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vs B’ 보도는 기사 제목에 ‘vs’라는 단어를 집어 넣어 본질과 상관없이 대결 구도를 조장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조국 사태 등 진영 간 대립 구도가 극심한 상황을 반영해 제목에 vs가 들어간 보도가 늘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언론사 데스크들이 일부러 대결 구도를 만들어 주목도를 높이고 수익과 연결시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 보도 데이터 분석 사이트인 빅카인즈에 경향신문, 국민일보, 내일신문, 동아일보, 문화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등 11개 신문사와 KBS, MBC, OBS, SBS, YTN 등 5개 방송사를 대상으로 제목(소제목 포함)에 ‘vs’가 들어간 보도를 검색한 결과 2016년부터 매해 급속히 증가한 것으로 나왔다.

2016년 ‘vs’가 들어간 제목의 보도는 3900건이었다. 박근혜 탄핵 이슈가 전면에 떠오르면서 탄핵 공방이 많은 것으로 나왔다. 하지만 탄핵 이슈마저도 무리하게 공방 처리하는 보도도 있었다.

2016년 12월 9일자 “노무현 탄핵 vs 박근혜 탄핵…어떤 차이점 있나”라는 YTN 보도는 탄핵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무리하게 대결 구도를 만든 내용이다. 박근혜의 경우 초유의 국정농단과 뇌물 혐의를 받아 탄핵을 앞두고 있었는데 사유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는 탄핵을 소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억지로 끌어들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치인들의 말싸움이나 하나의 사실에 대한 해석 공방이 격해지거나 첨예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때 보통 대결 구도를 그려 보도하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억지로 대결구도로 몰아 본질없는 논쟁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2017년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면서 공방식 대결 구도 보도가 쏟아졌다. 2017년 ‘vs’가 들어간 보도는 4468건으로 2017년에 비해 600건 가까이 늘었다. KBS는 지난 2017년 12월 15일 “‘홀대론’ 놓고 공방…한중 합의 성과 vs 최악 외교 참사”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당시 한중 정상 회의가 열렸는데 우리 기자가 현장에서 중국 측 관리 요원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KBS는 이 같은 사건을 들어 중국 측의 홀대론이며 최악의 외교 참사라고 한 야당의 주장과 함께 한중 정상이 합의한 4대 원칙을 높이 평가한 여당의 주장을 묶어 처리했다. 과연 중국 측 홀대론이 있었는지 사실을 확인하기 보다는규정 자체가 애매모호한 홀대론을 여야 공방으로 처리한 것이다.

