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의 인재영입 발표자료에는 매번 ‘○○○ 스토리’가 첨부돼 있다. “장애를 희망으로 바꾼 발레리나 출신 여성”(최혜영 강동대 사회복지행정학과 교수),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봉사로 이겨 낸 희망매니저”(원종건 이베이코리아 기업홍보팀 소셜임팩트 담당)와 같은 식이다. 민주당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과 대비되면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흥행성적을 내는 것처럼 비춰지지만, ‘미담’에 치중해 소수자들을 전시 대상으로 만드는 인재영입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 영입인사들은 대부분이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명망가들이다. 발레리나 출신 최혜영 강동대 사회복지행정과교수는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김병주 전 육군대장, 검사 출신 소병철 순천대 석좌교수, 홍정민 로스토리 대표, 이용우 한국카카오은행 공동대표 이사 등도 마찬가지다. 20대 원종건씨, 30대 오영환(전직 소방관)씨를 제외하면 모두 대중적 유명세가 높지 않을 뿐,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층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최 교수는 ‘발레리나 꿈 꿨던 여성 척수장애인’으로 언론에 소개됐다. 가난을 딛고 발레리나로 성공하고 싶었던 소녀, 교통사고로 생긴 척수장애, 재활학 박사학위를 따낸 성과 등이 ‘감동적 일화’로 전해졌다. ‘성공한 장애 여성’이라는 상징성을 내세우기에 앞서, 민주당이 그를 영입한 지향점이 드러나지 않았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장애계나 장애여성 문제를 어떻게 의제화하고, 어떤 정책과제를 추진할지 설명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스스로 “정치에 정 자도 몰랐던 사람”이라 칭한 최 교수 발언은, 민주당 인재영입이 설익었다는 의구심을 더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시각장애인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는 이야기와 ‘이남자’(20대 남자) 수식어로 관심 받은 원종건씨 역시 “(정책을) 충분하게 고민할 시간은 되지 못했다”며 “‘청년 가장’에 초점을 맞춰 먼저 생각해보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혜영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가운데) 영입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이 지난달 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최혜영 장애인식개선교육센터 이사장(가운데) 영입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 배려대상자 등을 전면에 배치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미지 메이킹, 전시적인 느낌이다. 당사자의 뚜렷한 정치적 소신이나 견해 등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스토리를 중심에 두다보니, 과연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정치적 이슈들을 영입된 분들이 어떻게 정책화·입법화시킬지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배 대표는 “특히 여성 장애인 문제는 젠더이슈와 장애이슈가 접합되는 민감한 사안이 많다”며 “어떤 입장과 관점이 있고 국회의원이 된다면 어떤 일을 할지, 최 교수를 통해 민주당 입장이 보여야 하는데 그 답을 못 찾겠다”고 지적했다.

배 대표는 나아가 “정책적으로 소수자들을 포용하는 게 아니라 전시하는 행태는 사회적 약자 등을 매우 대상화시킨다는 걸 민주당이 알아야 한다. 대상화되지 않고 주체로 설 수 있는 사람이 정치에 참여하는 게 한국사회 정치 발전에 중요하다”며 “특정 대상이 ‘대견하다’고 느끼는 것 자체가 바로 평등하지 못한 것이다. 어른이 아이에게,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칭찬하는 방식·인식 자체가 (우위에서) 해줄 수 있다는 권력 행사이자 불평등”이라 주장했다. 배 대표는 “민주당 인재영입 원칙이나 정책에 대해 언론이 쓴소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영입인사들을 적극 검증하지 않는 것은 언론 또한 그들을 ‘평등하지 않은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 꼬집었다.

정치주체의 다양성을 확장하려는 고민보다 보여주기식 행보가 앞선 듯한 모습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홍정민 로스토리 대표를 소개하는 과정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홍 대표는 변호사이자 경제학 박사로서, 대기업(연구소)을 거쳐 IT 스타트업 CEO를 맡고 있다. 육아를 위해 다니던 대기업을 퇴사한 뒤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치러 변호사가 된 사례다. 보통의 경력단절 여성과는 놓인 위치가 다르다. 이 대표는 그를 두고 “제가 봐도 대단하다. 제 딸하고 나이가 같은데 생각의 차원이 다르다. 우리 딸도 경력단절인데 단절된 뒤에는 열심히 뭘 안 한다”고 말해 논란을 샀다. 정계 안팎에선 곧장 출산·육아가 여성의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사회구조적 풍토를 무시하고, 원인을 개인의 노력 부족에 돌렸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원종건 씨(가운데)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이해찬 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함께 하트를 만들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 더불어민주당 영입인재 원종건 씨(가운데)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이해찬 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함께 하트를 만들며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보도자료에 일하는 기혼 여성은 ‘팔방미인’으로 수식된 반면, 남성 인사와 관련해선 여성 배우자 ‘내조’의 훌륭함이 쓰여 있는 것도 웃지 못할 대목이다. 홍 대표의 ‘스타트업 도전기’ 첫 단락 제목은 ‘팔방미인 다재다능’, 최 교수의 다양한 사회적 지위를 설명하는 대목에도 ‘팔방미인’이 붙었다. 반면 군인정신을 강조한 김 전 대장 소개글엔 “(배우자가) 39년간 남편의 전투복을 손수 손으로 세탁하고 정성스럽게 다림질했다. 남편의 군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신성한 의무를 대하는 정성을 지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내용이 ‘아내의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실렸다. 전직 소방관 오영환씨의 경우 암벽등반선수인 배우자 김자인씨가 영입행사에 동행했다.

한편 정치권 전반에서 ‘총선 어젠다’가 실종됐다는 지적도 있다. 이관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은 “4년 전에도 지적한 얘긴데 민주당 ‘선거 어젠다’가 뭔지, 어떤 사람을 국회에 보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마치 ‘깜짝쇼’ 하듯 인재영입하고 공천할 거면 선거제 개편을 왜 했느냐”며 “자유한국당도 크게 다를 바 없고, 정의당조차 달라진 모습은 아니다. 만약 비례대표가 크게 늘어난다면 목소리를 갖지 못했던 어떤 분야의 대표들을 국회에 보내겠다 천명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거제 개편 직후 언론이 했어야 할 일은 ‘각 정당이 과연 선거제 취지에 맞는 사람들을 공천할 것인지 집중하라, 국민이 누굴 공천하는지 봐야 한다’고 견제와 감시를 이어가는 역할이었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야당이 제대로 못해서 민주당이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람들을 영입하는 방식을 유지하는데, 당 내부에서 지적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 뒤 “매번 이런 식으로 하면 민주당이라는 조직이 살아남을지 의문이다. 어차피 국회의원을 밖에서 영입해 쓸 거면 누가 민주당 내부 조직에서 적극 일하겠느냐”며 “인재영입(육성)이나 공천제도 문제를 함께 공론화해야 하는데 선거제 개편 이후 갑자기 모든 논의가 잠잠해져버렸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