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인터뷰를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따옴표 저널리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해리스 대사 발언을 전달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비판이다. 특히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격해지면서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호르무즈 파병 관련해선 해리스 대사 입장을 따져 묻고 답변을 이끌었어야 했다는 쓴소리가 나온다.

KBS는 지난 7일 해리스 대사와 단독 인터뷰를 리포트로 내보냈다. 해리스 대사는 KBS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남북관계의 성공이나 진전과 더불어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기 원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과 배치된 내용이다.

또한 해리스 대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남한 답방 추진과 비무장지대(DMZ)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동 등재 등 남북협력 방안을 말한 것에도 “그런 조치들은 미국과 협의 하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문 대통령 구상에 찬물을 끼얹는 내용으로 일국 대사의 발언으로는 이례적이다. 해리스 대사는 “우리는 필요하다면 오늘밤이라도 싸울 준비가 돼 있다”며 강경 발언도 쏟아냈다.

특히 해리스 대사는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는다. 저는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길 원한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 정부의 파병을 요청한 미 정부 당국자의 발언이라 상당한 파장이 예상됐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 발언은 너무나 쉽게 파병해야 한다는 당위로만 끝나버렸고,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KBS가 단독 인터뷰 기회를 살려 해리스 대사의 파병 요청 발언 등을 따지면서 미국 정부의 속내 혹은 파병 정당성을 내세우는 미국의 근거를 캐물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이란 충돌로 호르무즈 해협 파병은 곧 국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도 상황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끈질긴’ 인터뷰가 진행됐어야 했다.

당장 지난 8일 열린 KBS 이사회에서도 해리스 대사 인터뷰에 비판이 쏟아졌다.

PD저널에 따르면 KBS 조용환 이사는 “이날 해리스 대사가 남북관계를 두고 한 말은 그간 미국이 반복해온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인데 그대로 전파에 실어 내보낼 가치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한국 공영방송이라면 미국 대사가 국민을 모욕하는 태도에 비판을 제기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조용환 이사는 KBS 인터뷰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장문의 질문을 서면으로 준비했다. 조 이사는 “미국과 이란의 대립으로 위기가 고조된”이라는 표현을 쓰고 해리스 대사가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요구하는 것을 강조한 방송 내용에 “사태의 진실을 왜곡해 미국의 책임을 가리고 이란에게 책임을 전가하도록 시청자를 오도할 위험이 있다”며 “전쟁위험이 고조된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군의 파병을 요구하는 것은 이란과 한국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만들고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 한국을 부당하게 개입시킴으로써 한국의 국익과 한국인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 7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KBS 인터뷰 화면.
▲ 지난 7일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의 KBS 인터뷰 화면.

조용환 이사는 “미국대사의 인터뷰 내용은 하나같이 미국의 세계전략에 한국을 일방 종속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을 좌절시키려는 것으로 한국의 주권과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더구나 그 내용은 그동안 여러 언론이 많이 보도해 조금도 새로울 것이 없다. 이 시점에 굳이 미국대사의 입을 빌어 미국 요구를 공사(KBS)가 시청자들에게 강조해 방송할 시의성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의 입장과 요구만을 되풀이 전달하고 강조하는 언론 보도들로 인해 국민의 인식을 왜곡하고 정부의 독자적 정책 수립과 추진을 방해하는 실정”이라고 혹독히 비판했다.

이에 김종명 보도본부장은 신년기획으로 추진한 미중일 3개국 인터뷰라고 설명하면서 “외교안보 전문가 등을 통해 반론 내지는 분석해주는 리포트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강형철 이사는 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해리스 대사의 파병 요청 발언은 우리 국민 생명과 연결돼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에서 반문했어야 한다”며 “결과적으로 미국이 원하는 이슈를 메이킹해줘버렸다. 정보원(인터뷰이) 자체로 힘 있는 사람 말을 받아쓰기 함으로써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올만 하다”고 말했다.

강 이사는 자신의 SNS에서도 이번 해리스 대사 인터뷰와 상반된 BBC 인터뷰 사례를 소개했다.

2007년 5월 16일 주UN미국 대사직을 마친 존 볼턴을 영국 BBC 라디오4 채널이 인터뷰를 했는데 당시 진행자 존 험프리스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강경 입장을 밝힌 존 볼턴에게 “그런 접근이 근본적으로 실책 아니었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쏟아낸 질문은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했나요?”, “당신은 사담 후세인이 실각한 후 중동이 더 안전한 장소가 됐다고 정말 믿습니까?”, “그런 부차적인 생각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더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등 이었다고 한다.

강형철 이사는 “공영방송 인터뷰어는 천부인권의 가치, 사해동포주의(국제주의) 가치를 바탕으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리스 대사 인터뷰는 인터뷰이의 일방적 발언을 전달하는데 그치면서 공영방송이라면 응당 했어야할 질문을 하지 못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