2018년 ‘vs’가 들어간 보도는 6623건으로 2017년에 비해 2000건 이상 늘었다. 2018년은 한창 미투 증언이 쏟아지고, 혐오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때였는데 언론 매체들이 젠더 이슈를 틀어 ‘性대결’로 몰아가는 행태를 보였다. 예를 들어 수십만 명이 참여해 사회적 여론을 환기시켰던 혜화역 시위의 경우 여성이 피해자인 성범죄 수사가 철저히 이뤄지지 않고 있고, 불법촬영 디지털 범죄에 대한 심각성을 제기하면서 파장이 컸다. 하지만 한 언론은 경찰관이 “결국 혜화역 시위대 주장은 여성이 저지른 성범죄는 봐주란 얘기”라고 말했다는 내용을 실었다. 여성범죄의 심각성을 얘기하는데 논점을 흐려 혜화역 시위를 깎아내리려는 뻔한 말을 비중 있게 실어 대결구도로 몰았다.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1월 13일까지 ‘vs’가 들어간 보도는 7257건으로 나왔다. “검찰 후속인사 vs 청와대 압색 재시도…‘法-檢 전쟁’ 2R”이라는 제목의 2020년 1월 13일자 헤럴드경제 기사는 법무부가 직제개편을 통해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을 대폭 축소할 계획이라는 내용 앞에 검찰이 압수물 상세목록을 제시하지 않고 압수수색을 시도했다는 청와대의 반발을 보도했다. 법무부의 직제개편에 대한 검찰의 반발이 있을지 근거도 부족하고, 검찰이 청와대로 상대로 압수수색을 다시 시도할지도 불확실한 가운데 법무부(청와대)와 검찰의 대결 구도로 몰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세계일보는 지난 7일 “文대통령 신년사에…정부 믿자 vs 서민 고통 체감 못해”라는 제목으로 대통령 신년사에 대한 시민들 반응을 전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기사에 등장하는 시민은 A~D씨다. A씨와 B씨는 “대통령에게 끝까지 힘을 실어줘야 한다”, “평화는 경쟁력이며 우리나라 경제 개선의 길이 될 것”이라고 했고, C씨와 D씨는 “정부가 우리나라 경제를 보는 것과 서민들이 느끼는 것에는 큰 괴리가 있는 것 같다”, “힘들다는 국민들에게 ‘경제가 나아졌다’는 정부의 말이 과연 와닿겠느냐”라고 말했다. 세계일보 보도는 기계적 중립을 형식적으로 맞춘 내용에 가깝다. 서울역 같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시민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아가 정치적 이슈에 대한 의견을 물어 찬반을 균형으로 맞추고 보도하는 식이다.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지난 2019년 12월 16일 부영 이중근 회장에게 2심에서 징역 12년을 구형한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1심 선고를 비판하면서 ‘더 이상 특혜는 안된다’고 구형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많은 언론은 이중근 회장의 호소를 실고, 검찰 주장과 대립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당시 보도 제목 중 하나는 “부영 이중근 2심서 징역12년 구형…특혜 안돼 vs 기회 달라”였다.

‘A vs B’ 보도는 통신사 보도에서도 두드러졌다. 뉴스1의 경우 2016년 3176건, 2017년 3744건, 2018년 3626건, 2019년 2674건이 ‘vs’가 제목으로 들어간 기사로 나왔다. 뉴시스의 경우 2016년 679건, 2017년 980건, 2018년 878건,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1월 13일까지 1245건으로 나왔다. 연합뉴스는 1년치 보도 검색 결과 데이터만 제공하는데 2019년 1월 1일부터 2020년 1월 13일까지 1395건의 보도에서 ‘vs’를 썼다.

언론사 내부의 기자들은 ‘vs’가 들어간 제목으로 자신의 기사가 바뀌는 것을 지켜보고 허탈해하는 상황이 많다고 털어놨다.

통신사 A기자는 “데스크들이 유독 vs를 달아 기사 제목을 고친다. 사안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내용이 조금이라도 대립된 내용이면 무조건 vs를 달아 논란을 키워 대결 구도를 만든다”며 “양비론으로 어거지로 끼워 맞춰 보도해 물타기를 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나쁜 저널리즘의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데스크들이 기사 제목을 수정하는 이유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클릭을 하게 유도하는 방안 중 대결구도 모양을 갖춘 제목의 보도가 가장 손쉽기 때문이다.

다른 매체 B기자는 “양쪽 의견을 실어주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언론은 보편타당한 쪽에 관점을 두고 따져주는 게 맞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는 걸 원치 않은 데스크들이 사안을 분석하고 비판하기보다는 vs를 달아 기계적 중립을 지키고 단순 전달에 그치는 폐해로 나타나고 있다. 현장에 있는 기자들도 이런 제목이 달리면 괴롭다”고 전했다.

특히 네이버 전재료 개편을 앞두고 ‘vs’를 제목으로 집어넣은 보도가 횡행할 것이라고 말한다. 네이버는 오는 4월부터 언론사에 지급하던 전재료를 폐지하고 언론사가 직접 영업하는 홈 기사 중간, 기사 하단 광고에 대한 수익을 지급하기로 했다. 광고영업을 언론사가 직접 담당하면서 클릭 수에 따라 광고 단가가 높아지는 것을 고려할 수밖에 없고, ‘A vs B’와 같은 무리한 제목을 넣어서라도 주목을 받으려고 무한경쟁에 돌입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