 상당히 높다는 것이다. 가짜뉴스에 기반한 쟁점으로 정작 국회와 정치권에서 에너지전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물쭈물 시간만 보내는 사이, 한쪽에서는 호주 산불처럼 대형 ‘기후재난’을 맞고 있고, 다른 한쪽에선 ‘그린 뉴딜’이란 이름으로 대규모 투자와 사회 변화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3년이 다 되어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몇 년이나 허비하고 있다. 남들이 모두 앞으로 달려갈 때, 우리는 달릴지 말지 싸움만 하는 형국이다. 심지어 뒤로 가야 한다는 퇴행적인 이야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2020년에는 이런 불행이 끝나기를 다시 한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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