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자 여러분이 와주신 것 자체로 이미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에 대한 사회적 연대가 같이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된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의 기자간담회에서 위원회 권한과 실효성, 지속성 등을 놓고 질문이 쏟아졌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사회의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수락에 앞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서 자율성과 독립성을 전적으로 보장해달라는 조건을 제시했고, 삼성은 수용했다. 여러 번 다짐과 확약을 받았다”고 했다.

당초 ‘간담회’라 밝혔던 이날 행사는 100명 넘는 기자들로 사실상 대규모 기자회견이 됐다. 취재기자 100여명, 영상 카메라 10여대가 기자회견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11층 회의실을 채웠다. 간담회 진행 관계자는 질의응답이 30여분째 이어질 무렵부터 취재진에 수차례 마무리 순서라고 당부했지만 질문이 끊기지 않았다. 답변 자리는 질문 요청이 쏟아지는 가운데 끝났다.

기자들은 위원회가 삼성 경영진을 어느 선까지 감시하고 고발할지, 삼성이 권고를 얼마나 받아들일지, 위원회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재판 이후 얼마나 지속될지 등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노동계 지적과 언론보도로 알려진 김 전 대법관의 반노동 이력에도 질문이 나왔다.

▲9일 위원장 내정 관련 입장발표에 나선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사진=김예리 기자
▲9일 삼성 준법감시위원장 내정 관련 입장발표에 나선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사진=김예리 기자
▲당초 ‘간담회’라 밝혔던 이날 행사는 100명 넘는 기자들로 대규모 기자회견이 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당초 ‘간담회’라 밝혔던 이날 행사는 100명 넘는 기자들로 대규모 기자회견이 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당초 ‘간담회’라 밝혔던 이날 행사는 100명 넘는 기자들로 대규모 기자회견이 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당초 ‘간담회’라 밝혔던 이날 행사는 100명 넘는 기자들로 대규모 기자회견이 됐다. 사진=김예리 기자

언론에 ‘진보의 상징’, 반노동 전력 지적 “준법감시위 활동으로 실수 돌아볼 것” 

삼성그룹은 최근 준법감시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장에 김 전 대법관을 내정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장인 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이 지난해 말 재판 도중 “정치권력으로부터 또 다시 뇌물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을 그룹 차원의 답”을 요구한 데에 응답 격이다.

삼성의 김 전 대법관 내정 소식에 언론의 이목이 집중됐다. 언론은 김 전 대법관을 두고 ‘진보의 상징’ ‘진보의 대변자’ 등 표현을 써 그의 위원장 내정을 삼성의 파격 행보로 묘사했다. ‘구의역 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삼성전자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의 지원보상 이행합의 조정, 고 김용균씨 사망 관련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를 이끈 전력이 주목을 받았다. 반면 유성기업 노조파괴나 기아자동차 불법파견 등 노동사건에서 담당변호사로 사측을 대리하고, 대법관 시절인 2009년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불법 경영승계 혐의에 무죄 선고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지난 7일 유성기업 대리를 철회했다.

김 전 대법관은 노동탄압 사건에서 사측을 대변한 전력을 묻는 질문에 “실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장 내정 규탄) 기자회견이 열린 사실을 알고, 앞서 성명 내용도 들었다. 제가 미처 헤아리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제 잘못이다. 저의 실수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명은 ‘규탄한다’고 표현했지만 그걸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준법감시위원회에서 본분을 잊지 말고 대의에 충실하라는 채찍의 말로 이해한다”고 했다.

▲9일 삼성 준법감시위원장 내정 관련 입장발표에 나선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사진=김예리 기자
▲9일 삼성 준법감시위원장 내정 관련 입장발표에 나선 김지형 전 대법관(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사진=김예리 기자

“권고 안 받으면 홈페이지 게재, 형사고발 가능성 열어둬”

김 전 대법관은 이날 위원회 운영 방안을 소개했다. 위원회는 이사회 주요 의결사항에 법위반이 없는지 사전과 사후 검토하고, 법 위반 소지가 있는 사안에 보고와 조사를 할 예정이다. 삼성에 시정‧제재를 직접권고하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삼성이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위원회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홈페이지 직접신고 체계도 만들겠다고 했다. 그는 감시활동 중 발견한 위법 사실에 권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직접 형사고발할지 묻는 기자 질문에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했으나, 개인 소견이며 구체적 운영 방식은 미정이라고 단서를 붙였다.

김 전 대법관은 “위원회는 설치 이후 불거진 사안을 다루는 것이 기본원칙”이라고 밝혔다. 이에 한 기자는 “설치 계기와 동떨어진 활동 아니냐”는 재질문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의 확정판결이 끝나면 위원회가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는 “상설기구이고 지속 운영될 것이다. 지속성에 우려가 있다면 우리 사회의 위원회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날 직접 고른 인사라 밝히며 준법감시위원 내정자 6명을 소개했다. 회사 측에선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공헌업무 총괄고문이 참여한다. 이인용 고문은 MBC 보도국 부국장을 역임한 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사장을 지냈다. 나머지 외부위원 5명은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 봉욱 변호사,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 권태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원 교수, 심인숙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다. 이 가운데 권태선 공동대표는 한국일보 출신으로 한겨레 편집국장과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대표이사를 맡았다.

김 전 대법관은 삼성전자‧물산‧생명‧SDI‧전기‧화재 등 7개 계열사간 사전 협약을 맺어 위원회 활동 근거를 마련하고, 이사회 결의를 거쳐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날 유성범대위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삼성전자노조 등은 간담회에 앞서 아침 10시 법무법인 지평 입주 건물 앞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발족과 김지형 변호사 위원장 내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편 이날 유성범대위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삼성전자노조 등은 간담회에 앞서 아침 10시 법무법인 지평 입주 건물 앞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발족과 김지형 변호사 위원장 내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김예리 기자

김 전 대법관은 위원장으로 내정된 경위를 밝히며 “삼성의 진정한 의지에 대한 의심, 실패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스스로의 역량 부족을 이유로 피하려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삼성이 먼저 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 중요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뭔가를 하는 편이 낫다고 봤다”며 “저 혼자가 아니라 우리 시대, 우리 사회가 함께 해줄 것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김 전 대법관은 이재용 부회장을 직접 만나 위원장 제의에 대해 논했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달라는 요구에 이 부회장이 “흔쾌히 응했다”고 했다.

한편 ‘노조파괴 범죄자 유성기업·현대차자본 처벌 한광호 열사 투쟁승리 범시민대책위원회’와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삼성전자노조 등은 이날 간담회에 앞서 아침 10시 법무법인 지평 입주 건물 앞에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발족과 김지형 변호사 위원장 내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측은 미디어오늘에 김 전 대법관의 위원장행을 두고 “80년을 이어온 삼성범죄의 역사가 아무런 법적 권한 없는 사내 감시기구 하나로 달라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이재용 단죄를 막는데 쓰이고, 위원회 노력과 무관하게 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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