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관련 소송 중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소송이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1990년대 2건이었던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소송은 2010년대 들어 30건으로 늘어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디지털 환경 변화에 따라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침해가 충돌한 배경과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승균 언론중재위원회 홍보팀장이 쓴 한양대 언론정보대학원 석사학위논문 “사자(死者)의 인격권 침해에 대한 연구 -전직 대통령 관련 판례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관련 소송은 15건으로 역대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소송 전체 중 34.1%를 차지했다. 다음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 14건(31.8%), 박정희 전 대통령이 9건(20.5%),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구 주석(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계승)이 각각 1건(6.8%)으로 나왔다.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소송은 비언론 영역에서 발생한 비율이 68.2%였고, 언론 영역에서 발생한 비율은 31.8%였다. 노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은 모두 언론이 아닌 개인에 의한 것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5건 모두 언론 보도 또는 방송에 의해 발생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4건 중 2건이 언론에 의해 발생했다.

남승균 팀장은 “비언론 사건의 경우 인터넷 홈페이지나 커뮤니티에 유포된 내용이 문제가 되거나, 연설, 강의, 강연 등 현실 공간에서의 발화가 SNS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확산되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은 명예훼손 사건의 증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심급별로 진행된 소송을 한 건으로 보고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사건을 분류하면 모두 16건으로 나오는데 이 중 형사소송은 8건이었고, 피고에게 유죄가 선고된 경우는 5건(62.5%), 무죄가 선고된 경우는 3건(37.5%)로 나왔다. 민사소송은 7건으로 분류됐고, 이중 6건(85.7%)은 원고가 승소 또는 일부 승소했다. 형사 소송보다 민사 소송에서 표현자 책임을 묻는 비율이 높게 나온 것이다.

일례로 박정희 전 대통령 죽음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은 손해배상 사건 1심에서 1억원 의 손배액이 인용됐다. 2심 재판부는 제작사가 상상력에 기초한 픽션이라는 자막을 삽입하고, 유족에게 상처를 준 점에 대해 유감을 표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조건으로 원고가 1억 원을 제작사에 돌려주는 내용으로 합의를 조정한 바 있다.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사건 중 언론매체 혹은 언론인이 피고가 되는 사건은 형사 8건, 민사 9건으로 나왔다. 표현자가 승소한 사건은 민사 7건 중 1건으로 나왔고, 형사는 8건 중 3건으로 나왔다.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표현물 중 가장 많은 침해유형은 명예훼손(43건)이었고, 모욕·조롱이 28건, 악의·비방으로 인한 침해가 21건, 사생활 침해가 10건으로 나왔다. 혐오 침해유형은 3건으로 나왔다.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은 ‘비방의 목적’을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지만 2013년 일베 회원이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관을 ‘택배’로 비유한 사건과 관련해 재판부가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이 크다며 모욕죄를 적용해 선고하는 등 “모욕, 비방, 조롱 등이 양향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모욕·조롱의 표현물이 나온 사건 패소율은 70%로 상당히 높았다. 악의·비방 표현이 나온 사건 패소율도 56.7%로 나왔다. 남승균 팀장은 “이런 경향성은 사자명예훼손 소송에 있어서 모욕· 조롱이나 악의·비방이 포함된 표현물이 소송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는 판단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 일베가 변형한 그래픽이나 이미지를 사용해 논란이 된 방송화면 갈무리.
▲ 일베가 변형한 그래픽이나 이미지를 사용해 논란이 된 방송화면 갈무리.

형사와 민사 소송 결과가 다른 경우도 나왔다. 주진우 기자 관련 소송에서 1심 형사 재판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 함보른 탄광에서 광부들을 만난 자리에 서독 대통령은 없었다는 것을 과장해 표현했을 뿐 진실에 부합하다”고 했지만, 민사 1~3심은 진실상당성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거나 형사 재판과는 다른 결과를 내놨다.

사자명예훼손은 공연성과 허위사실의 적시, 그리고 고의라는 주관적 구성요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판결 44건 중 공연성을 인정한 건 29건, 허위사실 적시는 27건으로 나왔다. 반면에 고의는 14건만 인정됐다.

위법성 조각 사유가 적용된 판결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전체 44건 중 진실성과 상당성이 적용된 사례는 각각 4.7%와 16.3%로 나왔다. 공익성 적용은 44.2%였다. 표현자가 승소한 사건 13건의 위법성조각사유를 분석한 결과에선 진실상당성이 적용된 경우는 8건, 공익성은 12건으로 나왔고, 반면 표현자가 패소한 사건 30건 중 진실 상당성은 단 한건도 적용되지 않았다. 공익성은 12건이 적용됐다.

남승균 팀장은 “특히 대통령 관련 사자명예훼손 사건에 있어서 일베에 게시된 표현물에도 공익성이 인정되는 등 모욕 조롱이나 악의 비방표현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큰 표현물에 대해서도 공익성이 인정된 경우가 9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남승균 팀장은 “공중파 방송이나 한국사 수험서 교재에 일베에서 유포된 노무현 대통령 합성사진(노(奴)라고 글씨가 낙인이 찍힌 드라마 추노의 등장인물에 노 전 대통령 얼굴을 합성한 사진)이 게재돼 논란이 일었는데, 합성사진은 사실의 적시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이 내려졌다. 물론 합성사진을 풍자의 일환으로 볼 여지도 있겠으나 사자의 인격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볼 부분도 있는 만큼, 인격권의 구제를 위해서는 공익성 표지에 대한 판단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합성사진과 같은 표현물이 공적 토론에 기여하는 바를 심사해서 인격권 침해 정보를 판단하는 것을 고려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남승균 팀장은 딥페이크와 같은 영상 합성 기술의 발전에 따라 허위조작정보 생성이 용이해지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인격권 침해 범위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공익성 표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피해구제의 영역 또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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