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오는 7월 아마존, 구글앱스토어, 페이스북 등 온라인 플랫폼의 중소 입점업체 대상 ‘갑질’을 막기 위해 온라인 플랫폼 시장 규칙을 시행한다. 인터넷·모바일 구매 일상화로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의 불공정 거래 우려가 높아지면서, 한국도 관련 법제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U 집행위는 지난 2016년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의 거래관행 실태를 조사한 결과, 불공정 거래관행으로부터 중소기업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사 결과 온라인 플랫폼으로 상품을 공급하는 EU 역내 중소기업 42% 가운데 절반 가까운 46%는 플랫폼 사업자와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플랫폼 매출액이 절반 이상인 33%는 불공정행위를 반복적으로 겪었다고 답했다. 지난해 EU 차원의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고, EU 이사회와 의회는 올해 2월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공정성 및 투명성 강화를 위한 2019년 EU 이사회 규칙’을 제정해 올해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EU가 마련한 이번 규칙은 온라인 거래 생태계의 공정성·투명성을 규율하기 위한 사실상의 세계 최초 입법례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8일 ‘EU의 온라인 플랫폼 시장 불공정거래행위 규율 강화’ 보고서(강지원 입법조사관)에서 “플랫폼 사업자에게 우월적 지위가 발생하는 것은 전세계적 현상인데, EU는 그러한 P2B(Platform to Business)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불공정 행위 규율방안으로 회원국 뿐 아니라 다른 역외 국가들도 참고할 수 있는 세계 최초 입법모델을 제시한 것”이라 평가했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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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 조항의 온라인 플랫폼 규칙은 △거래조건 공정화를 위한 약관 통제 △투명성 강화를 위한 정보공개 △중소 판매업체에 대한 실효성 있는 피해구제 수단 등을 골자로 한다. 규칙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검색·배열 순위 투명성을 보장해야 한다. 웹사이트 화면에 배열되는 업체·상품 등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변수와 각 변수 사이의 상대적 중요도가 약관 명시 대상이다. 검색엔진 역시 검색 노출순위 결정에 활용되는 알고리즘의 매개변수 중 가장 중요한 변수 및 상대적 중요도를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공개해야 한다. 특정 업체의 경제적 대가 지급이 검색 배열이나 순위에 영향을 미칠 경우 역시 약관에 명시(온라인 플랫폼 사업자)하거나, 일반 대중에 공개(검색엔진)해야 한다. 다만 검색·배열 순위 결정에 사용되는 ‘알고리즘’ 자체를 공개할 필요는 없고, EU법상 보호되는 영업비밀은 공개대상이 아니다.

이유 없이 플랫폼 이용자의 상품 공급을 제한하거나, 일방적으로 약관을 변경하는 것도 금지된다. 상품 공급을 중단하기 전 이용자에게 그 사유를 명확히 알려 이의제기 기회를 줘야 하며, 특정 이용자의 상품 공급을 중단할 경우 최소 30일 전에 알려야 한다. 약관은 이해하기 쉬운 용어로 작성해 거래의 전체 과정에 걸쳐 이용자에게 제공돼야 하며, 플랫폼 사업자가 약관 내용을 변경하려면 최소 15일 전 변경사항을 이용자에게 고지(사기·스팸 등 예측하지 못한 급박한 위험 예외)해야 한다. 플랫폼 사업자는 약관에 반드시 이용자의 계약해지권을 기재하고, 불리한 변경사항을 이용자에게 소급 적용해선 안 된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나 검색엔진이 특정 이용자를 ‘차별대우’하거나, ‘최고 우대’할 경우 그 내역과 더불어 근거가 되는 경제·상업·법적 고려 사항을 약관에 기재해야 한다. 특히 최고우대조항과 관련한 내용은 대외적으로 공개하도록 했다.

또한 이용자를 위한 내부 고충처리 시스템을 마련해, 관련 정보를 일반 대중이 볼 수 있도록 공시해야 한다.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는 이용자가 무료로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내부 고충처리 시스템을 마련해 플랫폼 서비스 사용과 관련한 고충 사항을 적정 기간 내에 처리할 수 있어야 하며, 처리 결과가 반드시 이용자에게 통보돼야 한다. 고충사항 총 접수 건수, 주요 유형, 평균 처리기간, 처리결과에 대한 조합적 통계 등은 반드시 공시돼야 한다. 다만 연 매출액이 1000만 유로 미만이면서 종업원이 50인 이하인 플랫폼 사업자는 재정부담을 고려해 고충처리 시스템 설치 의무가 면제된다.

▲ 유럽연합 온라인 플랫폼 시장 규칙 주요내용. 출처=국회입법조사처
▲ 유럽연합 온라인 플랫폼 시장 규칙 주요내용. 출처=국회입법조사처

규칙 위반행위과 관련해 금지를 청구하는 단체소송제도 도입된다. EU는 온라인 플랫폼 이용자 대표에 ‘정당한 이익’이 있는 단체·공공기관이자, 이용자 집단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는 비영리단체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각 회원국은 원고적격을 갖춘 국내 단체를 지정할 수 있으며, EU 집행위는 회원국별 지정 단체 명단을 취합해 EU관보에 게재할 수 있다.

EU의 이 같은 규칙은 입점업체 대상 불공정 행위를 막는 데서 나아가, ‘시장투명성’을 소비자 구매선택권 차원에서 보장한다는 의미가 있다. 입법조사처 보고서는 “오픈마켓(아마존, 이베이 등), 앱스토어, 가격비교 사이트 뿐 아니라 판매업체가 온라인상의 소비자에게 자사 상품을 노출시키는 매체가 될 수 있는 SNS(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검색엔진 역시 규칙 적용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규율범위가 대단히 넓다”며 “특히 판매업체들과 직접 거래관계를 맺지 않은 검색엔진이라도 소비자들의 구매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검색 알고리즘의 주요 매개변수 공개를 의무화한 것은, 온라인 생태계에서 소비자들의 합리적 구매선택권에 전제가 되는 ‘시장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고 봤다.

앞서 EU 집행위는 2017년 구글이 검색결과에 경쟁사보다 자사 사이트(구글 쇼핑)를 우대해 배치한 행위가, EU경쟁법상 시장지배적 남용행위라며 24억2000만유로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보고서는 “이번 규칙은 시장지배적지위에 이르지는 않지만 중소 판매업체에 우월적 지위를 행사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EU 경쟁법의 규제공백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적용대상은 직전연도 소매 매출액(1000억원 이상)이어서, 입점업체와 소비자 간의 구매거래를 중개하는 역할만 하고 자신이 직접 판매하지 않는 일부 온라인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공백이 존재한다”며 보완 필요성을 시사했다. 관련 법안으로는 지난 2017년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형 인터넷 오픈마켓 불공정거래 해소를 골자로 대표발의한 ‘사이버몰 판매 중개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이 있으나, 이후 논의 없이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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