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연애’를 선언하는 20대 여성이 늘고 있다. 이유가 궁금하다. 대학가를 찾아가 20대 357명의 얘기를 듣고 기사를 썼다.(2019년 9월20일자 “‘한국남자랑 연애 안해’ 20대 여성 절반이 ‘탈연애’ 왜”)

정부 통계를 보니 ‘여성안심귀갓길’이 2018년 2875개로 4년 전보다 495개 줄었다. 안전 수준이 높아졌다는 뜻일까? 고프로 카메라를 들고 직접 여성안심귀갓길과 그 주변을 걸었다.(10월4일자 “성폭행 미수 발생한 신림동 골목, 한밤중 보이는 건…”)

“경주시청이 지역 청년들에게 ‘30 대 30 미혼남녀 소개팅’을 연다고? 지방정부가 왜?” 직접 보지 않곤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직접 참가해봤다.(12월13일 “중매 나선 지자체··· 30대 30 초대형 소개팅서 생긴 일”)

호기심이 생기면 발로 뛴다. 중앙일보 ‘밀실’팀의 행동 방식이다. 비건(Vegan·채식 유형의 하나), 탈연애, 유기견, ‘82년생 김지영’ 등 호기심의 스펙트럼도 넓고 청년들 관심사와 맞아 떨어진다. “그게 말이(기사가) 돼?”라며 주제부터 ‘킬(발제 취소)’하는 데스크가 없다. 20대 기자들이 자유롭게 발제하고 기사쓰면 교열 정도만 거친 채 출고된다.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 팀의 김지아 기자(왼쪽), 최연수 기자(가운데), 편광현 기자. 사진=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 팀의 김지아 기자(왼쪽), 최연수 기자(가운데), 편광현 기자. 사진=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
▲밀레니얼 실험실 홈페이지 갈무리.
▲밀레니얼 실험실 홈페이지 갈무리.

밀실은 ‘밀레니얼 실험실’의 준말이다. 중앙일보는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 취재를 하는 공간”이라 소개한다. 지난해 7월 꾸려진 이 팀의 구성원은 총 3명, 김지아(29)·최연수(28)·편광현(30) 기자다. 최근 팀을 옮긴 편 기자 자리엔 남궁민(28) 기자가 왔다. 3명이 독자로 운영하면서 1주일에 1~2꼭지씩 기사를 내고 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8일 김지아·최연수 기자를 만나 밀실의 탄생 과정을 들었다.

최근 반응이 컸던 보도는 “배곯는 청춘… 영하4도 새벽, 무료급식소 100명 줄섰다” 제목의 기사다. 청년 빈곤을 다룬 취재물로, 새벽 청년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하는 서울 노량진 강남교회와 안암동 성복중앙교회 현장을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기사는 “어르신들이 보기에 요즘 청년들은 배고픔을 모르는 세대죠. 언론에 비친 밀레니얼 세대의 모습은 밝은 모습이 대부분이니까요”란 말과 함께 “달걀 두 알로 하루를 버틴 적도 있다”,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바나나 다섯 개를 1000원에 사서 버텼다”, “소액대출로 이번 달에도 20만원 당겼다” 등의 청년들 말을 전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니 며느리’를 욕으로 쓴다는 말을 듣고 기자들은 직접 초등학교 앞을 찾았다. 최연수 기자는 “그 사실이 너무나 충격이어서 직접 듣는 데서 시작을 해보자는 마음에 갔다”며 “서대문구 한 초등학교 앞에서 설문조사를 하는데 ‘엄마 김치찌개 장인’, ‘된장찌개 장인’ 이런 말도 욕으로 쓴다고 ‘해맑게’ 말하더라.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신체나 생리현상을 비하하는 욕설도 많았다. 기자들은 이 문제를 ‘더 위험한 여성혐오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로 봤다. 이들은 교사들도 여성혐오를 막기 위한 젠더 교육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짚었고 초등젠더교육연구회 ‘아웃박스’를 사례로 제시했다.

