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선제공격에 이란이 반격하며 중동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파병까지 원한다고 밝혔다. 보수언론은 미국에 파병을 통한 동맹 의지를 밝히라 주문했고, 진보언론은 근거 없는 파병은 안 된다고 맞섰다. 보수언론은 파병이 확실시됐다는 주장을 이어가지만, 다른 언론은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 지난 9일자 경향신문 1면 사진
▲ 지난 9일자 경향신문 1면 사진

‘파병 보도’ 발단은 KBS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는 지난 7일 저녁 KBS ‘뉴스9’ 리포트에서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고 있다.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통한 간접 형식이지만,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처음 공개 요청했다. 다음날인 8일(현지시각) 이란은 이라크 내 미군 주둔기지 2곳에 미사일을 쐈다. 9일자 종합일간지는 이 소식을 보도했다.

▲ 지난 7일 KBS '뉴스 9’에 출연한 해리스 미 대사
▲ 지난 7일 KBS '뉴스 9’에 출연한 해리스 미 대사

보수언론은 미국과 관계를 의식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파병 규모와 시기, 방법 등을 신중히 검토하되 동맹에 기여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호르무즈 파병은 방위비분담금 협상 등 동맹 현안을 둘러싼 미국의 불만을 잠재울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거들었다. 세계일보도 사설에서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우리 정부에 파병을 강력히 요구했다. 파병은 한미동맹의 견고성을 평가하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지난 9일자 동아일보 사설
▲ 지난 9일자 동아일보 사설
▲ 지난 9일자 세계일보 사설
▲ 지난 9일자 세계일보 사설

파병을 주장하는 동아일보는 한국이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커서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근거를 들었다. KBS 리포트에 출연해 파병을 주장한 해리스 대사가 내세운 근거와 같다. KBS도 해리스 대사 발언을 비판 없이 그대로 내보내 ‘따옴표 저널리즘’이란 비판을 받았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은 지난해 7월12일 처음 나왔다. 이때도 동아일보는 유일하게 파병을 주장했다.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지난해 7월13일 ‘횡설수설’ 코너에서 일부 우려섞인 표현을 하면서도 “원유의 75%를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수입하는 나라(한국)가 남 일처럼 ‘나 몰라라’하고 무임승차만 바라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썼다. 송 위원은 “진보 진영이 파병에 무조건적 거부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한 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위해 이라크 파병까지도 결정했다”고 했다.

▲ 지난해 7월13일자 동아일보 칼럼
▲ 지난해 7월13일자 동아일보 칼럼

반면 진보언론은 ‘미국이 부른 이란 보복에 한국군 파병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미국이 부른 이란 보복은 미국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전면전 가능성까지 감도는 상황에서 우리 군 병력을 보낼 경우 원치 않는 희생만 강요당할 수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반드시 미군과 공조할 이유는 없다. 한국군 파병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 지난 9일자 경향신문 사설
▲ 지난 9일자 경향신문 사설

보수언론은 ‘파병 긍정론’을 이어갔다. 지난 11일자 “정부, 호르무즈에 청해부대 배치 가닥”이라는 조선일보 보도가 대표적이다. 조선일보는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9일 미국이 요청한 호르무즈 해협 파병과 관련해 ‘청해부대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본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기사로는 파병이 결정된 것처럼 읽힌다. 동아일보도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 호위체에 참여하는 대신 독자적인 청해부대 활동을 대안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이들 언론사는 비공개 기자 간담회에서 외교부 고위 당국자의 발언을 근거로 보도했다.

▲ 지난 11일자 조선일보 1면
▲ 지난 11일자 조선일보 1면

같은 날 정부가 ‘청해부대 우회 파병’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언론사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한국일보, 경향신문, 종합편성채널 3사(TV조선·채널A·JTBC) 등이다.

반면 한겨레는 청해부대 파병이 유력했지만, ‘신중론’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지상파 3(KBS·MBC·SBS)사는 이 소식을 보도하지 않았다. 한겨레는 “정부는 아덴만 해역에서 활동해온 청해부대를 호르무즈에 보내는 형식의 ‘파병’을 유력하게 검토해왔지만, 미국-이란 갈등이 악화하자 ‘신중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 지난 11일자 한겨레 6면
▲ 지난 11일자 한겨레 6면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국시각 15일 새벽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과 만나 이 사안을 논의한다. 이 소식을 보도하지 않은 언론사 소속 A기자는 “지금은 어떤 형태의 파병도 가닥을 잡을 때가 아니다. 신중해야 한다”며 “14일 강 장관과 폼페이오 장관이 호르무즈 파병을 주요 의제로 이야기한다. 이 회담 후 가닥이 나올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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