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기업 이사회에 여성 이사를 1명이라도 넣자는 법이 상임위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반대로 법안이 사실상 무력화했다.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 최소 1인 이상 여성이사를 둬야 한다고 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서 이 의무규정에 강제력을 없애 권고규정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25일 국회 정무위 회의록을 보면 정무위에선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발의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일부개정안’을 수정 의결했다.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가 이사회를 구성할 때 특정 성(性)의 이사로만 구성하지 않도록, 즉 최소 1인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두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날 정무위원장인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원래 법안은 2조원 이상 주권상장법인 이사회에서 3분의 1은 다른 성이 차지할 수 있도록 외국 입법례를 따라 3분의 2가 특정 성에 의해 지배받지 않도록 했습니다만 이번 법은 최소한 1명 이상이 다른 성으로 충족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어떤 큰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장제원 의원 페이스북
▲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장제원 의원 페이스북

이틀 뒤인 11월27일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전상수 국회 수석전문위원과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이 이 법안에 반대했다. 

전상수 위원은 체계자구검토보고서에서 “현행 법체계상 공적 영역에서는 성별균형에 대한 선언적 노력의무 규정이 있으나 민간영역에 대해 강행규정으로 이사회 성별규성에 관한 의무규정을 도입하는 것은 영업의 자유·민간영역의 사적자치 측면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정무위에서 올라온 개정안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의 이사로 구성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부분을 전 위원은 “아니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수정의견을 냈다. 또 이사회 성별 구성 규정을 2년 내로 시행하라는 부칙조항을 삭제하자는 의견도 냈다. 

장제원 의원이 동의했다. 장 의원은 “2조원 이상 되는 기업의 이사에 여성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고 보고, 저는 자연스럽게 여성들이 이사회에 많이 진출할 걸로 본다”며 “이런 법 자체가 민간기업에 대한 압력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성평등도 중요하지만 민간기업에 자율권이 더 중요하다”며 “민간영역에까지 이렇게 강조하는 건 오히려 역차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정무위에서 그런 부담 부분은 지적을 했지만 그 정도의 양성평등 정신에 대해 여야 위원들이 대체로 지지 발언도 많이 해서 좋은 의미의 법이 통과됐다”고 했고, 여상규 법사위원장(한국당)도 “제 방에도 여성단체에서 왔다 갔는데 자신들이 요구하는 입법 취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고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가지 않게끔 하는 최소한의 규정만 해서 정무위에서도 이견 없이 통과됐다”며 장 의원을 설득했다. 

장 의원은 “민간기업 이사회에 성으로 규정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이냐”며 “철저하게 과잉입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 사진=istock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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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에서 여야 합의로 처리한 법안을 법사위가 체계·자구 수정이 아닌 법안 취지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에서 합의한 법안에 월권을 행사한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날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무위에서 충분히 논의를 거쳐 올라온 안이기 때문에 원안대로 가는 게 정무위 논의 취지를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특별히 체계나 자구의 수정이 아니라면 정무위에서 논의한 내용을 저희가 되돌리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를 들어 해당 법안이 과하지 않다는 주장도 나왔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은 “공기업에 관해서만 임원 규정을 제한할 수 있고 사기업의 경우에 제한할 수 없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말씀드린다”며 해외 법안을 소개했다. 

▲ 국회 본회의장. 사진=노컷뉴스
▲ 국회 본회의장. 사진=노컷뉴스

백 의원 발언을 보면 노르웨이는 2003년 법을 개정해 여성임원 할당제를 최초로 도입했고, 스페인은 250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2015년까지 이사회 40% 이상을 (여성으로) 할당하는 조항을 뒀다. 독일은 2000명 이상 상장회사는 사외이사 구성원 30% 이상을 여성할당 하도록 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19년 말까지 여성 이사를 최소 1인 이상 두도록 2021년 말까지 규모에 따라 여성 이사를 1~3인 이상 두도록 하고 위반시 벌금부과 조항까지 넣었다.  

이날 법사위는 전상수 위원, 장제원 의원 의견대로 기업의 의무를 제거한 채 법안을 가결했다. 

이에 민병두 정무위원장은 지난 7일 동료 의원들에게 ‘이사회 양성평등 촉진법, 본회의 수정 의결 제안서’를 보내 “정무위에서 여야 합의로 가결했지만 법사위에서 입법취지를 후퇴했다”며 “이를 정무위 가결안(의무규정을 도입하되 2년의 유예기간 두는 안)대로 본회의에 발의할 테니 의무규정화해달라”고 협조를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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