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지난 8일 유명 현대무용가 류아무개씨(50)에게 성폭력특별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이 선고됐다. ‘무용계 첫 미투’라 불린 사건이다. 2015년 4~5월 자신이 가르치던 20세 여성 제자를 수차례 강제 추행하고 성관계까지 시도한 죄다. 사건이 공론화된 데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용기를 내 사건을 밝힌 피해자와 실명으로 피해자를 지지한 예술인 804명, 이들을 모은 14명의 ‘활동가’들이다. 모두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위드유’라 불린다. 미디어오늘은 선고 직후 ‘위드유’에서 활동한 문화기획자 김유진씨(43), 무용평론가 박성혜씨(55), 안무가 장혜진씨(39)를 만났다. 

“문화예술계에 만연한 권위주의와 비민주적 현장에 균열을 가하는 또 하나의 사건이 되리라.” 선고 직후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이 외쳤다. ‘가해자를 위한 무대는 없다’란 현수막을 들고서다. “지금까지 무용계는 피해자가 사라지는 것만 봤지만, 이제는 아니”라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다. 

위드유는 무용계의 최초의 ‘연대’다. 이들 중 가장 오래 무용계를 지켜본 박성혜씨는 피해자가 무용계를 떠나거나 사건 자체를 조용히 은폐하는 경우만 목격해왔다. “이제는, 더 이상은 안 된다.” 박씨는 “여기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하나의 메세지라도 남기기 위해 지난 6월 위드유에 함께 했다. 김유진씨와 장혜진씨도 마찬가지다.

위드유 시작은 기적같았다. 처음엔 사건을 알게 된 ‘오롯’의 무용인들이 참담한 심정으로 긴급회의를 열었다. 문화예술계 미투운동이 시작된 지 3년이 넘은 때였다. 이젠 무용계도 바뀌어야 한다는 판단에 무용인 12명이 사건을 알리고 무용계 반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실명으로 냈다.

▲지난 1월8일 오전 사건 선고공판 직후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위드유'가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유죄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혜진씨(왼쪽), 박성혜씨(가운데), 김유진씨도 이날 법정에 참석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1월8일 오전 사건 선고공판 직후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위드유'가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유죄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혜진씨(왼쪽), 박성혜씨(가운데), 김유진씨도 이날 법정에 참석했다. 사진=손가영 기자

 

12명은 2주 후 803명으로 순식간에 불어났다. “50명도 많이 모인 것”이라며 시작한 일이었다. 무용계를 비판하는 SNS 글에 ‘좋아요’만 눌러도 선후배로부터 “너 왜 눌렀니” “(지도)교수님이 본다”란 연락을 받는 곳이 무용계였다. 무용인 동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지지한다’고 댓글을 썼고 용감하게 공유하는 이들도 늘었다. 그렇게 6월30일 문화예술인 803명과 84개 단체가 지지성명에 실명을 공개했다. 이는 법원에 제출된 최초의 탄원서가 됐다. 

홀로 법정 찾던 젊은 무용인들의 발걸음 

이후 6개월을 꼬박 재판에 집중했다. 김유진씨는 “800여명 지지를 성명서 하나로 끝낼 수 없다는 책임감이 자연스레 방청연대로 이어졌다”고 했다. 활동가들은 5차례 공판을 빠짐없이 참석하며 참가자들을 모았고, SNS에 후기를 공유했다.

그러는 동안 탄원서도 4차례 더 제출했다. 9월엔 263인의 탄원서를, 11월엔 피해자에 대한 위력 행사를 부인하는 류씨와 증인들을 말을 반박하는 연대 탄원서를 두 차례 걸쳐 냈다. 자필로 개인 탄원서를 쓴 무용인들도 6명이나 있었다. 탄원서가 더 늘어난 이유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가 횡행하면서다. 장혜진씨는 “재판이 마무리 될 쯤엔 아침드라마 치정극 수준의, 입에 올리기도 힘든 소문이 나돌았다”며 분노했다.

숨 가쁘게 흐른 시간이었다. 모두 생업을 하면서 위드유 일을 챙겼다. 한 활동가는 재판 동안 살이 2kg나 빠졌다. 박성혜씨는 “무용인 대부분이 이런 일에 초보다. 성명서 하나를 쓰는 데도 2~3일이 걸렸다. 새벽 1시 카카오톡방에 글이 올라오면 10여명이 달려 들어 함께 첨삭을 했다. 자칫 사건이 선정적으로 보일까 문구 하나하나 손봤고, 변호사 자문도 구했다. 각자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 했다”고 말했다. 