밀실팀 컨텐츠엔 ‘발로 뛰는 기사’가 많다. 탈연애 설문은 신촌, 관악, 안암 등 대학가를 누비며 20대 357명에게 설문을 받았고 국회의원 인지도 조사를 할 땐 온·오프라인으로 527명의 답을 모아 기사를 썼다. 리얼돌이 한창 논쟁일 무렵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리얼돌 공장이 생겼단 소식을 접하고 바로 공장을 찾아갔다. 5개월 간 20개 기사를 쓰면서 만난 사람만 기자 한 명 당 1000여명에 달한다.

김 기자는 “팀 이름처럼 밀레니얼 세대 이야기를 다루거나 밀레니얼이 관심있어 하지만 기성언론이 다루지 않는 것을 다루고자 한다. 취재 방식도 실험적으로 해보자고 의기 투합했다”며 “우리가 다른 선배 기자들처럼 유명인을 인터뷰한다거나 단독 기사를 쓰기는 어렵고, 할 수 있는 게 발로 뛰는 것밖에 없었다. ’무조건 발로 뛰자‘ 생각하면서 취재해왔다”고 밝혔다.

▲밀실팀의 편광현 기자가 신림동 골목과 축구선수 손흥민씨 부친이 운영하는 대안학교 현장을 취재하는 모습. 사진=밀실팀 제공.
▲밀실팀의 편광현 기자가 성폭행 미수 사건이 발생했던 신림동 골목과 축구선수 손흥민씨 부친이 운영하는 대안학교 현장을 취재하는 모습. 사진=밀실팀 제공.

이들이 모인 계기는 편집국장의 기획이다. 지난해 7월 박승희 당시 편집국장이 기자 3명을 국장실로 따로 불러 “별도로 한 달을 줄 테니 하고 싶은 것을 가져와 봐라. 출입처든 돈이든 형식이든 아무 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좋다. 정답은 없다”며 과제를 냈다. “10대, 20대가 볼 수 있는 뉴스를 만들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밀실은 한 달 동안 회의와 공부를 거듭해 나온 팀 이름이다. 기자 셋은 스브스뉴스, 씨리얼, 닷페이스 등 젊은이들 호응을 얻는 매체 사례 분석부터 2017년 중앙일보 기획물 ‘청춘리포트’ 등을 공부하면서 밀레니얼 실험실을 기획했다. 최 기자는 “뭣도 모르는 신입이 ‘디지털 시대의 한국 언론’을 아주 치열히 고민한 기간이었다”고 했다. 한 달 후 방향성, 아이템, 영상·웹툰을 가미한 보도 형식 등을 종합해 국장 앞에서 프레젠테이션 했고 ‘한 달 후 기사를 가져와라’란 답을 들었다. 밀실의 시작이었다.

독자 반응 중엔 ‘중앙일보스럽지 않다’는 글도 더러 발견된다. 사내에서 비판이 나오느냐는 물음에 김 기자는 “선배 기자들이 일부러 언급을 안 한다. 기사 쓰는 기술이 부족하고 아이템이 이상할 수도 있는데 우리가 위축될까 더 존중해주는 분위기”라며 “‘기사 쓸 맛 나겠네’라며 북돋아 주는 기자들도 있다”고 말했다. 최 기자는 “중학생 독자가 ‘잘 읽고 있다’는 메일을 보내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밀실은 기자 개인에게도 교훈으로 남았다. 최 기자는 “젊은 친구들이 뉴스를 안 본다고 하지만 그들이 보는 뉴스를 충분히 발굴할 수 있고 그런 아이템 또한 많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김 기자도 “앞으로 기자를 하면서 스스로 다루고 싶은 기사를 이렇게 낮은 연차 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쓸 기회가 있을까”라며 “귀한 시간이라 여긴다. 일이 고될 때도 있지만 보람도 그만큼 커 지난 6개월 업무 만족도도 아주 높았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출입처가 없어도 여전히 사람들이 원하는 기사는 정말 많구나’란 점도 느꼈다. 언론이 사양산업이란 말이 많은데 여전히 기자가 발굴해서 기사 쓰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고 반응도 높다”며 “앞으로 보도자료 관련 기사나 스트레이트는 인공지능이 맡겠지만 누군가를 설득해서 답을 받아내고, 몸을 부딪히면서 취재하는 기자 일은 여전히 다양하고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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