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안건을 병합 심의하는 과정에서 심도 깊은 논의가 생략된 채 개정됐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알권리를 심대하게 침해할 수 있단 주장에 동감한다.”(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

“삼성전자 측은 산재 노동자들이 제기한 작업환경보고서 등의 공개청구 소송에서 정보공개 거부 근거로 산업기술보호법을 내세우고 있다. 사람 죽이는 기술을 어떻게 국가핵심기술로 보호하나.”(민주당 신창현 의원)

“특히 법원은 반올림과 삼성이 진행한 삼성반도체 공장의 ‘안전보건진단보고서’와 ‘작업환경측정보고서’를 공개 판결했지만, 법 시행 뒤 관련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되는 상황”(정의당 윤소하 의원)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선 이례적으로 이미 통과한 법개정안을 놓고 뒤늦은 첫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해 8월 통과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다. 206명 의원이 당시 본회의 표결에 임해 반대표 없이 통과됐고, 내달 2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산업기술보호와 알권리,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의 의미와 문제점’ 토론회를 공동주최한 우원식‧신창현‧윤소하 의원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에 법안 표결 당시 독소조항을 알지 못했다고 밝혔다.

▲임자운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왼쪽),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김예리 기자
▲임자운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왼쪽),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김예리 기자

독소조항의 핵심은 ‘국가핵심기술의 비공개’와 ‘산업기술 정보의 취득 목적 외 사용‧공개 금지 조항’이다. 개정된 법은 국가핵심기술 관련 정보를 이유 불문 공개 금지하고(9조의2), 산업기술이 포함된 정보는 알게 된 목적 외에 사용하면 처벌토록 했다(14조8). 산업기술을 목적 외 사용‧공개하면 3년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이 유출 우려를 이유로 수사기관에 조사도 요구할 수 있다.

토론자들은 이날 산업기술보호법이 노동자의 생명‧안전권과 직결된 정보의 취득과 토론, 보도까지 광범위하게 막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자운 법률사무소 지담 변호사는 “삼성 반도체 직업병 투쟁과 함께 알권리 싸움을 해오며 삼성과 고용노동부 등을 상대로 ‘안전보건진단보고서’ 등을 얻어냈다. 이들 자료는 공개하지 않으면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내용이다. 정보공개법에 따라 당연히 공개해야 할 자료의 극히 일부이기도 하다”고 했다.

임 변호사는 “그러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이 다음달 시행되면, 지금처럼 판결을 통해 취득한 보고서 내용을 거론하는 건 산업기술 침해다. 여기 온 기자들이 보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보수사기관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기자들을 수사나 조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사단법인 오픈넷 이사)는 토론 자리에서 “법안에 따르면 지금 같은 토론과 보도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매우 특이한 법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박 교수는 “우리는 으레 ‘비밀은 공개하면 안 되지’ 생각하지만 실상 국민이 다른 동료 국민과 비밀을 공유했다고 처벌하는 법은 없다. 공무원이나 회사 직원이 영업비밀이나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유출하는 행위는 처벌하는데, 이 법처럼 정보공개청구에 따라 적법하게 취득한 정보를 공유한 경우 처벌하는 경우는 없다”고 했다.

산업기술보호법이 사람의 생명‧건강권과 관련한 예외규정을 두지 않는 반면, 비공개해야 할 정보의 범위는 모호하고 광범위한 점도 문제다. 임 변호사는 “정보공개법은 심지어 영업비밀이라도 ‘사람의 생명‧신체 또는 건강 보호’를 위해선 공개하도록 했다. 산업기술보호법엔 그런 예외 단서마저 없다. 사람의 생명에 심각한 위해가 발생해도 비공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국가핵심기술에 ‘관련한’ 정보는 어디까지인지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기업이 주장하는대로 관련성이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날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사실상 개정된 법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양창석 산자부 산업기술혁신과장은 “정보공개법에 따라 공개된다는 건 세상 누구도 다 볼 수 있는 상태다. 기술이 전혀 보호 안 된다는 지적 때문에 법이 개정된 걸로 안다”며 “기술침해 소송에서 취득한 정보로 영업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취지도 있다”고 했다. 양 과장은 “법무부 의견을 받으면서 법안의 위헌 소지 지적받은 바는 없다. 기술보호와 알권리는 상충할 수밖에 없어 근로자의 안전과 환경 문제는 그쪽(노동부)에서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산업기술보호와 알권리,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의 의미와 문제점’  토론회가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우원식·신창현·윤소하 의원실 공동주최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산업기술보호와 알권리, 개정된 산업기술보호법의 의미와 문제점’ 토론회가 14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우원식·신창현·윤소하 의원실 공동주최로 열렸다. 사진=김예리 기자

박경신 교수는 이에 “소송 과정에서 비밀이 침해되는 위험은 사실 모든 소송에서 나타난다”고 반박했다. 박 교수는 “소송은 진실을 찾아가는 절차이기에 정보가 공개되고 프라이버시 침해를 비롯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 외국에선 영업비밀에 한해 비밀유지명령을 내리는 제도가 있다. 한편 국가핵심기술은 영업비밀도 아니고, 국민으로부터 비밀로 하자는 법조항 자체가 세계적으로 입법례가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LCD공장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는 이날 발언을 청해 “혜경이가 삼성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린 뒤 이만큼 문제를 알리기까지 10년이 넘었다. 3년 넘게 노숙농성하며 싸웠다. 노동자들은 자신이 LCD 판을 만들며 어떤 악영향을 받는지 교육 받지 않는다”며 “이 법안은 국회와 산자부가 손잡은 삼성보호법이다. 이만큼까지 밝혀낸 반올림의 손발 묶기 위한 법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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