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한 지역총국 기자가 외부로부터 지원 받아 뉴스 리포트를 제작·보도한 정황이 나와 특별감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정청탁 소지가 있고, 방송 사유화 논란으로 번질 수 있어 파장이 예상된다. 당사자인 기자는 사실과 다르다며 반발했다.

KBS 대구총국 A기자는 2018년 7월 휴가를 내고 베트남에 다녀왔다. A기자는 회사에 복귀한 날 베트남에서 6mm 카메라로 찍은 내용을 리포트로 제작했다. 공교롭게 휴가 다녀온 날 데스크가 부재해 A기자는 자신이 만든 리포트를 뉴스로 최종 승인해 전파를 탔다.

A기자가 베트남 휴가를 다녀와 제작한 리포트(2018년 7월26일 대구경북 뉴스9 뉴스광장 보도)는 “화장품 공동 브랜드인 ○○○○가 최근 베트남에서 열린 화장품 박람회에 참가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내용이다.

A기자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화장품 박람회 현장을 찾아 “경북지역 20여 개 중소 화장품 업체가 참여한 공동브랜드 ○○○○부스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현지 바이어들은 ○○○○ 제품의 우수한 품질과 가격 경쟁력에 높은 점수를 줬다”고 보도했다.

대구총국 소속 기자들이 해당 리포트에 ‘뉴스 가치가 없다’고 문제제기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그러나 공식 절차를 밟지 않고 리포트를 제작하고 데스크 부재시 보도를 스스로 승인한 것에 재발방지 절차를 만들기로 정리했다.

A기자 리포트는 해를 넘겨 문제가 됐다. 언론노조 KBS본부가 리포트 제작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조사한 결과 외부 지원 정황을 발견해서다.

경북 경산시가 화장품 공동브랜드 육성 수행기관인 대구한의대에 집행한 예산 내역서에 따르면 250만원 가량의 돈을 ‘KBS뉴스 촬영장비 대여’ 명목으로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는 것이다. 외주제작사(대구총국과 계약을 맺었던 프로그램 제작사)가 박람회 취재 촬영 장비를 대여해주기로 하고 250만원 돈을 받기로 한 것이다. 외부에서 박람회 취재 때 KBS뉴스 제작장비를 지원하려고 돈이 집행됐다는 얘기다.

A기자는 KBS로부터 출장비 지원도 받지 않고 개인 휴가차 베트남에 다녀와 뉴스 리포트를 제작했는데 외부 지원 정황이 나왔다. 이에 KBS는 공정방송위원회를 열었다. A기자가 공식 절차를 밟지 않고 리포트를 제작해 뉴스를 최종 승인한 배경에 외부 지원 받은 정황이 나와 방송 사유화와 보도 공정성이 의심됐기 때문이다.

KBS 감사실도 지난해 8월 사태 파악에 나섰다. 감사실은 A기자를 사흘간 조사했다. 감사실은 A기자가 외주제작사부터 돈을 받아 체류 비용 등 다른 용도로 사용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조사했다. 감사실은 카메라 장비대여 예산을 지원받은 외주 제작사 대표와 A기자 사이 금전 거래까지 확인했다. 문건에 나온 대여 카메라 장비는 영상 기자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전문 촬영 장비로 확인됐다. A기자가 베트남에서 사용한 카메라는 개인적으로 빌린 6mm 카메라였다.

KBS가 카메라 장비를 외주제작사로부터 지원받을 이유도 없지만, A기자가 사용할 수도 없었던 장비로 확인됐고, A기자가 장비를 쓰지 않았다면 250만원의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 KBS뉴스 제작장비 대여 명목으로 예산을 지원한 것도 부적절한데 A기자가 돈을 받은 의심까지 더해져 공공의 전파를 사유화했다는 의혹으로 확산됐다. KBS 구성원들은 쉬쉬하고 있지만 금전이 오고가고 공공의 전파를 사적으로 이용한 심각한 사안으로 보고 있다.

이에 A기자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A기자는 14일 통화에서 의문점으로 남아있는 베트남 휴가 중 취재·리포트 제작, 뉴스 승인 과정, 외주 제작사 대표와 금전거래 의혹 등을 반박했다.

A기자는 “우리나라 화장품의 한류시장이 성장하고 있지만 수만 개 업체들이 진출하고 싶어도 90%가 OEM생산방식이다. 그런데 경북지역에서 소규모 업체들이 모여 공동브랜드를 만들어 베트남 현지에서 호평을 받았다. 해당 리포트가 뉴스 가치가 없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 KBS 본관 전경.
▲ KBS 본관 전경.

A기자는 취재차 베트남 해외 출장을 가겠다고 일찍부터 얘기했고, 취재부장으로부터 허락도 받았지만 출장비 지원이 전면 중단돼 공식 해외 출장을 가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A기자는 “출장을 못 가게 됐지만 베트남에 지인들과 약속한 것도 있고, 스케줄을 비워놔 휴가를 갔다”며 “휴가 일정 중 베트남 박람회 현장을 찾아 반나절 취재했다. 셀프 출장이 아니라 개인 휴가 중 취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A기자는 제작한 리포트를 스스로 승인했다는 의혹에도 “베트남에서 돌아온 날 데스크가 부재한 상황에서 당직을 맡아 데스크를 봤고, 데스크가 기사를 쓰는 관례에 따라 베트남 박람회 리포트를 제작하고 뉴스로 승인했다. 원래 해왔던 일을 했다”고 해명했다.

KBS 감사실은 리포트 제작 시점을 기준으로 6개월 전후 A기자의 금융거래 기록을 확인했다. 금융거래엔 카메라를 대여해주고 예산을 지원받았다는 외주제작사 대표가 A기자에게 200만원 상당의 돈을 이체한 것으로 나왔다.

이에 A기자는 “대구지역에 외주 제작사가 몇 개 없다. 외주제작사 대표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제가 ‘침향’이라는 약재를 주고, 제작사 대표로부터 돈을 받은 개인 거래였을 뿐”이라고 말했다.

경북 경산시의 예산 집행 내역서에 대구한의대(수행기관)가 KBS뉴스 촬영장비 대여 명목으로 예산을 지원한다고 적힌 것에는 “저는 그런 행정지원 문서를 본 적이 없다. 다만 대구한의대(수행기관)와 취재 협의차 논의 중에 베트남 출장을 공식적으로 가지 못하게 됐다고 하자 이미 도에도 보고하고, 섭외까지 해놨다고 하소연 하더라”며 “그래서 당신들이 그림을 만들어오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휴대폰으로 찍는 건 리포트로 쓸 수 없다고 해서 대구한의대가 KBS 그림 제공 목적으로 외주제작사에 직접 장비를 대여하고 실제 박람회 현장을 촬영하고 유튜브 영상을 제작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자신과 외주제작사 대표와 금전 거래는 뉴스 제작과 상관없고, 실제 대구한의대가 외주제작사에 돈을 주고 장비를 빌려 촬영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A기자는 ‘침향’이라는 약재를 외주제작사 대표에게 주고 돈을 받은 거래를 입증할 수 있느냐는 질문엔 “영수증을 쓴 것도 아니고, 약재를 제작사 대표가 먹어버렸다. 입증 못한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KBS 감사실에 특별감사 진행 여부, 감사결과 등을 질의했지만 확인해줄 수 없다는 답을 들었다. 그러나 복수의 KBS 구성원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감사결과가 나왔고, 법 위반 문제에 수사의뢰 의견까지 포함해 본사에 감사결과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결과가 나오면 본사는 징계위원회를 여는 게 수순이지만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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