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세미나의 주제는 ‘2019년 언론 결산과 2020년 언론이 나아갈 길’였다. 이 두루뭉술한 주제가 가리킨 진짜 주제는 ‘조국 사태 이후의 언론’이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뉴스수용자’에 주목했다. 이원재 교수는 “2017년 5월 한겨레 기자가 ‘덤벼라 문빠’라고 한 다음 24시간도 안 돼 한겨레가 사과했다. 2년 후 유튜버 유시민씨가 KBS 이상하다고 하자 KBS는 24시간이 되기 전에 한발 물러섰다”며 “대중의 압력에 언론이 두려워하고 있다. 양극화된 의견은 늘 나타나고 우리는 어느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도덕적 절충주의가 (언론사 내부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이원재 교수는 “약자가 상대주의를 주장하면 미덕이지만 강자가 주장하면 전체주의로 흐른다. 언론사들이 24시간 안에 무릎을 꿇었을 때, 약자의 상대주의 앞에 무릎을 꿇었는지 의문”이라며 “굴복하지 않고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적극적 뉴스수용자를 두고 “때때로 이들의 규모와 힘이 과장됐다는 결론을 얻는다. 그들이 힘 있어 보이면 유리한 엘리트층이 이들의 힘을 과장시키고 있다고 본다. 그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며 “기자들은 좀 더 윤리적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기자간담회 전 기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해 9월 국회에서 기자간담회 전 기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기술(포털) △진영(정파성) △광고(광고주) △취재원(출입처와 기자단) 종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근본적 변화를 주문하며 언론계가 새로운 ‘직업적 정체성’을 형성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준웅 교수는 “PD수첩이 법조기자단 관행에 고발에 가까운 보도에 나서자 대법원 출입기자들이 반박성명을 내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기자들은 더 이상 자신이 당하는 외부로부터의 모든 영향력 행사와 자신의 오래된 관행과 비판 논의들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비극과 내부 갈등 속에서 지속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100년 전 미국 언론계도 △상업적 이해관계 △홍보 의존 △정치적 포섭이란 한국 언론의 현실과 유사한 상황 속에서 새롭게 ‘객관주의’라는 직업 정체성을 형성하며 대응했다고 언급하며 “위기에 처한 한국 언론 종사자는 내용이 무엇이든 이념을 형성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라고 했다. 조국 사태로 ‘바닥’을 친 언론계 입장에선 지금이야말로 새 윤리체계를 논의할 좋은 시기라는 것. 이 교수는 “기자들이 윤리적 딜레마에 처했을 때, 함께 참조할 ‘서로 조화하는 이념의 집합’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게티이미지.
▲게티이미지.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시민 수준이 높아졌고 뉴스 검증 역량도 커졌다. 정보는 남아돌고 재미있는 콘텐츠는 넘쳐난다”며 “단독은 기자들과 출입처만의 리그다. 시민은 별 관심 없다. 단독의 유효기간은 3~5초다. 단독에 힘 쏟기보다 다 아는 것을 어떻게 다르게 쓸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박 교수는 “‘품질이 좋다고 독자가 더 본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하며 퀄리티 저널리즘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언론은 회색지대를 보여줘야 한다. 서초동도 보고, 광화문도 보고 한 편의 종합기사를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KBS 출신의 심인보 뉴스타파 기자는 언론계 문화에 주목했다. “위계적 문화의 관념적 기원에 전쟁터 프레임이 있다. MBC는 적이었다. 취재와 기사작성은 전쟁이었다. 하지만 전쟁터 프레임의 물적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다. 과점시장에서 완전경쟁시장으로 변했다. 시장의 경계도 흔들린다. 기자님에서 기레기가 됐다. 지금 언론계는 물적 토대는 무너졌지만 위계적 문화만 잔존한 문화 지체 상황이다.” 심 기자는 “기사를 광고로 바꿔먹고 정파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위계적 문화가 동원되지만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 독자들 수요는 ‘전쟁 승리’와 무관하다. 승자에 보상도 불가능하다”며 변화를 요구했다. 

취임 일성으로 ‘출입처 폐지’를 내건 엄경철 KBS 통합뉴스룸 국장은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는 공감대는 넓지만 방법론을 두고 논쟁이 있다”며 “메인뉴스 길이에 문제가 있다. 너무 길어서 출입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처럼 출입처에서 거저 얻는 정보로는 어렵다”며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엄 국장은 조국 사태에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정신과 저널리즘의 가치가 충돌했을 때 마치 저널리즘 행위가 검찰개혁 방해로 읽혔던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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