▲지난 1월8일 오전 사건 선고공판 직후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위드유'가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유죄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지난 1월8일 오전 사건 선고공판 직후 무용인희망연대 '오롯#위드유'가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유죄판결을 환영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손가영 기자

 

‘빨갱이’ ‘정치적 의도’ 흠집내기도

“자기 요즘 운동한다며? 자기 빨갱이야?” 박성혜씨는 어느 공연장 로비 한복판에서 만난 무용계 인사가 한 말을 듣고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무용계 일각의 시선이기도 했다. 박씨는 “더 나쁜 놈들도 많은데 왜 그래?” “알지도 못하는 피해자와 30년 봐온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그에게 그러니” 등의 말도 들었다. ‘쟤네들 좌파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 등은 위드유 구성원이 쉽게 듣는 말이었다. 

다른 활동가들도 압박에서 자유롭진 않았다. 위드유 구성원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소문도 왕왕 돌았다. 무용계에서 한 발 벗어나 있는 김유진씨는 “옆에서 지켜보면 무용인들 관계가 아주 촘촘하더라. 한 다리 건너 다 아는 사이기에 기본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이 있다”며 “예로 한 무용과 대학원생이 예전의 지도교수와 하던 통화를 들었는데, 지금 지도교수도 아닌 사람이 그의 일정과 진로를 다 짜주더라. 상하 결속이 대단했다”고 말했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박성혜씨가 위드유에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잘못된 일은 잘못됐다 말하는 것”이었다. 박씨는 “본질을 왜곡시키는 관습적 시선들이 많았다. 사건을 안 보고 개인과의 관계나 업적을 잣대로 사건을 봤다”며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음주운전을 해도 되느냐? 이건 사람, 업적을 떠난 옳고 그름의 문제다. (무용계에선) 아무도 이런 애길 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상깊은 건 젊은 무용인들의 관심이었다. 위드유에 참가한 이들 대부분이 나이가 젊은 축의 무용수들이었고 입지가 있는 장년층 이상의 무용인은 적었다. 방청연대와 따로 재판을 보러 간 젊은 무용인들이 재판마다 1명씩은 있었다. 박씨는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을 법정에서 만난 적도 있다. 

“빼앗긴 무용인의 신체주권, 찾고 돌려주자”

장혜진씨는 무용인들에게 ‘몸의 주권을 되찾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에게 심리적 종속감을 만드는 무용계 특유의 문화가 있다는 지적이다. 장씨는 “‘팔 들어’ ‘꿇어’ ‘배 넣어’ 명령어 자체로 교육이 이뤄지면서도 (학생들이) ‘no’를 하는 방법은 배우지 않는다. 이런 통제가 훈련의 선을 넘어 모든 것을 포섭하는 통제로 확대되면서 (선생의) 명령·통제가 당연시되는 문화가 있다”며 “무용인들에겐 그에 반대하면 좋은 무용수가 되지 않는다는 두려움이 있다. 신체 주권을 빼앗기면 다시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성혜씨는 “많은 이들이 판결에 기뻐했지만 사실 이 사건은 비극이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성찰해야 할 일이고 더 이상 무용계 풍토가 병들지 않게 만들어나가야 한다”며 “위드유는 맨 앞줄에 서기만 했다. 그 뒤와 옆은 다른 분들이, 다른 연대가 자발로 나서줬기에 이 엄청난 대열이 짜여졌다. 이 줄이 만들어진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위드유는 향후 과제를 다시 논의해 나갈 예정이다. 김유진씨는 “이 사건 2·3심을 끝까지 지켜볼테지만 구체적으로 뭘 할 것이냐는 이제부터 논의해야 한다”며 “위드유로 배운 건 ‘무용계에 말 걸기’다. 내가 말 걸고 싶은 대상에 진심을 다해 내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지 않고선, 단순히 슬로건 하나 외쳐선 사람을 모을 수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장혜진씨는 “처음엔 나도 ‘너는 얼마나 감수성 있는 사람이냐’는 검열을 두려워했고 이런 생각이 연대를 막았다. 위드유를 하고 교육도 받으면서 두려움을 깼다”며 “‘이럴 땐 어떻게 해요?’라며 물어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겼다. 이전엔 답을 못했지만 지금은 ‘이쪽에 연락해봐’라며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이게 가장 달라진 점이고 앞으로도 (무용계는) 달라질 것”이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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